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지난 11일 애스턴 빌라전에서 결장하자 일부 언론사들이 아쉬움을 표시하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박지성이 애스턴 빌라전을 비롯 지난 7일 포츠머스전 결장으로 2경기 연속 개점휴업했기 때문이죠. 그것도 지난 10일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14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던 이청용과 비교하며 박지성의 결장을 비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봤습니다.
그동안 언론사에서 박지성이 결장할 때마다 줄기차게 보도 되었던 '박지성 위기론'은 올 시즌에 더욱 '풍성해진(?)' 느낌입니다. 박지성의 팀 내 입지 약화 기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으며, 이청용과 비교하며 박지성의 안좋은 점을 부각시키는 것, 박지성을 가리켜 '패배의 아이콘'-'패배의 상징'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 '박지성, 이대로는 안된다'와 '박지성이 수비수라면 맨유를 떠나야 한다'는 소재 등 박지성의 자존심을 긁는 기사들이 보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박지성은 지난 1일 아스날전에서 맨유의 3-1 승리 주역으로 활약했던 선수였습니다. 시즌 1호골을 넣은 것을 비롯 루니-나니와 함께 맨유의 역습을 주도하며 상대 수비진을 허무는데 귀중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박지성에 대한 찬사를 보내며 '아스날 킬러', '역습의 교과서'라는 수식어를 붙였죠. 그랬던 언론이(비록 일부이지만) 지난 7일 포츠머스전과 11일 애스턴 빌라전에 결장했던 박지성에 대해서 또 다시 위기론을 제기했습니다. 기사 내용에 위기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박지성 위기론과 똑같은 논조였습니다.
그랬던 박지성이 지난 17일 AC밀란 원정에서 공수 양면에 걸친 맹활약을 앞세워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상대 공격의 젖줄인 안드레아 피를로의 발을 묶는 맹렬한 압박을 가한것을 비롯 양팀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활동거리(12.113km)를 기록했습니다. 공격 과정에서는 루니-나니와 함께 2대1 패스를 주고 받아 상대 미드필더의 압박을 뚫는 농익은 경기 운영을 펼쳤고 과감한 문전 침투를 통해 알렉산드로 네스타의 집중력을 약화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후반 초반까지 부진했던 루니가 후반 22분과 29분에 문전에서 헤딩으로 두 골을 넣을 수 있었던 근본적 배경에는 네스타를 제압한 박지성의 힘이 작용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맨유의 AC밀란전 승리는 박지성의 포지션 전환이 결정타로 작용했고 어느 누구도 이를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동안 측면에서 뛰던 박지성이 4-3-1-2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아 중앙을 기반으로 오른쪽 측면까지 커버하는 프리롤 역할을 맡았죠. 전반전에 피를로 봉쇄에 주력했다면 벤치에서 퍼거슨 감독에게 별도의 작전 지시를 받으며 투입된 후반전에는 문전쪽으로 과감히 침투하는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며 네스타의 힘을 떨어뜨렸습니다. 전반전에 5.994km, 후반전에 6.119km를 뛰며 후반전에 엄청난 체력을 소모한 박지성의 변칙적인 역할은 어느 누구도 소화하기 힘듭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맹활약은 AC밀란전 이전까지 이청용과 비교하며 위기론을 부채질했던 일부 언론의 기사가 틀렸음을 증명했습니다. 박지성은 이청용처럼 매 경기 선발 출전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맨유에서는 여전히 자기 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포츠머스전과 애스턴 빌라전 결장은 AC밀란전을 대비한 체력 안배 차원이었고, 박지성은 그동안 휴식으로 충전했던 에너지를 AC밀란전에서 맘껏 쏟으며 팀의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지난 아스날전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사흘전 맨체스터 시티전 결장으로 휴식을 취한 뒤 아스날전에서 시종일관 역습을 전개하며 상대 수비를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흔히 한국 여론에서는 '박지성이 지난 시즌 맨유의 주전이었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마치 박지성이 붙박이 주전으로 뛰었던 것 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지난 시즌 4경기 연속 결장이 1번 있었고 3경기 연속 결장이 2번 있었고 체력 안배 차원의 결장이 빈번했습니다. 특히 약팀과의 경기에서는 결장이 많았고 자신의 포지션에 나니가 대신 선발로 뛰었습니다. 더욱이 지난 시즌은 올 시즌과 달리 부상 및 전술적 변화 없이 보냈습니다.(2009년 1월 부상 소식은 와전된 것임) 강팀과의 경기 출전이 많았던 박지성은 로테이션 상으로는 맨유의 주전이었지만, 냉정한 관점에서는 맨유의 로테이션 멤버 였습니다.
올 시즌 맨유의 측면에는 붙박이 주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박지성과 긱스-발렌시아-나니가 로테이션 멤버로 뛰고 있죠. 박지성은 두말할 필요 없고, 긱스는 1주일에 1경기씩 출전했고, 발렌시아는 지난달 24일 헐 시티전 이전까지 거의 매 경기에 선발 출전했고, 그 이후 발렌시아에게 휴식이 돌아가면서 나니의 선발 출전 빈도가 커졌습니다. 최근에 나니가 매 경기 선발 출전중이지만 그동안 많은 경기를 쉬었기 때문에 체력 저하에 대한 염려가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발렌시아는 최근에 휴식을 취하며 잦은 경기 출전으로 인한 체력을 보충하더니 지난 AC밀란전에서 조커로 맹활약을 펼쳐 스카이스포츠로 부터 팀 내 최고인 평점 8점을 부여 받았습니다.(박지성이 7점)
그러나 언론사들은 맨유에서 매 경기 선발 출전하지 않는 박지성을 이청용과 비교하며 비관적인 관점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잘못 되었습니다. 맨유와 볼턴의 클래스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죠. 맨유는 선수층이 두꺼운 강팀이기 때문에 여러명의 걸출한 재목들을 골고루 투입시킬 수 있지만 볼턴은 체력이 떨어진 이청용의 선발 출전을 고수할 만큼 선수층이 엷은 강등 위기에 몰린 팀입니다. 더욱이 맨유는 빅 클럽 팀이기 때문에 선수 구성원이 로테이션을 따르는 것은 당연한 숙명입니다. 맨유의 팀 플레이어인 박지성과 볼턴의 에이스인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잘못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만약 박지성이 언론에서 말하는 대로 팀 내 입지에 위기를 겪고 있는 선수라면, 지난 아스날전과 AC밀란전 맹활약은 무엇이겠습니까? 세 번의 무릎 수술로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겪었던 박지성의 지난날을 떠올리면, 매 경기 선발 출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참으로 가혹하다는 느낌입니다. 박지성은 올 시즌에도 무릎 부상으로 한동안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고 여전히 무릎에 부상이 재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박지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퍼거슨 감독이 매 경기 선발 출전을 꺼릴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 박지성은 매 경기 선발 출전은 할 수 없지만 경기에 투입되면 다른 누구보다 부지런히 뛰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특히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퍼거슨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적인 역할을 도맡아 그라운드를 누빕니다. 이것은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신뢰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비록 박지성이 잦은 부상 여파로 공격력을 크게 향상시키지 못했지만(특히 9개월 무릎 부상만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을 것이며 퍼스트 터치에 대한 불안함도 없었을 것입니다.) 전술적인 역할에서는 중요 기능을 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박지성의 공격력은 일부 축구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베르바토프, 안데르손 같은 개인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은 맨유에서 자기 몫을 다하지 못하며 먹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습니다. 한때는 나니도 이들과 같은 대열에 있었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특출난 선수라도 팀에 적합한 선수가 아니면 입지를 굳히기가 어렵습니다. 축구는 개인보다는 팀이 우선시되는 종목이기 때문이죠. 박지성의 AC밀란전 맹활약은, 재능 이전에 성실함을 무기로 중요 경기 때 마다 퍼거슨 감독의 선택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매 경기 선발 출전하지 못한다고 해서 박지성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박지성은 위기론과 이청용과의 비교 속에서도 맨유에서 여전히 자기 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AC밀란전에서는 측면에 이어 중앙에서 산소탱크의 저력을 뽐내며 자신의 전술적 가치가 진화했음을 실력으로 충분히 입증했습니다. 이러한 박지성의 역량이라면 자신이 원하던 희망대로 맨유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박지성의 위기론이 무의미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