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데뷔전인 나이지리아전을 화려하게 장식한 선수들은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했던 선수들이 아니었습니다. 윤빛가람(20, 경남) 최효진(27, 서울)이 A매치 첫 골을 쏘아올리며 조광래 감독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이죠. 조광래 감독 애제자 윤빛가람의 거침없는 활약이 신선했지만 최효진의 맹활약은 '준비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올 시즌 K리그 거의 매 경기에서 폼이 부쩍 오르면서 대표팀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끝에 거둔 결실입니다.
최효진의 골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는 윙백이 골을 넣는 경우가 구조적인 측면에서 힘들기 때문입니다. 윙백은 경기 상황에 따라 측면 수비수 역할까지 겸하기 때문에 자기 진영에서 하프라인으로 넘어오는 일을 반복합니다. 그래서 상대 진영으로 넘어오기가 쉽지 않으며, 오버래핑을 시도하더라도 상대 수비에게 공을 빼앗겨 뒷 공간을 뚫리는 일이 없도록 볼 관리가 철저해야 합니다. 강인한 체력과 지구력,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개인기까지 자랑하는 윙백이라면 공수 양면에 걸쳐 종횡무진 뛰어다닐 수 있고 슈팅까지 날릴 수 있습니다. 최효진이 바로 그런 성향 이었습니다.
물론 최효진은 나이지리아전 이전까지 축구팬들의 저평가를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172cm의 단신인데다 출중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의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전형적으로 3백의 윙백에 강하지만 4백의 풀백 역할은 부족함이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축구팬들 생각이었고 축구 전문가들까지 입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최효진은 자신의 라이벌인 오범석(울산)의 2인자 기운을 떨치지 못했고 차두리(셀틱)에게 밀리는 인상이 짙었습니다. 그 여파는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 탈락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최효진이 남아공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다고 해서 차두리-오범석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축구는 감독의 호불호에 따라 선발 출전이 가려지고 팀의 전술까지 바뀔 수 있는 '감독 중심의' 스포츠입니다. 최효진은 허정무호의 4백을 맡기에는 수비력에 대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조광래호 3백에서는 차두리-오범석과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는 레벨에 있음을 나이지리아전에서 과시했습니다. 물론 차두리-오범석은 각각 소속팀 적응 및 사타구니 부상을 이유로 나이지리아전에 결장했지만 최효진이 두 선수의 존재감을 완전히 지우는 맹활약을 펼쳐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올 시즌 K리그를 꾸준히 보셨던 분들이라면 최효진의 나이지리아전 맹활약이 결코 '반짝'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셨을 것입니다. 올 시즌 서울의 K리그 단독 선두 도약을 이끈 주역중에 한 명이 바로 최효진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은 고질적으로 오른쪽 풀백에 대한 문제가 있었지만 올 시즌 최효진을 영입한 이후 팀의 강점 요소로 거듭나면서 오른쪽 공격 비중을 높인 끝에 상대 수비를 맹렬히 흔들었습니다. 최효진이 상대 진영을 적극적으로 두드리고, 상대 골문까지 활발히 파고들며 슈팅 기회를 노리는 경기 운영으로 재미를 봤기 때문입니다.
최효진은 많은 축구팬들에게 수비력에 대한 비판을 받았지만 정작 서울에서는 포백으로서 맹활약을 펼쳤고 지난해 포항의 포백으로서 소속팀의 아시아 제패를 이끌었습니다. 그 이유는 풀백의 공격 전개가 현대 축구에서 점차 비중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 유로피언 트레블을 달성한 인터 밀란이 오른쪽 풀백 마이콘의 오버래핑 및 볼 배급을 팀 전술의 근간으로 삼듯, 포항과 서울도 최효진 같은 공격적인 풀백의 장점을 최대한 끄집어내는 전술 강화로 짭짤한 재미를 봤습니다. 최효진이 공격을 펼치면 나머지 수비수 3명과 중앙 미드필더 1명이 최효진 곁에서 커버 플레이를 펼쳐 수비력에 대한 약점을 덜어줬죠.
분명한 것은, 조광래호의 3백이 최효진 입장에서 대표팀에서 입지를 넓힐 수 있는 이점으로 작용한다는 점입니다. 3백의 윙백은 4백의 풀백보다 수비력에 대한 비중이 조금 떨어지기 때문에 공격에 전념할 수 있는 구조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최효진의 공격력이 마음껏 폭발할 수 있는 팀은 바로 조광래호라는 것입니다. 조광래 감독은 윙백의 빌드업을 통해 공격의 템포를 조절하고 좌우 윙 포워드와 폭을 좁혀 콤비 플레이를 유도하는 컴펙트한 축구를 주문합니다. 그 적격에 부응하는 오른쪽 풀백이 바로 최효진 이었습니다.
그래서 최효진의 나이지리아전 맹활약은 일찌감치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올 시즌 K리그에서 꾸준히 맹활약을 펼쳤던 폼을 대표팀에서 그대로 이어간데다 3백의 윙백 체제가 자신에게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포항 시절을 종합하면 기복이 없지 않은 측면이 있지만, 윙백은 체력 소모 및 대표팀에서의 역할이 많은 포지션이기 때문에 기복을 안고 경기에 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최효진은 서울로 이적하면서 기복을 줄이고 꾸준함을 키우며 자신의 경기력을 향상 시켰습니다. 서울 이적 후 경기 운영이 너른해지고 시야까지 넓어진 최효진의 성장을 놓고 보면 앞으로의 대표팀 행보를 기대케 합니다.
물론 최효진의 붙박이 주전 도약은 다시 대표팀에 돌아올 수 있는 차두리-오범석의 존재감 때문에 다소 장담하기 힘든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차두리가 3백의 윙백으로서 풍부한 경험을 쌓지 못한데다 오범석이 잔실수가 많다는 점, 그리고 두 선수 모두 기복이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최효진에게 긍정적입니다. 나이지리아전에서 골을 넣는 맹활약을 과시했던 경험이라면 대표팀 입지 강화에 충분한 자신감을 얻는 계기로 작용합니다.
특히 왼쪽 풀백 이영표가 34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젊은 선수 못지 않는 팔방미인의 경기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점은 최효진에게 동기부여이자 자극제로 통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 특징은 대표팀에서 롱런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나이지리아전 맹활약을 통해 대표팀에 없어선 안 될 옵션으로 거듭난 최효진의 오름세가 2011년 아시안컵 우승의 결실로 이어질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