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에버턴 원정에서 역전패를 당하며 프리미어리그 선두 도약에 실패했습니다.
맨유는 20일 오후 9시 45분(이하 한국시간) 구디슨 파크에서 열린 2009/10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7라운드 에버턴전에서 1-3으로 패하고 말았습니다. 전반 16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크로스를 이어받아 기분좋은 선제골을 넣었으나 전반 19분 디니야르 빌라레치노프, 후반 30분 댄 고슬링, 후반 45분 잭 로드웰에게 연이어 골을 허용해 역전패를 당했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에버턴전 패배로 승점 57점(18승3무6패)에 머물며 1위 첼시(19승4무4패, 승점 61)와의 승점 차이가 4점으로 벌어지게 됐습니다.
퍼거슨 전략 실패, 발렌시아 부진, 박지성 교체, 수비 불안이 아쉬웠다
우선, 에버턴 원정을 앞둔 맨유의 흐름은 좋았습니다. 지난달 24일 헐 시티전에서 4-0 대승을 거둔 이후 6경기에서 5승1무의 성적을 거두었고 그 중에 3골 이상의 득점으로 이긴 경기가 5경기 였습니다. 여기에 6경기에서 무려 19골 넣으며 '골 넣는 공격축구'의 위력을 과시했죠. 맨유 성적 부진의 원인이었던 점유율 축구를 버리고 역습 축구로 전환한 것, 그 과정에서 루이스 나니를 통한 페너트레이션이 힘을 얻으면서 오름세를 탈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맨유는 최근 14번의 에버턴 원정에서 11승을 거두며 구디슨 파크에 강한 전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에버턴이 맨유의 '승점 자판기'가 되지 않으려 했습니다. 에버턴은 최근 리그 7경기에서 5승1무1패를 거둔 것을 비롯 지난 10일 첼시와의 홈 경기에서 2-1로 승리했던 자신감을 맨유전에서 그대로 이어갔기 때문이죠. 문제는 최근 오름세를 타고 있는 에버턴을 상대로 승리해야 할 맨유의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전반전에 경기 흐름을 장악한 쪽은 맨유가 아닌 에버턴 이었습니다. 맨유의 공세를 막아내기 위해 미드필더 라인을 밑으로 끌어 내렸고 특히 발렌시아에 대한 집중적인 견제를 가했습니다. 한 명이 발렌시아를 꽁꽁 마크하면 다른 한 명이 주위 공간에서 근접마크했죠. 물론 발렌시아는 전반 16분 빠른 타이밍의 크로스로 베르바토프의 선제골을 엮어냈지만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친 장면은 이것 하나 뿐 이었습니다. 경기 내내 상대팀 압박에 막혀 부진하고 말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맨유의 공격은 발렌시아쪽에 집중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발렌시아가 나니와는 달리 페너트레이션을 주도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이유는 왼발 능력이 낮은 것, 드리블 패턴이 단조로운 문제점이 있는데 그 특징이 에버턴 선수들에게 완전히 읽혔습니다. 발렌시아를 마크하는 에버턴선수들의 특징은 각을 좁혀서 견제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른발을 통한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맨유의 공격은 시종일관 발렌시아쪽으로 집중되었고 여기에 루니-베르바토프 투톱의 부조화까지 겹치면서 맨유의 공격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발렌시아가 상대팀 전술에 읽혔다면 그 즉시 수정을 가하는 임무를 맡는 존재가 바로 퍼거슨 감독입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의 판단미스는 스스로 자멸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첫 교체 대상이 발렌시아가 아닌 박지성 이었기 때문이죠. 박지성은 전반 중반까지는 발렌시아 위주의 공격 패턴에 의해 볼 터치가 적었지만, 적극적인 수비가담을 통해 포백의 수비 부담을 줄이고 직접 빌드업을 시도하거나 또는 공격 과정에서 루니와 함께 스위칭을 하며 상대 압박을 벗겨내기 위한 움직임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빼고 발렌시아를 후반 35분까지 기용하면서 맨유의 공격 작업은 더 어려워졌고 두 골이나 실점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박지성을 대신하여 투입된 오베르탕은 공격은 커녕 상대팀에게 수비 뒷 공간을 그대로 허용하는 불안함이 있었고 발렌시아는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만약 발렌시아-베르바토프를 빼고 오언-스콜스를 투입하는 전술 변화를 가졌다면 오언을 타겟맨, 루니를 쉐도우로 활용하며 루니에게 골을 몰아주는 전술을 썼을 것입니다. 루니가 지난달 24일 헐 시티전에서 오언의 타겟역량 효과 속에 4골이나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이죠. 결국, 퍼거슨 감독의 박지성 교체는 스스로 악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교체 미스는 이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박지성-베르바토프를 빼고 오베르탕-스콜스를 투입하면서 공격수가 한 명 줄었기 때문이죠. 4-4-2를 쓰던 맨유가 루니 원톱 체제의 4-2-3-1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에버턴은 수비 숫자를 줄이고 공격 숫자를 늘리며 공세를 취했고 맨유의 수비 불안을 틈타 고슬링-로드웰 같은 교체 멤버들이 골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모예스 에버턴 감독의 지략이 퍼거슨 감독을 압도한 것입니다. 만약 맨유가 박지성 대신에 발렌시아를 빼고 오언을 빠른 시간안에 투입했다면 에버턴의 공세는 없었을지 모릅니다.
또한, 맨유에 대하여 한 가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수비입니다. 에반스-브라운으로 짜인 센터백 조합은 허정무호의 조용형-강민수 조합이 빙의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수비가 매우 취약했습니다. 두 선수 모두 경기내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대인 마크와 상황판단 능력, 위치선정, 커팅이 취약했습니다. 특히 수비 집중력 불안으로 에버턴에게 세 골을 헌납했던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그 중에서 에반스의 폼은 부상 이전보다 떨어진 상태이며 성장이 더뎌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동안 맨유의 유망주라는 특징이 있었기 때문에 수비 불안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으나, 에반스는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빅 클럽의 유망주 수비수 치고는 많은 출전 기회를 얻었습니다. 퍼디난드-비디치의 부상이 잦아지면서 출전 기회가 쌓였던 것이죠. 문제는 경기를 치를수록 발전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상 원인도 있지만 좀 더 발전된 수비력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은 선수 본인의 노력이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경기에 몰입하지 못해 상대를 놓치는 모습이 빈번해진 것은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안일해졌음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날 경기에서는 비디치-퍼디난드의 공백이 아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잦은 부상으로 폼이 저하된 선수들이며 최근에 호흡을 맞추지 못해 예전의 끈끈함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럴수록 에반스와 브라운이 비디치-퍼디난드의 존재감을 지워야 했습니다. 두 선수의 에버턴전 부진은 맨유가 경기를 어렵게 운영하는 원인이 되었고 여기에 박지성 교체까지 겹치면서 맨유의 수비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맨유의 무기력한 경기 운영이 아쉬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