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7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산 시로에서 열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AC밀란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은 대회 최고의 박빙 승부로 꼽힙니다. 그동안 유럽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잉글랜드와 이탈리아 전통의 명문팀들이 격돌하기 때문입니다. 맨유는 3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오른것을 비롯 우승과 준우승을 1번씩 달성했고, AC밀란은 '챔피언스리그 DNA'로 불릴 만큼 7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2000년대에 두 번(2003, 2007년)이나 유럽을 제패했습니다.
맨유와 AC밀란 경기가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데이비드 베컴의 대결 때문 입니다. 두 사람은 한때 맨유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스승과 제자 관계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베컴의 발끝은 맨유의 골망을 향하고 있으며 퍼거슨 감독은 그것을 저지하기 위한 치밀한 전술을 꺼내들 것입니다. 그리고 5년 전 AC밀란을 상대로 멋진 골을 넣었던 박지성의 맹활약까지 주목됩니다. 지난 아스날전에서 시즌 첫 골을 뽑았던 그의 화려한 비상이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1. 맨유는 AC밀란을 탈락시킨 전적이 없었다
맨유는 챔피언스리그 32강 B조에서 4승1무1패로 1위에 올랐고 AC밀란은 C조에서 2승3무1패로 2위를 기록했습니다. 언뜻보면 맨유의 우세가 예상되지만 두 팀의 통계 전적에서는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합니다. 맨유는 역대 유럽 대항전 토너먼트 무대에서 AC밀란을 탈락시킨 전적이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8경기에서 3승5패를 기록했지만 원정 경기 4전 4패에 발목 잡혀 다음 토너먼트에 진출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지금까지 AC밀란을 탈락시킨 잉글랜드 클럽은 5팀(아스날-첼시-토트넘-리버풀-맨시티)이었을 뿐입니다.
특히 AC밀란은 홈에서 잉글랜드 클럽에 강한 면모를 발휘했습니다. 2007/08시즌 아스날에게 0-2로 패하기 이전까지의 12경기에서 7승5무를 기록했고 그 중에 4승이 맨유전 이었습니다. 반면에 맨유는 홈에서 이탈리아 클럽과 16번 상대하면서 12승2무2패를 기록해 세리에A 클럽에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1차전은 AC밀란의 홈인 산 시로, 2차전은 맨유의 홈인 올드 트래포드에서 치러집니다. 통계 전적에 의하면 1차전은 AC밀란의 우세, 2차전은 맨유의 우세를 가늠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통계는 통계일 뿐 실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2. 역습의 맨유vs조직력의 AC밀란
맨유의 강점은 역습입니다. 최근 5경기에서 16골을 퍼부으며 1경기당 3.2골의 화력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것은 나니의 파괴적인 드리블을 앞세운 역습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한때 방출 위기에 몰렸으나 지난달 24일 헐 시티전을 기점으로 팀 플레이에 눈을 뜬 나니의 무서운 변신이 맨유의 공격력을 업그레이드 시켰습니다. 그동안 점유율 축구로 이렇다할 재미를 보지 못했던 맨유는 나니를 통해 공격이 강화되었고 프리미어리그 득점 단독 선두(21골)로 올라선 루니의 득점포를 통해 역습의 화룡정점을 찍었습니다.
반면 AC밀란은 미드필더진에서의 조직력이 강합니다. 2006/07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주역이었던 카카(레알 마드리드)가 없음에도 미드필더진에서의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통해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상대 중원을 무너뜨리는 정교한 패싱력을 자랑하는 피를로를 축으로 암브로시니와 시도로프같은 노장들의 경험까지 더해지면서 탄탄한 경기 운영과 관록을 뽐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 1월 AC밀란에 임대된 베컴은 오른쪽에서의 질 높은 볼 배급을 자랑하는 노장으로서 AC밀란의 조직력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3. 비디치 없는 맨유vs내림세에 빠진 AC밀란
맨유의 문제점은 수비입니다. 비디치가 허벅지 부상으로 AC밀란 원정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에반스의 몫이 커졌습니다. 에반스는 그동안 중요 경기에서 빼어난 대인마크를 발휘했지만 경험이 부족한 선수여서 산 시로에서 흔들릴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팔꿈치 가격으로 잉글랜드 축구협회로 부터 4경기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던 퍼디난드가 에반스의 파트너로 활약할 예정이지만 부상과 징계로 인한 실전 감각 저하가 우려됩니다. 퍼디난드가 폼을 되찾지 못한다면 맨유가 수비 불안으로 고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AC밀란은 지난 12일 우디네세전 이전까지 최근 4경기에서 승리를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24일 인터 밀란과의 라이벌전에서 0-2로 패한 이후 4경기에서 3골에 그친 것을 비롯 2무2패를 기록했고 세리에A 2위에서 3위로 내려갔습니다. 지난달 6일 제노아전부터 17일 시에나전까지 3경기에서 6골 넣은 호나우지뉴의 득점포가 그 이후 경기에서 침묵을 지킨게 팀 성적에 영향을 주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12일 우디네세전에서 파투가 부상 복귀 후 첫 골을 넣었고 먹튀로 꼽혔던 훈텔라르가 두 골을 넣으며 시즌 대반전을 예고 했습니다.
4. '챔스 무득점' 루니의 득점포가 필요한 시점
맨유가 AC밀란을 꺾고 8강에 진출하려면 루니의 득점포가 필요합니다. 루니가 프리미어리그 21골을 넣으며 맨유의 성적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루니는 챔피언스리그 3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습니다. 3경기 모두 후방 옵션들에게 활발한 공격 기회를 받지 못한데다 맨유와 상대하는 팀들이 점유율 축구를 읽었던 여파가 무득점의 원인이 됐습니다. 팀의 벤치멤버인 오언이 4골을 넣었던 것을 상기하면, 루니의 무득점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루니는 맨유가 역습 축구로 전환한 이후부터 득점력에 불을 뿜기 시작했습니다. 맨유가 최근 5경기에서 넣은 15골 중에 7골을 책임진 것입니다. 나머지 8골 중에 5골이 자책골로 얻어낸 기록임을 상기하면, 맨유의 다득점 중심에는 루니가 있었습니다. 맨유의 역습이 오름세를 타고 있는 현 시점이라면 루니의 AC밀란전 골이 기대됩니다. 아울러 카카-호날두-메시에 이은 '세계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 할 가능성이 높은 루니로서는 챔피언스리그 골을 통해 자신의 물 오른 진가를 증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5. 박지성-나니, 역습 축구의 힘 보여줄까?
맨유는 루니의 조력자로서 박지성과 나니를 측면에 배치할 가능성이 큽니다. 긱스가 부상으로 결장하는데다 발렌시아가 단조로운 드리블 패턴을 일관하며 나니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에 박지성-나니 조합의 중용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두 선수는 지난 1일 아스날전에서 루니와 공격 삼각 편대를 구성하여 빠른 역습으로 상대 수비를 과감히 흔들었고 이것은 맨유의 3-1 승리 원인이 됐습니다. 특히 박지성의 포츠머스전과 애스턴 빌라전 결장은 AC밀란 원정 선발 출전을 암시하는 대목입니다.
무엇보다 AC밀란 전에서는 박지성과 나니를 통한 역습이 빛을 발할 것으로 보입니다. AC밀란이 스피드가 빠른 팀이 아니기 때문에 맨유 역습의 무게감이 클 것으로 기대됩니다. 특히 AC밀란의 좌우 풀백을 맡는 아바테와 잠브로타는 상대 역습에 흔들리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박지성의 매치업 상대인 아바테는 지난달 24일 인터 밀란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밀리토에게 골을 내주는 모습을 보인것을 비롯, 경험 부족으로 상대 공격 옵션을 놓치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아바테가 흔들리는 현 시점이라면 박지성의 맹활약이 기대됩니다.
6. 베컴, 맨유전에서 마법 발휘할까?
맨유와 AC밀란의 매치가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주목을 끄는 이유는 베컴이 친정팀 맨유와 상대하기 때문입니다. 2003년 레알 마드리드 이적 이후 단 한 번도 맨유와 격돌하지 못했던 베컴이 이제는 퍼거슨 감독 앞에서 마법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가공할 볼 배급으로 맨유 진영을 공략할 계획이며 특히 세트 피스 상황에서는 날카로운 오른발 킥을 뽐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AC밀란 입장에서도 맨유를 꺾고 8강에 진출하려면 '베컴 효과'가 필요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베컴 효과는 현재까지 미미합니다. 베컴은 AC밀란 임대 이후 7경기에 출전했으나 1도움에 그쳤고 최근 두 경기에서는 교체로 투입해 벤치 멤버로 밀린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AC밀란이 파투 복귀 이전까지 득점력 저하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는 것은 베컴의 공격력이 팀 전력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존 선수들과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며 호흡을 맞추고 있지만 문제는 팀 득점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날카로운 볼 배급이 아직까지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맨유전에서는 그동안 시름에 잠겼던 자신의 마법이 불끈 달아오를지 기대됩니다.
7. 파투, 맨유전 승리의 해결사로 활약할까?
AC밀란의 문제점은 공격진의 무게감이 약합니다. 보리엘로는 팀 플레이어지만 득점력이 약한 한계가 있으며 호나우지뉴의 득점포는 최근에 조용합니다. 훈텔라르는 지난 12일 우디네세전에서 두 골을 넣었지만 부활 여부를 여전히 속단할 수 없습니다. 3년 전 AC밀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주역으로 활약했던 인자기의 올해 나이는 37세입니다. 지난 시즌에 이어 올 시즌에도 어쩔 수 없이 '소년가장' 파투에게 기댈 수 밖에 없습니다.
파투는 최근 두 달 동안 부상으로 경기에 뛰지 못했지만 지난 12일 우디네세전에서 복귀 골을 넣으며 팀의 3-2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 두 골을 꽂으며 팀의 3-2를 이끄는 해결사 기질을 발휘했던 파투의 발끝은 맨유의 골망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카카-호날두-메시의 뒤를 잇는 축구 천재로 주목받는 파투가 자신의 가치를 끌어 올리려면 맨유전에서의 화력이 필요하며 공격력 약화에 빠진 팀을 구해야 합니다. 올해 21세의 나이로서 팀 공격을 짊어지기에는 부담감이 크지만, AC밀란 공격이 맨유전에서 무게중심을 잡으려면 파투의 맹활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