"전반 종료 직전과 경기 추가 시간에 터트린 두 골은 모두 정말 환상적인 때에 터져나온 골들이었다. 박지성의 컨디션은 정말 좋았다. 최근 몇 주간 우리 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다. 오늘 박지성이 또 한번 정말 좋은 플레이를 보여 주었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이하 맨유)은 울버햄턴전 종료 후 맨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산소탱크' 박지성을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박지성은 최근 경기에서의 맹활약을 통해 시즌 초반의 부진을 극복했고, 이제는 화려하게 비상하기 위해 그동안 조용했던 공격 포인트가 마침내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울버햄턴전에서 선제골과 결승골을 성공시켜 맨유의 승리를 이끄는 해결사적 기질을 발휘했습니다. 경기를 치를수록 공격력이 오름세를 타고 있는 것은, 올 시즌 최전성기가 찾아왔음을 의미합니다.
박지성은 7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1라운드 울버햄턴전에서 2골을 기록했습니다. 전반 44분 박스 정면에서 대런 플래쳐의 왼쪽 대각선 스루패스를 받아 오른발 선제골을 밀어넣었고, 양팀이 1-1로 맞섰던 후반 47분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상대 수비수 두 명을 제치고 쇄도하는 과정에서 왼발 마무리 슈팅을 날렸던 것이 상대 골망을 흔들며 결승골을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박지성의 2골에 힘입어 2-1로 승리하여 올 시즌 무패 행진(6승5무)를 이어갔습니다.
맨유의 승리를 주도한 박지성은 골 뿐만 아니라 상대 수비를 위협하는 침투패스와 유연한 경기 운영을 통해 팀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적어도 울버햄턴전 경기력만을 놓고 보면 마치 맨유의 에이스를 보는 듯 했습니다.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두 골을 넣은 박지성은 경기장 어느 곳에나 있었다(Was everywhere on the pitch and grabbed both goals)”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양팀에서 가장 최고인 8점을 부여 받았습니다. 2005년 여름 맨유 입단 이후 최강의 공격력을 발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역대 최고 경기로 꼽을 수 있습니다.
'공격수 전환' 박지성, 최강의 공격력 과시했다
박지성은 지난 2007년 3월 17일 볼턴전 이후 3년 6개월 만에 프리미어리그에서 2골을 넣는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지난 9월 22일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와의 칼링컵 3라운드(32강)에서 1골 2도움, 지난달 26일 울버햄턴과의 칼링컵 4라운드(16강)에서 1골, 지난 2일 부르사스포르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4차전에서 1도움을 기록했고 이번 경기에서 2골을 추가하며 올 시즌 10경기 4골 3도움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최근 4경기에서는 3골 1도움을 올리며 맨유의 공격 옵션 중에서 가장 두각을 떨친 존재로 거듭났습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활약은 맨유 입장에서 반가울 수 밖에 없습니다. 루니가 부상 및 부진끝에 전력 외 선수로 분류되었고, 베르바토프는 다시 슬럼프에 빠졌고, 발렌시아-긱스-나니 같은 측면 자원들이 모두 부상으로 신음중이며,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하그리브스는 경기 시작 5분만에 왼쪽 대퇴부 부상으로 교체되는 불운에 시달리고 말았습니다. 에르난데스-오베르탕-베베 같은 젊은 영건들이 맨유의 공격을 짊어지기에는 무게감이 약했습니다. 그런데 울버햄턴전에서는 박지성이 그 모든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박지성의 발끝에서 2골이 터졌고, 섬세하고 정확한 패스를 연결했고, 왕성한 움직임을 통해 맨유의 공격 분위기를 주도했고, 끊임없이 빈 공간을 창출하며 상대를 위협했습니다.
사실, 맨유의 울버햄턴전 경기력은 평소보다 맥이 빠졌습니다. 하그리브스가 전반 5분만에 부상으로 교체되면서 울버햄턴전 승리를 위해 준비했던 전략들이 틀어졌습니다. 문제는 하그리브스 대신에 교체투입된 베베가 오른쪽 윙어로서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하면서 버벅대는 경기 운영을 일관했습니다. 플래쳐-오셰이로 짜인 중앙 미드필더들은 공격수-수비수 사이에서의 간격을 좁히지 못해 여러차례 상대 역습을 허용당했고 연계 플레이까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쉐도우로 출전했던 오베르탕은 타이밍이 늦는 볼 배급, 공격 상황시의 불안한 위치선정, 소극적인 움직임을 일관하며 맨유 공격진 중에서 가장 존재감이 부족했습니다.
맨유가 이러한 문제점을 뒤덮을 수 있었던 것은 전반 35분 박지성과 오베르탕의 포지션 변경 입니다. 맨유의 미드필더 중에서 가장 가벼운 움직임을 발휘하며 공격을 짊어졌던 박지성을 쉐도우로 올리고, 침체에 빠졌던 오베르탕을 본래의 위치인 윙어로 내리며 평소의 폼을 되찾게 했습니다. 물론 쉐도우는 엄연히 공격수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현지에서 '센트럴 팍(Central Park)'이라는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지난 시즌과 올 시즌에 걸쳐 맨유 중앙에서 번뜩이는 공격력을 과시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이 4-4-2의 쉐도우에서도 두각을 떨칠거라 믿었기 때문에 과감히 포지션을 바꾸는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선택은 적중했습니다. 박지성은 측면과 중앙에서 골고루 자기 몫을 해낼 수 있는 기질을 자랑합니다. 그런 움직임이 지금까지 이타적인 활약에서 빛을 발했다면 울버햄턴전에서는 골을 넣기 위해 상대 수비 지역을 여러차례 넘나들며 그들의 허점을 노렸습니다. 상대 수비가 앞선에서 공간을 계속 내주는 것을 알아차리며 그쪽을 기반으로 후방에서 패스를 받기 위해 움직였고, 자신의 패턴을 알아챈 플래쳐가 전반 44분에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스루패스를 찔러졌고 이것이 선제골로 연결됐습니다. 넓은 시야를 겸비한 플래쳐의 패스가 절묘했지만, 그 기회를 단번에 골로 연결지었던 박지성의 슈팅 또한 일품 이었습니다.
경기 종료 직전 결승골 과정에서도 울버햄턴 수비의 약점을 노렸습니다. 울버햄턴이 후반 20분 이뱅스-블레이크의 동점골로 1-1 스코어를 기록했지만, 홈에서 승리하려는 맨유의 공격 저항에 시달리며 수비수들의 체력 저하가 두드러졌습니다. 후반 막판에는 많은 선수들이 자기 진영으로 내려가면서 1-1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맨유를 상대로 너무 많은 힘을 소모했기 때문에 대인마크가 느슨해지고 활동 폭이 좁아지는 단점을 노출하면서 체력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오른쪽 측면에서 과감한 돌파를 시도하며 상대 수비 2명을 따돌렸고, 슈팅을 날릴 수 있는 빈 공간이 형성되자마자 왼발로 강슛을 날렸던 것이 맨유의 결승골로 귀결됐습니다.
특히 박지성의 결승골은 자신이 직접 공격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전반전에 플래쳐의 패스를 이어받아 골을 넣었다면 후반전에는 스스로 골 과정을 연출하면서 피니시까지 완성지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양팀이 1-1로 대치했던 경기 종료 직전에 벌어진 상황이어서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그 골로 인해서 "박지성은 골이 부족하다", "공격력이 떨어진다"는 부정적인 평가에서 벗어나게 됐습니다. 맨유의 기존 투톱이었던 루니-베르바토프의 폼이 정상적이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박지성의 물 오른 공격력이 팀에 커다란 보탬이 됐습니다.
또 하나의 의미있는 장면은, 퍼거슨 감독이 후반 29분 2명의 선수를 교체 투입하는 상황에서 박지성을 벤치로 불러들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그동안 골이 필요로 하는 시점에서 박지성을 교체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그동안 골이 부족했기 때문에 득점력에서 믿음감을 심어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전반 44분에 선제골을 넣었고 최근들어 공격 포인트 생산에 눈을 떴기 때문에 교체할 수 있는 명분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베베-오셰이가 교체되고 스콜스-마케다가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박지성의 위치는 여전히 공격수 였습니다. 원 포지션이 공격수였던 마케다가 오른쪽 윙어로 들어가면서 박지성이 그대로 투톱 공격수에 배치됐습니다.
그 이유는 박지성이 맨유의 공격을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상대 수비의 배후 공간을 파고들어 공격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침투패스를 여러차례 연결하며 맨유 공격의 역동성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지난 부르사스포르전에 비하면 모험적인 패스들이 여럿 속출했습니다. 정확성보다는 빠른 볼 터치를 앞세운 다이렉트 패스를 통해 상대 중원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맨유 공격의 창의성을 살찌우면서 에르난데스-오베르탕-베베 같은 영건들의 공격력 불안을 커버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맨유의 킬러로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울버햄턴전에서 거친 수비에 넋이 나갔던 에르난데스의 임펙트 부족, 좀처럼 공격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오베르탕-베베의 문제점이 박지성의 맹활약에 힘입어 슬기롭게 극복했습니다.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 뿐만 아니라 공격수(쉐도우)로서 맹활약을 펼친 박지성의 다재다능한 경기력은 울버햄턴전에서 화려하게 꽃피웠습니다. 그동안 루니-베르바토프-나니 같은 화려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옵션들에 가려져 이타적인 활약에 치중했지만, 이제는 그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어려움에 빠지면서 맨유의 공격을 짊어졌습니다. 맨유가 구단의 재정 악화로 대형 선수 영입이 버거운 현실에 놓여있음을 상기하면, 그동안 조용했던 박지성의 공격력 폭발을 반가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맨유의 공격 옵션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폼을 발휘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박지성의 울버햄턴전 활약상이 결코 일시적이지 않을것이라는 예상입니다. 최근들어 공격 포인트가 많아졌지만 맨유의 주축 선수임을 입증하려면 그런 부분이 꾸준해야 합니다. 그리고 골을 비롯한 공격 포인트가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그 약점을 해소하기 위한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할 것입니다. 아직 박지성은 배가 고프며 "맨유에서 오랫동안 뛰고 싶다"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어쩌면 시즌 초반 부진이 올 시즌 최전성기를 위한 각성의 계기였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박지성이라면 지금 이 순간이 최전성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