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한국인 선수 첫번째 맞대결이 성사 되었습니다. 그것도 두 명의 한국인 선수가 나란히 풀타임 선발 출전하여 코리안 더비 대결 구도가 완벽하게 형성 됐습니다.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과 '조투소' 조원희(26, 위건)가 그 주인공 이었습니다.
박지성과 조원희는 31일 오전 5시(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맨유와 위건의 2009/10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라운드 경기에 풀타임 선발 출전했습니다. 박지성은 동료 선수들의 골을 돕는 이타적인 활약을 펼쳤고 조원희는 전반전에 부진했으나 후반들어 경기력이 회복되어 인상적인 경기 내용을 펼쳤습니다. 그동안 한국인 선수의 맞대결이 완벽하게 성사된 전례가 많지 않았음을 상기하면 두 선수의 맞대결에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모아졌을 것입니다.
경기는 맨유의 5-0 대승으로 끝났습니다. 전반 28분 웨인 루니의 선제골을 시작으로 32분 마이클 캐릭, 45분 하파엘 다 실바, 후반 5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30분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골로 대량 득점 승리했습니다. 맨유는 위건과의 슈팅 숫자에서 23-11(유효 슈팅 11-3), 점유율 63-37(%)의 확고한 우세를 점하여 2009년 일정을 기분 좋게 마무리했습니다. 아울러 맨유는 위건전 승리로 1위 첼시를 승점 2점(첼시 : 45, 맨유 43) 차이로 추격하여 선두 진입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박지성 맹활약, 조원희 부진 뚜렷했던 전반전
맨유는 위건전에서 4-4-2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맨유는 쿠쉬착을 골키퍼, 에브라-비디치-브라운-하파엘을 포백, 박지성-캐릭-플래처-발렌시아를 미드필더, 루니-베르바토프를 투톱에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조원희는 위건의 4-1-4-1 포메이션에서 샤르너와 함께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아 팀의 원톱인 로다예가를 보조하면서 수비형 미드필더인 토마스보다 윗 공간에 포진했습니다.
경기 초반 기선 제압을 잡은 팀은 맨유입니다. 캐릭-플래처 중앙 미드필더 조합이 안정적인 볼 관리를 앞세워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주로 오른쪽에서 많은 공격 기회를 잡았습니다. 플래처와 발렌시아가 오른쪽 공간을 활발하게 파고들고 루니가 박스 바깥 오른쪽에서 미드필더들과 연계 플레이를 통해 전방으로 과감하게 침투했습니다. 특히 루니는 7분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공격을 전개하고 9분에는 박지성이 오른쪽에서 공을 잡아 발렌시아에게 패스를 연결하는 등 맨유의 공격 옵션들이 상대 수비진을 흔들기 위해 좌우 공간을 흔드는데 집중했습니다.
박지성의 초반 몸놀림은 좋았습니다. 왼쪽 윙어이면서 경기 상황에 따라 오른쪽에서 패스를 받고 동료 선수에게 연결해 팀의 점유율을 높이려고 했으며 왼쪽 측면에서의 돌파 과정에서는 몸놀림이 가벼웠습니다. 특히 루니가 왼쪽에서 돌파를 시도할 때 근처에서 빈 공간을 창출하여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는 모습이 돋보였습니다. 반면에 조원희는 팀이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면서 공격적인 활약이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25분 백패스를 부정확하게 연결하여 옆줄아웃 되는 등 공격력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수비 상황에서는 캐릭-플래처의 패스 물줄기를 차단하지 못해 맨유에게 공격 기회를 허용하는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조원희를 비롯한 위건 미드필더들의 중원 장악 실패는 맨유가 점유율 축구 속에서 활발한 공격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요인이 됐습니다. 특히 맨유 미드필더들의 패스는 주로 루니쪽으로 쏠렸습니다. 루니는 최전방과 미드필더진을 활발히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격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18분 박스 오른쪽 부근에서 강력한 중거리슛을 날렸고 1분 뒤 박스 왼쪽 안에서 날린 슈팅이 골대를 맡고 나왔습니다. 20분에는 베르바토프가 후방에서의 롱볼을 박스 정면에서 받아 오른발 슈팅을 날렸으나 발에 타점이 빗맞아 공이 골대 바깥으로 향했습니다.
이러한 맨유의 공격적인 흐름속에 위건의 수비 밸런스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조원희-샤르너로 짜인 공격형 미드필더가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했으나 상대 공격의 예봉을 끊기 위한 압박이 느슨했고 동료 선수와의 간격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맨유가 위건 진영에서 많은 공격 기회를 잡았고 마침내 전반 중반에만 두 번이나 상대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28분 루니가 발렌시아 전진 패스에 이은 하파엘의 크로스를 박스 정면에서 오른발로 꺾어차면서 선제골을 넣었습니다. 32분에는 캐릭이 박스 오른쪽 부근에서 발렌시아의 패스를 받아 중거리 슈팅으로 골망을 가르며 추가골을 넣는데 성공했습니다.
특히 캐릭의 골은 박지성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박지성이 루니와 문전으로 쇄도하여 상대 수비의 혼란을 야기시켰고 그 과정에서 발렌시아의 공간 돌파가 이루어졌고 캐릭이 슈팅 타이밍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박지성은 움직임을 넓게 벌리며 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쳐 점유율 확보에 주력했고 43분 중원에서 빠르게 돌진하여 빌드업을 전개하며 팀 공격의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2분 뒤에는 하파엘이 플래처의 전진패스를 받아 360도 턴 동작으로 상대 수비수들을 제치고 왼발 추가골을 넣으며 맨유가 3-0 리드로 전반전을 마쳤습니다.
반면 조원희는 41분 박스 왼쪽 바깥에서 왼발 중거리 슈팅을 강하게 날렸으나 공이 너무 윗쪽으로 떴습니다. 맨유의 선제골 이후에는 41분 중거리 슈팅 이외에는 두드러진 활약이 없었으며 자신의 장점인 수비력과 공간 차단에서도 캐릭-플래처에게 밀리면서 위건의 전반전 3실점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조원희 부진의 또 다른 원인은 위건 포백가 너무 뒷쪽으로 내려가면서 미드필더들의 수비 부담이 커지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경기 출전 기회가 적었던 조원희가 동료 선수들과 밸런스를 구축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조원희의 경기력 회복 인상적이었던 후반전
맨유는 후반전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추가골을 넣으며 일찌감치 승리를 굳혔습니다. 5분 베르바토프가 박스 정면에서 발렌시아의 오른쪽 크로스를 받아 가벼운 오른발 슈팅으로 추가골을 기록했습니다. 베르바토프가 노마크에서 슈팅을 날린것은 위건 수비수들이 직접 견제에 실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경기에 임하는 집중력도 떨어졌습니다. 특히 베르바토프의 골 과정에서는 발렌시아의 오른쪽 크로스 타이밍과 정확도, 센스의 3박자가 모두 뛰어난 장면이었습니다. 발렌시아는 맨유의 첫번째와 두번째, 네번째 골 과정에 기여하며 친정팀 위건을 울렸습니다.
4-0으로 리드한 맨유는 패스와 빌드업의 타이밍을 늦추며 과도한 체력 소모를 방지했습니다. 하지만 경기를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공격 타이밍만 늦췄을 뿐 안정된 수비 밸런스를 앞세워 높은 점유율을 유지했습니다. 공격 과정에서는 상대 빈 공간을 노리는 패스에 초점을 맞췄고 박지성도 동료 선수들과 패스를 주고 받으며 가볍게 경기를 풀었습니다.
맨유가 우세를 점하던 사이, 조원희는 공격 포인트를 기록할 뻔했습니다. 16분 맨유 진영 왼쪽에서 은조고비아에게 왼쪽 패스를 정확하게 연결했고, 은조고비아가 문전 앞으로 치고 나가면서 슈팅을 날렸으나 공은 골대 바깥으로 향했습니다. 비록 골이 되지 못했지만, 은조고비아의 문전 침투를 유도한 조원희의 왼쪽 패스는 위건에게 골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이것은 조원희가 팀의 대량 실점과 전반전 부진 속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원희에게 어시스트를 허용할 뻔했던 맨유는 24분 베르바토프-비디치-에브라를 빼고 웰백-파비우-안데르손을 교체 투입했습니다. 29분에는 발렌시아가 박스 오른쪽에서 대기하던 상황에서 반대편에서 넘어온 루니의 패스를 받아 추가골을 성공시켰고 맨유는 5-0으로 달아났습니다. 발렌시아의 골이 터지기 1분 전에는 조원희가 자신의 슈팅으로 코너킥을 얻어냈습니다. 맨유 박스 중앙에서 슈팅을 날렸던 공이 캐릭의 몸에 맞고 코너킥이 되었습니다. 이어 조원희는 동료 선수들과 함께 패스를 주고 받으며 팀의 공격 분위기를 띄우는데 집중하는 모습 이었습니다.
박지성은 전반전에 비해 공격 과정에서 많은 기여를 하지 못했습니다. 어찌보면 박지성의 폼이 떨어진 것 처럼 보이지만 퍼거슨 감독이 교체시키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박지성의 공간 창출이 있었기에 맨유가 후반전에도 좌우 측면과 중앙에서 균형잡힌 공격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겁니다. 굳이 공을 잡지 않아도 공과 관련 없는 움직임에서 팀의 공격 전개를 돕는 이타적인 역할에 능했습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풀타임 출전시켜 맨유의 대량 득점을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는 맨유의 5-0 대승으로 끝나면서 2009년 마지막 경기를 기분좋은 승리로 장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