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천재'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5, 레알 마드리드. 이하 레알)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최고' 입니다. 2007/08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프리미어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데다 42골을 넣는 경이적인 활약을 펼쳐 '세계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 했습니다. 지난해 여름에는 맨유에서 레알로 이적하면서 8000만 파운드(약 1478억원)의 세계 최고 이적료를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지구촌 축구 선수 중에서 가장 높은 상품성까지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호날두는 현 시점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가 아닙니다. 리오넬 메시(FC 바르셀로나, 이하 바르사)에게 지난 두 시즌 동안 세계 No.1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죠. 몰론 호날두는 지난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첫 시즌을 보냈고 지난해 9월 발목 부상으로 두달 동안 결장했던 아쉬움 속에서도 35경기에서 33골 7도움을 기록하며 레알의 새로운 에이스로 자리 잡았습니다. 문제는 레알의 우승을 이끌지 못했습니다. 에이스의 숙명은 팀 성적과 일치하기 때문에 바르사의 프리메라리가 2연패를 주도했던 메시를 넘지 못했죠.
호날두에게 있어 남아공 월드컵은 축구 천재를 뛰어넘어 축구 황제로 도약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16강 스페인전에서 제라드 피케에게 막혀 0-1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고 본선 4경기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조별 본선 3경기에서는 평균 이상의 실력을 뽐냈지만 세계 최고의 이적료를 기록했던 선수치고는 기대에 못 미쳤습니다. 메시가 무득점에 그친 끝에 아르헨티나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한 것이 호날두에게 위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월드컵에서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런 호날두의 올 시즌 목표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재도약 하는 것입니다. 지난 두 시즌 동안 메시의 아성에 밀렸지만 '메시의 2인자'로 굳어지지 않으려면 올 시즌에 분발해야 합니다. 그것도 레알의 우승과 함께 말입니다. 호날두는 지난해 여름 바르사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마드리드행 비행기에 탑승했고, 레알의 통산 10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백곰 군단(레알의 애칭)'의 일원이 됐습니다. 지난 시즌 35경기에서 33골 7도움의 맹활약을 펼쳤지만 레알이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은 호날두에게 아쉬웠던 대목입니다. 그런 호날두가 메시를 No.2로 밀어내려면 레알의 우승을 이끌어야 합니다.
레알은 '스페셜 원' 조세 무리뉴 감독을 영입하여 바르사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겠다는 각오를 세웠습니다. 무리뉴 감독은 2004년 FC 포르투, 2010년 인터 밀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세계 최고의 지도자이자 전략가이며 유럽 제패를 원하는 레알의 니즈를 충족시킵니다. 그런 레알이 우승하려면 에이스 호날두의 활용을 최대화 시켜야 합니다. 호날두를 본래 포지션인 측면에 배치할지 아니면 곤살로 이과인과 함께 투톱 공격수로 포진시킬지 완벽한 공격수로 거듭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호날두가 지난 시즌 중반부터 투톱 공격수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거둔 것은 무리뉴 감독의 전술 운용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이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무리뉴 감독은 호날두에게 많은 역할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무리뉴 감독은 올 시즌 레알에서 공격적인 축구를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공격 옵션들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주문할 것이 틀림 없습니다. 수비 가담에 소극적인 호날두로서는 무리뉴 감독 스타일과 다소 맞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호날두가 좌우 측면과 중앙을 넓게 커버하여 종횡무진 움직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호날두는 맨유 시절 '무한 스위칭'의 핵심 주자로서 그라운드를 사정없이 휘저었던 경험이 있으며 활동량-스피드-개인기 같은 모든 공격력이 출중한 선수입니다. 그런 능력이 최대화되려면 공격진에서 프리롤 역할을 해야 합니다.
레알은 지난 시즌 호날두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호날두의 존재 유무에 따라 공격력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리뉴 감독은 호날두에게 집중되는 공격 패턴에 대한 체질 개선을 가할 것입니다. 현대 축구에서는 공간 압박이 강화되면서 한 명의 의존하는 원맨팀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더욱이 호날두는 상대팀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수없이 받고 있기 때문에 2008/09시즌 맨유 시절 처럼 시즌 도중 슬럼프에 빠질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리뉴 감독은 호날두가 꾸준히 맹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전술적인 변화를 부여할 것입니다.
무리뉴 감독은 레알에서 4-3-3 또는 4-2-3-1을 구사할 것입니다. 4백 위에 더블 볼란치를 세웠고, 그 위에 공격형 미드필더에게 경기의 흐름을 좌우하는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부여하는 것을 선호하는 스타일이죠. 데쿠(FC 포르투) 프랭크 램퍼드(첼시) 베슬러이 스네이더르(인터 밀란)가 그 역할을 했으며 레알에서는 카카가 바톤을 이어받을 예정입니다. 카카가 잦은 부상 여파로 움직임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턴 동작이 매끄럽지 못한 문제점이 변수지만, 호날두가 메시처럼 시즌 내내 꾸준한 활약을 펼치려면 카카의 폼이 올라야 합니다. 카카의 맹활약이 호날두에게 결정적인 골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발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르사가 아직까지 건재함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레알에게 부담 입니다. 레알은 지난 시즌 프리메라리가에서 팀 역사상 최고였던 승점 96점(31승3무4패)을 획득하고도 99점(31승6무1패)의 바르사에게 밀려 아쉽게 우승을 놓쳤습니다. 더욱이 바르사는 남아공 월드컵 직전 다비드 비야를 영입하면서 공격력 업그레이드를 꿈꾸고 있습니다. 호날두와 무리뉴 감독, 그리고 레알의 올 시즌 유럽 제패 및 팀의 우승 과정이 쉽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반드시 바르사를 넘어야 하며 챔피언스리그에서는 6시즌 연속 16강 탈락의 한을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호날두에게 있어 메시와 바르사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재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언덕이자 자신의 동기 부여를 자극하는 대상입니다.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선수로서 이룰 것을 모두 이루었지만, 이제는 레알의 일원으로서 프리메라리가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다시 한 번 세계 최고임을 증명해야 하며 메시와의 자존심 대결에서 다시 승리해야 합니다. 그런 호날두가 올 시즌 레알에게 통산 10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기며 '최고'라는 키워드와 다시 한 번 인연을 맺게 될지, 남아공 월드컵에서 분투를 삼켰던 축구 황제 도약의 발판을 다시 한 번 잡으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할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