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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청용이 쉬고 싶어도 못 쉬는 이유

 

오언 코일 감독이 이끄는 볼턴은 지난달 27일 지역 라이벌 번리전에서 '블루 드래곤' 이청용의 결승골로 1-0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청용은 시즌 5호골을 기록해 3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 달성(1골 2도움) 및 5골 5도움을 올리며 10골 10도움을 향한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아울러 프리미어리그 개막 이후 처음으로 무실점 달성에 성공하여 수비 불안을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볼턴은 리그 19위에서 15위로 뛰어 올라 강등권 탈출에 성공하여 앞으로의 밝은 미래를 예고 했습니다. 지난해 12월 31일 게리 멕슨 전 감독을 경질하고 코일 감독을 영입하면서 강등권 탈출에 대한 의지를 나타내더니 번리전 승리로 오름세에 탄력을 얻었습니다. 팀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롱볼을 버리고 미드필더진의 아기자기한 패싱력에 초점을 맞춘 기술축구로의 변신은 번리전까지만 하더라도 완벽한 성공을 거둘 것 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볼턴의 현재 성적은 18위로 다시 강등권에 처지고 말았습니다. 번리전 이후의 리그 4경기에서 2무2패로 부진하면서 다시 미끄러지고 말았죠. 지난달 31일 리버풀전에서 0-2로 패했고 지난 6일 풀럼전 0-0 무승부, 9일 맨시티전 0-2 패배, 17일 위건전 0-0 무승부를 기록했습니다. 무실점 경기는 두 번이나 있었지만 4경기 연속 무득점에 따른 공격력 불안에 발목 잡히고 말았습니다. 즉, 볼턴의 문제점은 공격력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볼턴의 공격력 저하는 에이스인 이청용의 행보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청용은 번리전까지 3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를 달성했으나 그 이후의 4경기에서 골과 도움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번리전 이전과 이후의 경기력도 서로 대조됩니다. 번리전에서 결승골을 넣었을 때 까지는 오른쪽 측면에서의 활발한 공격 침투로 직접 골 기회를 노리거나 중앙까지 넘나드는 움직임에 이은 패싱력으로 동료 선수들에게 활발한 골 기회를 밀어줬습니다. 하지만 번리전 이후에는 움직임 저하로 볼 터치가 줄었고 상대 수비의 집중적인 견제까지 당하면서 특유의 재치있는 공격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18일 위건전에서는 활동 반경이 오른쪽 측면에 치우친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직접 문전으로 침투해서 골 기회를 만들어내는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동료 선수에게 공을 받을 지점에서 미리 움직이지 않고 제 자리에 서있는 모습이 두드러졌습니다. 전반전에는 오른쪽 측면에서 정교한 크로스와 패스를 뿌리며 팀 공격을 전개했으나 후반들어 상대팀 왼쪽 풀백인 메이너 피게로아에게 봉쇄당해 움직임이 처지면서 후반 25분에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14일 토트넘과의 FA컵 5라운드에 이어 2경기 연속 후반전에 교체 된 것입니다.

볼턴의 문제점은 이청용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격 옵션 전체가 흔들거리고 있습니다. 케빈 데이비스(이하 K. 데이비스)와 매튜 테일러 같은 볼턴 공격의 주축 선수들 폼이 저하되었고 이반 클라스니치의 부상 공백을 메우는 요한 엘만더는 극심한 부진에 빠졌습니다. 1월 이적시장을 통해 볼턴으로 임대 된 잭 윌셔, 블라디미르 바이스 같은 영건 공격 옵션들의 활약도 아직까지는 기대에 못미치고 있습니다. 지난달 18일 아스날전 부터 31일 리버풀전까지 보름 동안 5경기를 치렀던 피로 여파가 누적되면서 볼턴 선수들의 발이 무거워진 상황입니다.

그중에서 이청용의 체력 저하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청용은 본래 체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으며 프리미어리그 특유의 빠른 공수 전환 때문에 후반전에 경기력이 주춤하는 고질적인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FA컵을 포함한 15경기 연속 선발 출전에 따른 체력 저하를 이기지 못해 폼이 떨어졌고 번리전을 마지막으로 리그 4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가 없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청용의 공격 포인트가 없었던 4경기에서는 볼턴이 골을 넣는데 실패했습니다. 잦은 경기 출전으로 몸이 지친 이청용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바로 휴식입니다.

문제는 볼턴이 어쩔 수 없이 이청용을 끝까지 안고 가야 합니다. 이청용에게 휴식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팀의 공격 자원이 얇기 때문에 출전을 강행시킬 수 밖에 없죠. 시즌 초반 오른쪽 윙어로 투입되었던 션 데이비스는 무릎 십자인대 파열로 사실상 시즌 아웃 되었고 또 다른 오른쪽 윙어 자원인 바이스는 교체 출전만 거듭하며 팀 적응에 의문 부호를 달게 됐습니다. 이청용이 한 경기를 쉬면 그 공백을 메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지금까지의 정황상으로는, 바이스 임대가 성공이 아닌 실패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볼턴 입장에서 여전히 이청용의 발끝을 기대하는 이유는 기존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들의 부진이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테일러-무암바-코헨-K. 데이비스-엘만더가 동시 부진에 빠지면서 그동안 팀 공격의 젖줄로 활약했던 이청용에게 기댈 수 밖에 없습니다. 볼턴의 역습 및 전진패스가 공격수에게 정확하게 전달 되지 않은데다 공격수들이 최전방에 머무는 저조한 움직임을 나타내면서 이청용을 기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이청용 없이는 공격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 볼턴의 생각입니다. 그런 볼턴이 프리미어리그 데뷔 시즌을 치르는 22세 윙어 효과를 통해 강등권 탈출을 기대하는 것은 팀 전력에 얼마만큼 취약한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무엇보다 볼턴의 희망이 될 것으로 여겨졌던 K. 데이비스 원톱 전환 실패가 아쉬운 대목입니다. 지난 6일 풀럼전에서 K. 데이비스를 원톱으로 놓고 테일러-마크 데이비스-이청용이 뒤를 보조하는 4-2-3-1 전략을 썼으나 무득점에 그치고 말았죠. 이날 경기에서는 K. 데이비스가 후방 옵션을 통해 받은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놓치는 것을 비롯 볼 키핑, 포스트 플레이 불안으로 팀의 공격 마무리 불안을 키우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볼턴은 K. 데이비스-엘만더 투톱을 앞세운 4-4-2로 다시 복귀했으나 엘만더도 K. 데이비스와 더불어 무기력한 움직임을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볼턴은 바이스와 윌셔의 동시 선발 투입을 통해 공격력 불안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두 선수는 아직까지 팀에 아무런 공헌을 하지 못했지만 젊고 싱싱한 선수들이기 때문에 특유의 패기를 보여줘야 합니다. 물론 두 선수의 동시 기용은 볼턴 입장에서 무리수가 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강등권에 빠진 상황에서 그동안 팀 전력에 기여를 하지 못했던 선수들을 통해 위기 탈출을 모색하는 것이 모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기존 공격 옵션으로는 더 이상 돌파구가 없는 것이 볼턴의 현 주소입니다. 바이스와 윌셔의 효과가 미진하면 이청용의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는 25일에 열릴 토트넘과의 FA컵 5라운드 재경기는 볼턴이 포기해야 합니다. 볼턴에게 중요한 것은 FA컵 우승이 아닌 강등권 탈출이며 이청용을 비롯한 기존 공격 옵션들의 체력 부담을 덜기 위해 토트넘전에서 승리하겠다는 전략을 버려야 합니다. 이 경기에서는 바이스-윌셔 같은 임대 선수를 리그 규정상 출전시킬 수 없기 때문에 이청용을 어쩔 수 없이 선발로 기용할 가능성이 있겠지만, 나무가 아닌 숲의 관점이라면 코일 감독이 이청용에게 휴식을 주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만약 이청용의 무리한 출전이 계속된다면 선수 본인과 볼턴에게 독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울러 이청용의 혹사는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을 노리는 허정무호에 악재가 될 것이며 선수 본인에게 다음 시즌에 대한 체력적인 부담감이 커집니다. 이청용 효과를 통한 볼턴의 강등권 탈출 시나리오는 오는 3월에 가동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이청용이 쉬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