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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맨유의 강심장'으로 거듭난 이유

 

부제 : 박지성의 두번째 자서전 <나를 버리다>를 읽고

4년 전 군대에서 일병 휴가를 나왔을 때, 대형 서점에서 <멈추지 않는 도전>이라는 책을 봤습니다. 박지성이 표지로 나온 책이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박지성이 직접 지은 자서전 이었습니다. 교토 퍼플상가에서 뛰던 시절부터 좋아했던 선수였지만 안타깝게도 책을 자세하게 읽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휴가 기간이 한정적인데다 군대에서 책을 읽을 여유가 빠듯했던 만큼 서점에서 책을 대충 읽다 나왔죠.

그런데 얼마전 박지성의 두번째 자서전 <나를 버리다>라는 책을 접하게 됐습니다. 인터넷 도서 사이트에서 신간 도서를 검색하던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었죠. 박지성이 직접 쓴 책이고, 선수 내면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에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그래서 택배로 책을 받자마자 밤을 세울 때까지 계속 읽었습니다. 박지성이 그동안 언론에서 딱딱한 멘트로 말했던 내용들이 아닌 그동안 마음 속에서 축적 되었던 생각들이 자서전을 통해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책에 빠져 들었습니다.

[사진=박지성의 자서전 <나를 버리다> 표지 (C) 효리사랑]

박지성이 강팀에 강한 이유, 그 비결은 '나를 버렸기 때문'

우리에게 '예진아씨'로 유명한 탤런트 박예진이 몇달 전 어느 모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 <강심장>을 통해 굴욕 사연을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인 시절 주인공으로 발탁된 드라마 촬영 도중 PD가 몇 번 NG를 내더니 길거리에서 강제 하차 당했던 쓰라린 아픔을 겪었다고 합니다. PD가 연기 부족이라는 말을 하지도 않고 아무 통보 없이 하차 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박예진은 자신을 내쫒은 담당PD가 손을 댔던 드라마는 모두 망했다고 일침을 가했습니다. 다시는 그 같은 굴욕을 겪지 않기 위해 연기 연습에 매진하며 지금의 자리에 올랐던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공교롭게도 박예진과 박지성은 서로 똑같은 1981년생 입니다. 그런 박예진의 스토리가 박지성과 흡사한 대목이 있습니다. <나를 버리다>라는 책의 첫 내용이 2008년 5월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첼시전 18인 엔트리 제외였습니다. 박지성은 대회 8강과 4강 1~2차전을 포함한 총 4경기에 선발출장하며 팀의 결승 진출을 이끄는 맹활약을 펼쳤고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를 봉쇄하는 수훈갑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결승전에서 느닷없이 18인 엔트리에서 빠졌습니다. 전술적인 이유에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팀의 우승이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를 뛰지 못한다는 것은 축구 선수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이 책의 제목처럼, '나를 버려야 한다'고 다짐하며 맨유에 필요한 선수임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헌신적인 자세로 동료 선수들에게 양보하는 소극적인 플레이를 했는데 그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같은 중요한 무대에서 퍼거슨 감독의 선택을 받으려면 강팀과의 경기에서 잘해야 한다는 것, 골 욕심을 숨기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습니다. 4개월 뒤 첼시와의 리그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자신에게 굴욕을 선사했던 퍼거슨 감독에게 복수(?)를 하더니, 지난해 5월 챔피언스리그 결승 FC 바르셀로나전에 선발 출전해 첼시전의 한을 풀었습니다.(비록 팀은 우승하지 못했지만)

박지성하면 떠오르는 키워드가 '강팀킬러' 입니다. 강팀에 강한 면모를 발휘한 것을 비롯 골까지 넣으며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이죠. 지난해 5월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를 선발로 밟았던 것은 아스날과의 4강 2차전에서 선제 결승골을 뽑아냈던 것이 결정타였습니다. 지난 2월 1일 아스날전, 3월 11일 AC밀란전, 3월 21일 리버풀전 같은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2년 전 첼시전 18인 엔트리에서 제외되기 전까지 라이언 긱스에 밀려 강팀과의 경기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소극적인 플레이를 버리겠다고 다짐한 이후부터는 강팀과의 경기에서 중용을 받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박지성은 자신의 성공 비결을 '나를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갈증 해소를 위해 컵에 오랫동안 담겨진 물을 버리고 시원한 물을 채우는 것 처럼, 지금까지 채운 것을 비우고 새로운 것을 채우려면 자신을 버리고 끊임없이 버려야 했습니다. 기존의 고정적인 패턴으로는 상대팀 선수들에게 읽혀 고전하는 것이 축구이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맨유에서 다섯 시즌 동안 주축 선수로 활약했던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약팀 전용 선수라는 꼬리표를 떼고 강팀킬러가 된 것 처럼, 올 시즌 윙어에서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겸하게 된 것 처럼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하기 위해 노력한 끝에 맨유에 필요한 선수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강심장' 박지성의 성공 원동력, 도전 정신

박지성은 맨유에서 뛰고 싶었던 이유가 세계 최고의 팀에서 나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한계에 부딪쳐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맨유에 입단할 때 '1분을 뛰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무장하며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캐링턴 훈련장에서 "배터리 좀 빼놓고 다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지독하게 훈련했다고 합니다. 배우고 익히겠다는 자세가 항상 습관되었기 때문에 도전적인 마인드가 충만할 수 밖에 없었죠. 유럽에서 축구를 하는 이유도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한국에서 열두 시간 걸리는 곳에 달려갔던 것입니다. 교토 소속으로서 일본 J리그라는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축구를 잘하기 위해 유럽 무대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 박지성이 '강팀 킬러'로 거듭날 수 있었고. '강심장'이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도전 정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유럽 무대에서 축구를 잘하는 선수로 각인되려면 강한 상대와 만나도 주늑들지 않으려는 자세를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럽 무대는 전세계에서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곳이기 때문에, 아무리 기량이 출중한 선수라도 멘탈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실패하는 혹독한 곳입니다. 그래서 박지성은 강팀과 상대하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일에만 집중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즐겼고, 강팀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강점을 맘껏 발휘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이 맨유에서 가끔 결장할 때마다 이적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올 시즌 초반에는 감기 몸살 및 무릎 부상으로 12경기 연속 결장했음에도 국내 여론에서 끊임없이 이적론을 내세웠죠. 어떤 여론에서는 '박지성은 맨유에서 모든 것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최근까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맨유에서 남은 목표가 있다", "맨유에서 오랫동안 뛰고 싶다", "맨유에서 은퇴하고 싶다"며 맨유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했습니다. 어쩌면 일부에서는 맨유에 남고 싶은 박지성에게 도전 정신이 결여 된 것이 아니냐고 바라볼지 모릅니다.

하지만 맨유는 세계 최정상 클럽이기 때문에 박지성이 새로운 무대에 도전할 명분이 실리지 않습니다. 얼마전 어느 모 인터뷰에서 스페인 진출을 극구 부정했던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맨유가 곧 최고이기 때문에 도전 정신이라는 초심이 유효한 것이죠. 박지성은 지금까지 자신을 버리며 끊임없는 변화를 갈망했고, 그런 마인드가 습관이 되어 축구 선수로서 보여줄 능력이 충만했기 때문에 맨유 잔류를 원했습니다. 맨유가 자신을 실험할 수 있는 마지막 관문으로 여겼기 때문에 최고의 팀에서 생존하겠다는 선택을 내렸고 그 길이 정답이었음을 고백했습니다. 맨유 전력에 필요한 선수인데다 기량이 노쇠화되지 않은 만큼, 다른 팀에 이적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최근에 불거진 박지성의 바이에른 뮌헨 이적설, CSKA 모스크바 트레이드설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반인들은 두 가지가 모두 사실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유럽 현지 언론에서 전해지는 이적설 중에 대부분은 사실이 아닙니다. 박지성 본인은 뮌헨 이적설을 언론에서 들었다고 말했죠. 심지어 맨유에 성공적으로 정착했던 2006년 4월에는 중동의 아랍에미리트(UAE)리그 클럽 이적설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러가지 이적설이 있었고 방출설까지 전해졌지만, 박지성은 그런 기사를 보면 웃어넘긴다고 합니다.

박지성은 벤치성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인터넷에서 박지성 관련 정보를 접하다보면 '벤치성', '밥지성'같은 단어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벤치성은 벤치를 지킨다는 이유로, 밥지성은 밥만 축낸다는 이유로 붙여진 단어죠.(유사 단어는 밥죄송) 악플러들이 박지성을 비방하기 위해 남의 이름을 저렇게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제3자의 시선에서는 그저 남의 일이라고 여기겠지만, 자신의 이름을 누군가가 안좋게 표현하여 공개적으로 말하면 기분이 좋을리가 없죠.

그런데 박지성은 벤치성, 밥지성 같은 자신의 비하 용어를 알고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자신의 기사를 빠짐없이 보는 편인데 댓글에서 자신의 비방 이름을 발견한 것이죠. 네덜란드 팬들에게 혹독한 야유에 시달렸던 것보다 국내팬들이 지은 벤치성이라는 악플에 더 마음이 아팠다고 합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악플로 마음고생을 했던 것 처럼 박지성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언론 기사도 그렇습니다. 날카로운 비판과 격려의 메시지가 담긴 건설적인 내용에 힘을 얻지만, 공감할 수 없는 비판에 속이 상했다고 합니다. 언론에서 줄기차기 보도되었던 '박지성 위기', '박지성vs이청용' 비교, 부적절한 수식어와 함께 박지성을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기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오랫동안 뛰기를 원하고 있으며, 최고의 팀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몸을 던질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고 승부에서 이기겠다는 욕구로 무장할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의 인생이 실패와 절망으로 가득채워졌거나 현실에 안주했다면, 그것을 버리고 변화를 받아들여 도전하는 것이 <나를 버리다>라는 책의 주된 메시지 입니다. 그리고 박지성은 강팀 킬러, 강심장이라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가치를 쌓기 위해 또 다시 자신을 버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