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종전에서 시즌 4호골을 넣으며 유종의 미를 맺었습니다. 이 골은 비록 맨유의 우승과 직결되지 못했지만, 박지성 개인으로서는 단순 이상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골 없는 선수'라는 고정 관념을 깨는 명분으로 작용했습니다.
박지성은 10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8라운드 스토크 시티전에서 후반 39분 시즌 4호골을 작렬했습니다. 라이언 긱스가 박스 왼쪽에서 띄운 크로스를 머리로 다이빙하여 상대 골망을 가른 것입니다. 뱔목 부상 이후 한 달 만에 복귀한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서 후반 30분 교체 투입하여 팀의 4-0 대승을 결정짓는 골을 넣었습니다. 비록 맨유는 첼시에게 밀려 우승하지 못했지만, 올 시즌 맨유의 마지막 골 주인공이 박지성이라는 점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박지성의 시즌 4호골이 반가운 이유
우선, 박지성의 스토크 시티전 골은 허정무호에게도 반가운 일입니다. 허정무호는 주축 선수의 역량에 의존하는 편인데, 박주영-이청용-기성용-이운재가 소속팀에서 부상 및 경기력 저하 등의 이유로 폼이 가라 앉으면서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행보에 먹구름이 끼었습니다. 그리고 박지성도 발목 부상 이후 컨디션이 올라오지 못해 한 달 동안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박지성은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스토크 시티전 골을 통해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고, 남아공 월드컵 맹활약을 위한 자신감을 성취했습니다.
그 사실과 더불어 반가운 것은 박지성이 맨유 소속으로써 골을 넣은 그 자체입니다. 박지성은 맨유에서는 팀 플레이에 치중하는 조연, 대표팀에서는 팀 공격의 핵심인 주연이기 때문에 두 팀에서의 비중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대표팀에서 중심을 잡아주는 활약에 비해 맨유에서 이타적인 플레이에 치중하는 경기력이 일부 축구팬들에게 아쉬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 과정에서 '박지성은 골 없는 선수'라는 고정 관념이 생기면서 때로는 선수의 가치가 폄허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박지성은 골 없는 선수'라는 고정 관념은 편견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에게 '골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던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맨유에서 통산 149경기 출전 16골 13도움을 기록했으나 베컴-호날두 같은 맨유 출신의 세계적인 윙어들, 긱스-나니-발렌시아 같은 공격력이 뛰어난 현직 맨유의 윙어들에 비하면 공격 포인트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 쉽습니다. 박지성이 골이 부족한 것은 엄연히 사실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을 스탯으로 평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동안 골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골 하나만이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는 절대 기준은 아닙니다. 박지성은 호날두-나니-발렌시아 같은 전형적인 윙어와는 다른 타입이며, 골 욕심보다 팀을 위해 헌신하며 이타적인 경기력에 힘을 쏟았던 팀 플레이어입니다. 베컴과 호날두의 스타일이 서로 다른 것 처럼, 박지성도 박지성만의 스타일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런 스타일이 다른 누군가와 차별화되었기 때문에 맨유 전력에 필요했던 것입니다. 축구는 엄연히 11명이 서로 똘똘 뭉쳐 승리를 노리는 경기인 만큼, 팀 플레이어로써 다섯 시즌 동안 맨유를 위해 헌신했던 박지성은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분명한 것은, 박지성의 경기력 및 팀 내 위상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박지성이 부상 여파 및 대표팀 차출 후유증의 여파로 올 시즌 많은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지난 시즌의 박지성과 올 시즌의 박지성의 존재감이 엄연히 다릅니다. 올 시즌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써 성공적인 활약을 펼치며 자신만의 특화된 경기력을 퍼거슨 감독에게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시즌 4호골을 넣었던 스토크 시티전에서도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 됐습니다. 안데르손-플래처가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자신의 장점을 맘껏 살리지 못했음을 상기하면, 박지성이라는 옵션은 윙어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올 시즌 박지성의 경기력이 긍정적으로 변화한 원인은 동료 선수에게 패스를 받을때의 움직임이 능동적이고 타이밍이 빨라졌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박지성은 공을 소유한 동료 선수와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공을 받지 못하는 모습이 부쩍 많았습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박지성이 공을 잡지 못해 왕따설이 돌기도 했죠. 하지만 올 시즌에는 이러한 장면들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박지성이 공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특히 종적인 움직임을 통해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드는 경기력을 즐기면서 동료 선수들과 패스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마련했습니다. 그래서 볼 처리가 빨라지면서 팀 공격을 주도할 수 있는 경기 운영을 키웠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우수한 축구 지능으로 이겨낸 박지성의 지혜가 돋보였던 이유입니다.
그리고 스토크 시티전에서 골을 넣은 것은 공격력에 대한 또 다른 변화를 의미합니다. 동료 선수들의 볼 배급 패턴을 미리 읽으며 적절한 위치선정을 통해 골 기회를 마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AC밀란-리버풀-스토크 시티전에서 상대 수비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골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세 경기 모두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기 때문에 박스 안쪽으로 접근하기 쉬웠지만, 박스 바깥에서 공간 창출에 힘을 쏟았던 예전의 박지성과는 다른 성향입니다. 이제는 박스 안에서도 자유자재로 골을 넣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고 스토크 시티전 골을 통해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의 올 시즌 스탯이 평범했기 때문에(26경기 4골 1도움) 그의 가치를 깎아내립니다. 하지만 축구는 야구처럼 스탯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박지성이 맨유에 없어선 안 될 팀 플레이어라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올 시즌에는 부상 및 대표팀 차출 후유증 속에서도 공격력이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그 공격력은 '그동안 박지성에게 부족했던' 패스를 통해 경기를 조율하고 팀 공격을 이끌어가는 폼을 말하며, 그 자신감에 힘입어 아스날-AC밀란-리버풀 같은 강팀들을 상대로 골망을 갈랐고 스토크 시티에게 일격을 가했습니다. 특히 시즌 후반부에 들면서 골을 넣으며 공격력이 향상된 것은 더 이상 '골 없는 선수'가 아님을 의미합니다.
박지성은 얼마전에 발간된 <나를 버리다>라는 자신이 직접 작성한 에세이를 통해 앞으로 맨유의 선수라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하기 위해 골을 강조했습니다. 그동안 팀 플레이에 주력했는데 이제는 골을 통한 강력한 임펙트를 심어주겠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팀 플레이를 통해 이타적인 경기를 펼치는 흐름은 기존과 그대로 유지하겠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자신이 직접 골을 해결지으며 맨유 공격의 정점을 찍겠다는 마음속 다짐을 드러냈습니다. 자신을 향한 일부 여론의 저평가를 바꾸겠다는 것을, 팀 내 위상 강화를 위해 자신의 공기력을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는 마음을 계속 이어가며 강력한 한 방을 날리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박지성에게 스토크 시티전 골이 반가울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이 경기에서 골을 넣지 않았다면 '골 없는 선수'라는 고정관념이 다음 시즌에도 이어졌을 것이며 자신을 향한 저평가는 여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토크 시티전 골을 통해 다음 시즌 골 생산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것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스토크 시티전에서 골을 넣은 박지성이라면 더 이상 '골 없는 선수'가 아닙니다. 맨유에서의 공격력 업그레이드를 위해 진화하려는 모습을 잃지 않으려했던 박지성에게 '골 없는 선수'라는 수식어는 무의미합니다. 앞으로 골을 넣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일 박지성을 믿어야 할 시점입니다. 그리고 올 시즌 일정을 마무리한 박지성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