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 사령탑에 취임한 조광래 감독 입장에서는 다음달 11일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릴 나이지리아와의 평가전이자 자신의 데뷔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싶을 것입니다. '첫 단추를 잘 꿰야 한다'는 말이 있듯, 나이지리아전은 대표팀 감독으로서의 첫 경기인데다 국민적으로 많은 시선과 관심이 쏠리기 때문에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위해 이겨야 하는 경기입니다.
그런 조광래 감독이 지난 22일 대표팀 감독 취임 기자회견에서 유럽파를 소집하여 최정예 전력으로 나이지리아와 맞서겠다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조 감독은 나이지리아전에서 유럽파 소집 여부에 대해 "유럽파들이 개인적으로 힘들겠지만, 팬들을 위해 A매치는 되도록 참가해서 유럽에서의 좋은 경험을 국민들과 공유했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나이지리아전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정한 A매치 데이에 열리기 때문에 유럽파를 비롯 중동파 차출에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나이지리아전 관점만을 놓고 보면 유럽파 및 중동파는 꼭 불러야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대표팀은 물론 선수 개인까지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유럽파-중동파 차출, 조금 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 가지 눈여겨 볼 것은, 유럽파들의 대표팀 차출은 지난해 8월 12일 파라과이전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부분입니다. 당시 대표팀을 지휘했던 허정무 전 감독은 박지성(맨유) 이청용(볼턴) 같은 프리미어리거들이 새 시즌을 위한 팀 적응을 위해 소집 명단에서 제외됐습니다. 당초에는 두 선수를 차출할 계획이었으나 소속팀에서의 입지를 위해 한국행이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소집하지 않았던 것이죠. 박지성은 대표팀에 차출하면 유독 부상 및 컨디션 저하로 고생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청용은 볼턴에 입단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대표팀 차출이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파라과이전 소집 명단에는 박주영(AS 모나코) 조원희(위건, 현 수원 임대) 김동진(제니트, 현 울산) 같은 또 다른 유럽파들이 있었습니다. 중동파 이영표(알 힐랄)의 이름도 포함 됐습니다. 조원희 같은 경우에는 박지성-이청용과 똑같은 프리미어리거임에도 대표팀에 차출되는 상황에 이르렀죠. 전 시즌에 부상으로 많은 경기에 뛰지 못했고, 새로운 감독이 선임되면서 좋은 인상을 심어줘야 했지만 시즌 개막을 얼마 앞두고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박지성-이청용과 같은 입장이었음에도 대표팀에 차출 되었으니, 박지성-이청용에게 특별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의 비판이 제기 됐습니다.
그래서 조광래 감독의 데뷔전인 나이지리아전은 유럽파 및 중동파의 차출이 조심스럽게 됐습니다. 지난해 파라과이전 처럼, 누구는 발탁하고 다른 누구를 발탁하지 않으면서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에 대표팀 차출이 더욱 민감한 상태입니다. 물론 일본파 및 중국파는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상황이기 때문에 대표팀에 차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파 및 중동파는 장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입국하는 심리적이고 체력적인 문제가 있으며, 소속팀에서의 새 시즌 주전 경쟁에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이들이 대표팀 차출 여파로 부진하면 결국 돌아오는 것은 대표팀의 전력 손해 입니다.
대표팀 입장에서는 나이지리아전이 중요한 경기입니다. 조광래호의 첫 경기이자 2010 남아공 월드컵의 리턴 매치 성격을 가졌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 하죠. 그래서 유럽파 및 중동파를 뽑고 싶은 욕심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조광래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시안컵 우승 및 세대교체이며 나이지리아전 한 경기가 더 중요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유럽파 및 중동파는 소속팀에서의 주전 경쟁 부담감 및 부상-컨디션 저하 우려를 안고 한국에 귀국하는 초조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나이지리아전에서 힘든 경기를 펼칠 수 밖에 없습니다.
더욱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유럽파 및 중동파들은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피로가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나이지리아전을 치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009/10시즌이 종료된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허정무호에 합류했고, 남아공 월드컵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소속팀에 복귀한 선수들이 있습니다. 박지성-이청용 같은 경우에는 구단의 배려에 의해 아직 한국에 체류중이지만 체력이 정상 궤도에 올라오지 않은 상태에서 나이지리아전에 차출되면 몸이 더 힘들어집니다. 나이지리아전에 차출되지 않더라도, 개막전까지 평소의 체력을 되찾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가장 우려되는 선수는 차두리입니다. 대표팀의 남아공 월드컵 일정이 끝난 뒤 스코틀랜드로 이동하여 셀틱 입단식을 치렀고, 그 이후에는 다시 남아공으로 건너가면서 독일-아르헨티나 8강전을 해설했습니다. 한국으로 복귀한지 약 2주 뒤에는 셀틱의 북중미 투어를 위해 미국땅을 밟았고, 얼마전 다시 한국으로 이동하여 비자를 발급받아 스코틀랜드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지난 16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셀틱에서의 첫 경기를 끝내고 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정말 이번 한 달은 원 없이 비행기 탄다"고 적었습니다. 나이지리아전을 위해 왕복으로 비행기에 탑승시키면 컨디션이 저하된 상태에서 셀틱에서의 첫 시즌을 보낼지 모릅니다.
중동파는 유럽파에 비해 한국에서 거리가 멀지 않지만, 유럽파와 더불어 똑같은 걱정거리를 안고 있습니다. 이영표와 이정수(알 사드)는 다가오는 2010/11시즌 위해 소속팀에서 입지를 다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특히 이정수는 동아시아에서 벗어나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문화권에서 뛰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절실합니다.
그리고 대표팀에게 가장 중요한 전력적 과제는 세대교체입니다. 조광래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선호하고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A매치 출전 기회를 제공하여 국제 무대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줘야 합니다. 아무리 나이지리아가 월드컵 이전까지 에이스로 뛰었던 존 오비 미켈(첼시)을 한국전에 차출하더라도 그것은 나이지리아의 입장일 뿐, 한국의 나이지리아전 목표는 승리도 좋지만 앞으로의 미래를 내다보는 디딤돌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대표팀 입장에서 유럽파와 중동파는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나이지리아전 단 한 경기 때문에 정신없이 시즌을 준비하여 부담감을 갖는 경우는 없어야 합니다. 그들의 직장은 대표팀이 아니라 소속팀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