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축구를 좋아하는 축구팬들이라면 '유리몸'이라는 단어를 아실 것입니다. 부상이 잦은 선수를 가리켜 유리몸이라고 부르며, 업그레이드 키워드로써 '쿠크다스몸'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는데 주로 유리몸을 즐겨 씁니다. 유리가 잘 깨지는 특성을 이용해 부상 단골 선수들을 유희적으로 지칭한 것이죠.
유리몸의 대표 주자들은 이렇습니다.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 베슬레이 스네이데르(인터 밀란) 토마스 로시츠키, 테오 월컷, 로빈 판 페르시(이상 아스날) 조 콜(첼시) 마이클 오언, 오언 하그리브스(맨유) 루이 사아(에버턴) 알베르토 아퀼라니(리버풀) 등이 바로 그들입니다. 김형범(전북) 양동현(부산) 이관우, 염기훈(이상 수원) 같은 국내파들도 유리몸으로 꼽히지만, 축구팬들에게는 주로 유럽축구 선수들을 유리몸으로 지칭합니다. 유리몸이라는 단어가 국내의 유럽파들에게 파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또 한 명의 선수가 유리몸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한국 대표팀 부동의 공격수인 박주영(25, AS 모나코) 입니다. 박주영의 소속팀인 모나코는 지난 7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박주영이 허벅지 부상으로 3주 정도 출전이 어렵다"며 사실상 시즌 아웃을 선언했습니다. 그런 박주영은 올 시즌에만 6번의 부상을 당하는 불운에 시달렸습니다. 지난해 8월 중순 왼쪽 팔꿈치 탈골, 지난해 10월 말 경미한 발 부상, 지난해 11월 초와 올해 2월 중순 햄스트링 부상, 지난달 28일 르망전 경기 도중에 왼쪽 안면 부위가 찢어진 얼굴 부상, 그리고 허벅지까지 다치고 말았습니다.
물론 박주영을 유리몸으로 부리는 현실은 당연할지 모릅니다. 부상이 잦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2006~2007년에 대표팀과 FC서울에서 슬럼프에 빠졌던 원인은 부상 여파와 관련 있습니다. 그때는 올 시즌처럼 부상이 잦지 않았지만 부상 이후의 폼이 정상적으로 올라오지 못해 경기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최근 모나코에서 허벅지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기 이전까지 8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쳤을 때와 흡사합니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가 아닌 우리나라 선수를 유리몸으로 부르기에는 거북한 느낌이 듭니다. 박주영이 부상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엄연히 국내 최고의 공격수이고, 이방인이 적응하기 쉽지 않은 유럽이라는 혹독한 무대에서 힘겨운 생존 경쟁을 펼치는 선수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껴주고 성원해야 합니다. 그런 선수를 유리몸으로 부르는 것은 축구팬이 선수의 가치를 깎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일례로, 로번 같은 경우에는 우리들에게 '세계 최정상급 윙어'보다 '유리몸'이라는 수식어에 익숙합니다. 특정 존재에게 있어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르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인 심리죠.
그래서 박주영을 유리몸으로 불리게 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박주영이 유리몸에서 벗어나려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부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한데, 얼마전 허벅지를 다친 현 시점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앞으로도 추가 부상이 우려됩니다. 올 시즌 들어 부상이 잦았기 때문에 남아공 월드컵이 걱정스러울 수 밖에 없고, 월드컵 토너먼트를 치르면 다음 시즌 준비를 위한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선수 관리 측면입니다. 앞으로 소속팀의 박주영 관리가 세심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그 팀이 모나코가 될지 모르겠지만), 만약 박주영이 모나코에 잔류하면 앞으로의 몸 상태가 우려됩니다. 더욱이 월드컵 이후에 대표팀 차출을 위해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시차적응의 부담감에 직면한 만큼 컨디션이 민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모나코의 선수 관리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특히 지난 2일 파리 생제르맹과의 프랑스컵 결승전에서는 모나코의 박주영 관리 문제의 허점이 드러난 경기였습니다. 이날 박주영은 연장전을 포함한 120분 동안 좌우측면과 최전방을 부지런히 번갈아가며 공중볼을 따내는데 주력했습니다. 다른 누구보다 많이 뛰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체력 모소가 클 수 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두 발로 높게 점프하여 공중볼을 무수하게 따냈기 때문에 하체에 무리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박주영은 이날 경기에서 혼신의 힘을 쏟아내고도 허벅지에 무리가 생기면서 결국 시즌 아웃 됐습니다.
결과론적인 측면이지만, 만약 기 라콤브 감독이 선수 보호 차원에서 박주영을 후반전에 교체했다면 선수 본인은 지금쯤 모나코 경기를 뛰고 있을지 모릅니다. 물론 결승전이기 때문에 주력 선수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 감독의 마음이겠지만, 문제는 선수의 몸 상태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120분 출전을 강행시킨 것입니다. 더욱이 모나코는 무사 마주라는 골 능력이 있는 원톱 공격수가 있었기 때문에 박주영을 무리하게 출전시킬 명분이 약했습니다. 결국, 모나코는 선수를 무리하게 기용한 댓가로 박주영 없이 잔여 경기를 치러야 하는 부담감에 직면했습니다.
무엇보다 박주영은 무리한 경기 출전에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혹사 논란에 빠졌던 2005년 6월 U-20 월드컵 이후 슬럼프에 접어들면서 부상이 잦아졌습니다. U-20 월드컵 나이지리아전에서 왼쪽 팔꿈치 탈골 부상을 당한 이후 지금까지 5~6차례 탈골되면서 압북 붕대를 하고 경기를 치렀습니다. 그해 11월 A매치 스웨덴전에서 왼쪽 어깨 탈골에 시달렸고, 두달 뒤 대표팀의 해외 전지훈련 및 평가전을 소화하며 체력 소모가 커진 끝에 2006~2007년에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며 경기력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모나코에서도 비슷한 행보가 그려진 상황입니다.
맨유는 선수가 부상에서 완벽히 회복하기 전까지 경기 출전을 시키지 않습니다. 박지성이 지난달 10일 블랙번전에서 경미한 발목 부상을 당했음에도 한달 동안 결장한 이유는 부상에 따른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릎 수술 세 번을 비롯 부상이 많은 선수였기 때문에 맨유의 세심한 관리를 받는 것이죠.(아쉬운 것은, 박지성의 컨디션 저하가 국내 일부 여론에서 팀 내 입지 악화로 확대해석 됐다는 점입니다.) 박주영에게도 이러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서울과 모나코에서 부상 이후 경기력이 안좋았던 이유는 회복이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주영은 모나코의 주력 선수지만, 선수가 꾸준히 최상의 폼을 발휘하려면 구단도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박주영이 앞으로 유리몸이라는 키워드와 연관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로번-판 페르시-아퀼라니처럼 잦은 부상으로 신음하면 선수 본인에게 좋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 축구의 유리몸 대명사들처럼, 유리몸으로 희화화된 표현을 쓰면 안될 선수이고 우리나라 축구를 이끌어가야 하는 귀중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박주영이 남아공 월드컵을 비롯 앞으로 부상 없이 뛰기를, 그리고 소속팀이 박주영을 세심하게 관리하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