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동료' 웨인 루니(2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는 골을 잘 넣는 공격수였지만 득점왕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맨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4/05시즌 팀 내 득점 1위를 기록했으나 다음 시즌 무릎 부상에서 복귀한 뤼트 판 니스텔로이(레알 마드리드)보다 골 숫자가 부족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득점 기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의 골을 돕기 위한 조연이자 팀에서 이타적인 역할을 맡았던 공격수였습니다.
그런 루니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 순위에서 맨 꼭대기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루니는 디디에 드록바(첼시) 저메인 디포(토트넘)와 함께 리그에서 14골을 넣으며 득점 공동 1위를 기록 중입니다. 각각 13골과 12골을 기록 중인 대런 벤트(선더랜드) 페르난도 토레스(리버풀)는 세 명의 공격수를 바짝 추격 중입니다. 그래서 루니가 프리미어리그 정상급 공격수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득점왕에 등극할지 여부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루니의 행보는 조금 낯선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누군가와 득점왕 경쟁을 펼친 경험이 많지 않을뿐더러 득점 순위 상위권에 있어도 항상 득점 1위를 추격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루니는 현재 드록바-디포와 공동 득점 1위를 기록 중이지만 1위의 입장에서 득점왕 전선에 나선 경험을 올 시즌에 처음 겪고 있습니다. 어쩌면 올 시즌이 생애 첫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등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 모릅니다.
그동안 루니의 득점력은 많은 이들의 의구심을 품게 했습니다. 많은 슈팅을 시도했음에도 골로 연결 된 횟수가 기대치에 부족했기 때문이죠. 특히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123개의 슈팅 중에 12골을 넣으며 1골 넣는데 평균 10.25개의 슈팅을 날렸습니다. 그래서 국내 축구팬들은 루니의 슈팅이 상대 골문을 벗어날 때마다 '루니가 슈팅을 난사한다'는 말을 즐겨 썼습니다. 유효 슈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루니는 2007/08시즌과 2008/09시즌에 나란히 12골을 기록했으나 유효 슈팅 숫자는 각각 69개와 40개로서 골 결정력이 점점 떨어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시 루니의 골 결정력 부진 원인은 호날두를 돕는 이타적인 플레이 때문이었습니다. 호날두가 오른쪽 측면과 최전방을 휘저으며 골 기회를 노리던 사이, 루니는 최전방-하프라인-왼쪽 측면을 활발히 오가며 호날두를 비롯한 공격 옵션들의 활동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도맡았습니다. 그래서 루니는 골문에서 벗어난 지점에서 슈팅을 날리거나 상대 수비의 압박을 벗겨 내지 않은 상황에서 골을 시도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무수히 시도했던 과정에 비해 결과가 좋지 못하면서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외부의 지적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루니는 골에 있어 '롤러 코스터' 경향이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각종 대회를 포함해서 5경기, 6경기, 7경기 연속 무득점 기록을 각각 1번씩 기록했습니다. 지난해 4월 7일 포르투전부터 4월 25일 토트넘전까지 3경기에서 4골을 넣었으나 그 이후 7경기에서는 무득점에 빠졌습니다. 7경기 동안 날린 슈팅은 19개였으며 유효 슈팅이 3개였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2006/07시즌과 2007/08시즌에도 마찬가지였고 항상 어김없이 골 결정력에 대한 약점이 따라다녔습니다.
올 시즌에는 1골 넣는데 평균 8개의 슈팅을 날리며(112개 슈팅 14골) 지난 시즌보다 골 결정력 부족을 어느 정도 완화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수치는 디포의 평균 5.43개(76개 슈팅 14골)보다 효율적이지 못하지만 드록바의 평균 7.5개(105개 슈팅 14골)와 비슷합니다. 이것은 슈팅 난사에 대한 약점을 극복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아직까지 5경기 이상 무득점에 시달린 적이 없을 정도로 롤러 코스터 모드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골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루니의 골 생산이 변화했음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는 루니의 역할이 호날두와 공존하던 시절과 차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루니는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전까지 이타적인 역할을 비롯 포지션이 다소 유동적 이었습니다. 반면에 호날두가 없는 올 시즌에는 최전방에서 골을 노리는 타겟맨으로 자리 잡았고 활동 반경도 상대팀 문전으로 고정 되었습니다. 루니의 골 결정력 향상을 위해 포지션을 최전방으로 고정시킨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판단은 선수의 마무리 본능이 춤을 추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루니는 골문 앞에서 골을 노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득점 상위권에 있던 선수에서 득점왕에 등극할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올 시즌의 루니는 그동안의 루니와 다릅니다. 호날두가 떠나면서 팀의 에이스로 떠올랐고 그동안 잠재되었던 골 결정력을 뽐내며 리그 득점 공동 1위를 기록하게 됐습니다. 왼쪽 측면이나 후방으로 이동하는 움직임을 줄이는 대신에 골문 안에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공략하고 골 기회를 틈틈이 노리며 팀의 득점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맨유는 호날두-테베즈의 이적 공백 속에서도 루니가 해결짓는 득점 루트로 재미를 봤습니다. 두 선수의 이적으로 파괴력이 약해진 것은 분명하나 루니의 마무리 본능 향상은 맨유에게 전력적인 플러스 요소가 됐습니다.
맨유는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4연패를 노리는 팀입니다. 그래서 루니에게 많은 골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올 시즌 112개의 슈팅을 날린 루니에 이어 팀 내 슈팅 2위를 기록한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의 기록이 46개(6골)임을 상기하면, 맨유의 공격은 루니의 골 역량을 끌어올리는데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루니는 동료 선수들이 만들어준 골 기회를 충분히 살린다면 지금처럼 꾸준히 골을 생산할 것입니다. 이렇게 될 경우, 루니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등극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드록바가 코트디부아르 대표팀 소속으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차출 된 것은 루니의 득점왕 등극 가능성을 밝게 비추는 요소입니다. 루니와 득점왕 경쟁을 벌이는 다른 선수들도 약점이 있습니다. 토레스는 불과 두달 전까지 탈장 수술 위기에 놓인데다 잔부상까지 겹쳤던 선수로서 시즌 후반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줄지 의문입니다. 득점 선두권에 있는 디포와 벤트는 그동안 골 생산에 있어 기복이 있었던 선수들입니다. 다만, 벤트가 찰튼 시절의 출중한 골 결정력을 되찾았다는 점에 있어서는 루니의 득점왕 등극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루니의 득점왕 등극이 현실적인 이유는 지금의 물 오른 골 생산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골 결정력에 대한 약점이 있었으나 매 시즌 10골 이상의 골을 기록했고 올 시즌에는 팀 내에서의 역할이 최전방으로 고정 되면서 골 숫자가 불어났습니다. 올 시즌 14골을 넣으면서 2007/08시즌과 2008/09시즌의 12골 기록을 넘었고 이대로의 기세라면 생애 첫 20골 고지 돌파와 함께 득점왕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최전방에서 골 생산을 도맡는 역할에 숙달된 지금이라면 득점왕을 달성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