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호가 5-0 대승을 거두었던 A매치 홍콩전은 '사자왕' 이동국(31, 전북)의 골이 값졌던 경기였습니다. 물론 상대는 약체였지만, 이동국 본인에게는 그토록 원했던 대표팀에서의 부활과 월드컵에서의 꿈을 향한 자신감의 토대가 됐습니다.
이동국이 지난해 8월 12일 파라과이전부터 지난달 22일 라트비아전까지 A매치 7경기(지난해 10월 14일 세네갈전 결장)에서 무득점에 그쳤던 사슬을 끊은것은 긍정적 현상입니다. 지난 2006년 2월 15일 멕시코전 이후 4년 만에 A매치에서 골맛을 보면서 앞날의 화려한 비상을 향한 자신감을 얻은 것은 향후 대표팀 경기력의 플러스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동안 이동국의 경기력을 언론에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허정무 감독도 이날 만큼은 활짝 웃었습니다. 경기 종료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우선 이동국에게 축하를 해주고 싶고 앞으로 더 많은 골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이동국의 움직임이 허정무 감독이 원하는 수준 만큼 활발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공격수는 골로 말하는 존재로써 자신의 강점인 골 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홍콩전에 선발 출전했던 이동국은 한국이 2-0으로 앞섰던 전반 31분 김보경의 프리킥을 김정우가 문전쪽으로 헤딩 패스한 것을 머리로 받아 상대 골망을 갈랐습니다. 프리킥 이전에 상대 수비벽을 파고들기 위한 움직임을 취했고, 김정우의 패스 상황에서 수비벽을 뚫고 문전으로 돌진하여 정확한 타점에 의한 헤딩슛을 날렸습니다. 이 골은 이동국이 어떤 장점을 가진 선수인지를, 대표팀에서 무엇으로 허정무호의 승리를 안길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결정적 장면 이었습니다.
물론 이동국의 홍콩전 골은 얼마든지 과소평가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골 가뭄에 시달린데다 약체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었기 때문에 후한 평가를 내리기가 지나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의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동국 본인입니다. 그동안 도돌이표 처럼 반복되었던 A매치 골 침묵에 대한 부담감을 홍콩전 헤딩골로 이겨냈습니다. 이것은 선수 본인의 심리적 부담을 해소시키는 것과 동시에 자신감 향상의 토대가 됐습니다.
이동국에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감 이었습니다. 허정무호 공격 전술에 부합하는 부지런한 움직임, A매치에서 90분을 버틸 수 있는 체력(지난달 핀란드전에서 90분 뛰었으나 체력 저하로 힘들어했죠.), 공격 상황에서의 빠른 판단력도 필요하지만 그 이전에는 자신감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축구 재능이 출중해도 자신의 장점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분하지 못하면 그 선수는 실전에서 과감함과 강력한 임펙트를 뽐낼 수 없습니다. 그동안 대표팀 부진으로 힘들어했던 이동국은 홍콩전 골로 마음속의 짐을 이겨내고 부활의 함성을 내질렀습니다.
물론 이동국의 홍콩전 골은 완벽한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월드컵 최종엔트리 23인 합류 및 본선 출전의 꿈을 이루려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멉니다. 박주영이 대표팀 부동의 공격수로 맹위를 떨쳤고 이근호는 한때 '허정무호의 황태자'라는 찬사를 받던 선수였습니다. 최근에는 월드컵에서 슈퍼 서브로 활용 될 가치가 충분한 안정환의 대표팀 합류 여부를 허정무 감독이 검토 중입니다. 홍콩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넣은 이승렬, 동아시아대회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대표팀 재발탁 가능성이 높은 설기현이 있는 만큼, 이동국에게는 포지션 경쟁자들이 즐비합니다.
그럼에도 이동국의 골이 반가웠던 것은 허정무호의 공격력 향상과 밀접하기 때문입니다. 이동국 만큼 출중한 골 감각에 타겟 역량까지 갖춘 선수가 대표팀 내에서 드물기 때문이죠. 박주영-이근호-이승렬-안정환은 정통 타겟맨이 아니며 설기현은 타겟맨이지만 근래에 많은 골을 넣은 경험이 없고 실전 감각도 떨어진 상태입니다. 물론 박주영은 소속팀 AS 모나코의 원톱 타겟맨으로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지만 그 이전까지는 쉐도우로서 가장 적합한 기질을 발휘했습니다. 이동국은 5명의 공격수와는 다른 색깔의 스타일과 자신만의 두드러진 장점이 있던 선수죠.
어쩌면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에게 미련을 두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동안 언론을 통해 이동국의 움직임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줄기차게 가했던 것은, 역의 관점에서 이동국에게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물론 그 방식은 다소 지나쳤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동국은 허정무 감독의 비판 속에서도 A매치에서 꾸준히 선발 출전을 거듭했습니다. 만약 허정무 감독이 이동국의 플레이를 싫어했다면 대표팀 명단에 가차없이 제외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동국은 여전히 대표팀의 주전으로 뛰고 있습니다. 이것은 허정무 감독이 이동국의 역량을 대표팀에서 필요로 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그 역량은 바로 골입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서 16강 진출을 달성하려면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를 이길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며 상대팀과 희비를 가를 수 있는 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전형적인 골잡이가 대표팀에서 필요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K리그 득점왕이었던 이동국의 존재감은 대표팀의 공격 색깔을 다양화시킬 수 있는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동국은 후방에서 골문쪽으로 한번에 찔러주는 패스를 받아 상대 골망을 흔들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골잡이의 본능입니다.
물론 이동국의 움직임은 박주영과 이근호처럼 부지런하지 못합니다. 최전방에서의 포스트플레이 또는 절묘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 골을 넣는 타입이기 때문에 두 선수처럼 기민한 움직임을 펼치는 것과 스타일이 다릅니다. 그래서 이동국은 움직임 부족을 개선하면서 자신의 최대 강점인 골을 앞세워 대표팀에서의 존재감을 말해줘야 합니다. '공격수는 골로 말해야 한다'는 축구의 지론처럼, 골을 앞세워 팀의 승리를 이끌 수 있는 기질을 보여줘야 합니다. 홍콩전에서의 골은 대표팀에서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소득을 안겼습니다.
그런 이동국은 자신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중반 본프레레호 시절 A매치 22경기에서 11골을 넣었으나 움직임 부족을 이유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당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팬들의 거센 질타를 잠재울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2004년 12월 독일전 A매치에서 올리버 칸을 울렸던 멋진 터닝슛 이었습니다. 10년 전 각급 대표팀의 공격수로 그라운드를 누빌 때는 경기력 부진 속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결승골을 넣는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이동국의 최대 강점은 출중한 골 감각에서 다져진 강렬한 '한 방' 이었습니다.
이동국은 그동안 대표팀과 프로팀, 그리고 한국과 잉글랜드에서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며 시련과 환희를 거듭했습니다. 굴곡이 많은 세월을 보냈지만 절치부심하며 지난해 K리그에서 재기에 성공했고 그 발끝이 이제는 대표팀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홍콩전에서 골을 넣은 이동국의 부활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