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둥가 감독이 이끄는 브라질 대표팀이 남아공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인을 발표했습니다. 카카(레알 마드리드) 더글라스 마이콘, 훌리우 세자르(이상 인터 밀란), 질베르투 실바(파나시나이코스) 호비뉴(산토스) 같은 주력 멤버들의 이름이 그대로 포함됐습니다.
가장 주목할 것은 공격진입니다. 호비뉴를 비롯해 루이스 파비아누(세비야) 니우마르(비야레알) 그라피테(볼프스부르크)를 포함한 4명이 최종 엔트리에 선발되었는데 몇몇 대형 공격수들이 둥가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축구황제' 호나우두(코란티안스)를 비롯해 호나우지뉴, 알렉산더 파투(이상 AC밀란) 아드리아누(플라멩고)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공격수 네 명이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됐습니다. 물론 네 명의 탈락은 현실적이지만, 최종 엔트리에 얽힌 문제점이 존재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브라질, 호나우두 같은 공격수가 없다
우선, 호나우두-호나우지뉴-아드리아누의 탈락은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세 선수 모두 전성기 시절에 비해 활동 폭이 좁아진데다 움직임이 부지런하지 못하고 순발력도 저하되면서 월드컵 본선에서의 행보가 걱정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의 힘으로 상대 수비를 벗겨내며 골을 넣는 능력이 탁월한 킬러지만 현대 축구는 두꺼운 압박을 기반으로 삼는 견제 능력이 강화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 선수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기량이 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더욱이 호나우두는 둥가 감독 부임 이후 발탁 된 경험이 없고, 호나우지뉴는 카카와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에 남아공행 비행기에 오를 명분이 약했습니다.
축구 신동으로 유명한 파투의 탈락은 의외라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AC밀란에서 꾸준히 좋은 폼을 보여줬고 21세의 어린 나이임에도 세계 최고의 골잡이로 거듭날 수 있는 능력을 모두 갖췄기 때문입니다. 월드컵 맹활약을 통한 자신감을 얻었다면 카카-호날두-메시에 이은 세계 최고의 선수 반열에 올랐을지 모를 일입니다. 호나우두의 후계자로써 파투가 유력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파투는 브라질 대표팀에서의 활약이 둥가 감독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전형적인 드리블러이기 때문에 4-2-3-1의 원톱을 소화하기에는 포스트플레이를 견뎌내기 어려웠던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비아누와의 경쟁에서 밀렸고 다른 옵션들에게 치이면서 결국 남아공행 비행기에 승선하지 못했습니다. 둥가 감독은 파투처럼 놀라운 스피드와 현란한 발재간을 앞세워 골을 넣는 타입보다는 포스트플레이 및 공간 창출을 통한 플레이를 통해 상대 수비를 뒤흔드는 타입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파비아누-그라피테 같은 타겟맨이 중용되어 파투가 배제된 것입니다.
브라질은 원조 호나우두를 비롯 'NEXT 호나우두' 없이 남아공 월드컵을 치르게 됐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NEXT 호나우두는 파투를 비롯, 호나우두처럼 놀라운 개인기량으로 다득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젊은 자원을 말합니다. 그런데 파비아누-그라피테-호비뉴-니우마르는 엄연히 호나우두와 다른 컨셉입니다. 파비아누-그라피테는 전형적인 타겟맨, 호비뉴는 왼쪽 윙어, 니우마르는 브라질을 대표했던 공격수들의 킬러 능력과 비교하면 임펙트가 떨어집니다. 어쩌면 이 같은 특징이 브라질의 남아공 월드컵 우승의 장애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런 브라질의 고민은 공격 옵션들의 주축들이 올 시즌 부상 및 부진 여파로 폼이 떨어졌다는 점입니다. 브라질의 에이스이자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는 카카는 부상으로 인한 경기력 저하로 레알 마드리드 팬들의 야유를 받는 신세에 직면했고, 호비뉴-그라피테는 지난 시즌에 비하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파비아누-니우마르의 폼이 시즌 막판에 올라오기 시작했지만 그 이전까지 꾸준함이 부족했으며 파괴력이 강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브라질은 선 수비-후 역습을 기반으로 탄탄한 조직력을 강점으로 삼는 팀이기 때문에 개인의 침체가 문제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 대표팀 구성원과 비교하면 무게감이 떨어지는데다 주요 공격 옵션들이 소속팀에서 최상의 폼을 꾸준히 유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브라질 대표팀에 합류했다는 점이 둥가 감독에게 걱정입니다. 이러한 불안 요소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그대로 안고 가면 팀 전력을 최대화시키기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다른 우승 후보 국가와의 전력 대결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가려질 수 있음을 상기하면 공격 옵션들의 고민이 깊습니다.
하지만 브라질이 믿는 구석은 카카-파비아누 듀오입니다. 카카가 2선 미드필더 공간에서 브라질의 공격을 조율하면서 최전방에 결정적인 골 기회를 밀어넣으면 파비아누가 해결짓는 패턴이 견고합니다. 이러한 공격 연결은 카카-셉첸코(디나모 키예보) 콤비가 절정을 이루었던 예전의 AC밀란을 보는 듯 합니다. 그런 파비아누는 카카의 지원 속에 남미 지역예선 11경기에서 팀 내 최다인 9골을 기록해 붙박이 주전으로 거듭나는데 성공했고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 득점왕(5골)에 올랐습니다.
문제는 파비아누는 호나우두처럼 지구촌 축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길 수 있는 공격수가 아닙니다. 호나우두처럼 개인의 힘으로 상대 수비를 단번에 무너뜨려 골을 넣는 성향이 아니며 펠레-지쿠-호마리우 같은 브라질의 황금 공격수들과 견줘봐도 임펙트가 떨어집니다. 소속팀 세비야에서는 올 시즌 15골 넣었는데 리오넬 메시(32골, FC 바르셀로나) 곤살로 이과인(27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6골, 이상 레알 마드리드)보다 골이 부족합니다. 2007/08시즌 24골 넣었고 2008/09시즌 8골에 그칠 정도로 골 생산에 기복이 심합니다. 더욱이 올해 나이가 30세이기 때문에 스타 탄생과는 거리감이 있는 컨셉입니다.
그럼에도 브라질은 남아공 월드컵 우승을 위해 파비아누를 믿고 가야 합니다. 파비아누는 호나우두처럼 신출귀몰 공격력을 자랑하지는 못하지만 브라질의 주전 원톱으로 올라서기까지 묵묵히 성장하면서 자신의 임무를 성실하게 이행한 둥가 감독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정작 비판해야 할 대상은 호나우두 이후 최전방에서 파괴적인 공격 본능을 내뿜을 수 있는 영건 공격수를 대표팀 급으로 배출하지 못한 브라질 축구입니다. 물론 브라질 축구의 인프라가 넓기 때문에 특출난 영건 공격수들이 여럿 있으며 파투도 그 중에 속하는 유형이지만, 파비아누를 압도하는 선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은 파비아누에 달렸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브라질의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인-
GK : 훌리우 세자르 (인터 밀란) 고메즈 (토트넘) 도니 (AS 로마)
DF : 마이콘, 루시우(이상 인터 밀란) 다니엘 알베스(FC 바르셀로나) 질베르투(크루제이루) 미셸 바스토스(올림피크 리옹) 후안(AS 로마) 루이장(벤피카) 티아구 실바(AC밀란)
MF : 카카(레알 마드리드) 훌리우 밥티스타(AS 로마) 질베르투 실바(파나시나이코스) 펠리페 멜루(유벤투스) 조수에(볼프스부르크) 클레베르손(플라멩고) 엘라누(갈라타사라이) 라미레스(벤피카)
FW : 루이스 파비아누(세비야) 니우마르(비야 레알) 호비뉴(산토스) 그라피테('전 안양LG', 현 볼프스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