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A매치 루마니아전을 끝으로 축구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던 '축구 황제' 호나우두(35). 지난 2월 은퇴를 선언한 뒤 4개월 만에 브라질 축구협회가 마련했던 자신의 고별 경기 였습니다. 전반 30분 교체 투입하여 17분 동안 활약하며 축구 황제의 마지막을 장식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호나우두의 은퇴는 지구촌 축구팬들이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죠. 저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저는 호나우두를 1996/97시즌 FC 바르셀로나에서 뛸때부터 알게 됐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올 때, 집에서 숙제나 공부를 하던중에 심심할 때 TV에서 방영했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시청했습니다. TV에서는 호나우두가 출전했던 바르셀로나 경기를 많이 보여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에는 루이스 피구(바르셀로나 팬들의 주적)의 이름이 TV에서 루이스 피고로 불렸던 시절이었죠. 그때부터 유럽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호나우두가 펑펑 골을 넣는 모습을 보면서 유럽 축구에 친숙함을 느꼈습니다. 14~15년이 지난 지금도 호나우두를 향한 추억은 정말 각별했습니다. FIFA 축구 게임 시리즈에서 주로 호나우두 소속팀을 선택했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 이후의 호나우두 커리어는 많은 축구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인터 밀란, 레알 마드리드, AC밀란, 그리고 브라질 대표팀을 통해서 말입니다. 지난 2009년에는 브라질 코린티안스에서 활약하면서 한때 무시 못할 스탯을 쌓으며 남아공 월드컵 출전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전망됐습니다. 끝내 둥가 감독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많은 축구팬들이 축구 황제의 마지막 월드컵 무대를 바라고 있었죠. 그런 호나우두는 2000년대 초반에는 부상으로 힘겨워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득점왕(8골)에 오르고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며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지금도 역대 월드컵 최다 득점자(15골)로 이름을 남기고 있죠.

 

 

혹자는 호나우두를 발만 빠른 공격수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호나우두는 그 스피드를 완벽한 골 장면으로 만들 수 있는 선수입니다. 일시적이 아닌 '주기적'으로 말입니다. 스피드 뿐만 아니라 상대 진영에서 제대로 된 골 기회를 잡으면 어떤 형태로든 골을 넣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적어도 골을 넣겠다는 욕구는 제가 그때봤던 공격수들 중에서 가장 원기왕성 했습니다. 공격수의 본분은 골이지 그 이상의 존재가 개입되는 것은 곤란합니다. 저를 비롯한 다수의 축구팬들이 기억하는 호나우두는 '골을 잘 넣는 공격수' 였습니다. 발만 빠른 공격수는 지구촌에 매우 많습니다.

 

 

그렇다고 호나우두를 미화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느 존재든 과거의 추억을 회상할 때 강렬했던 임펙트를 떠올리는 것은 기본이죠. 물론 호나우두는 잘한 경기가 있을 것이고 안될 때도 있었을 겁니다. 프로야구의 '타격 7관왕' 이대호도 안타 못치는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속에서는 시즌 별 활약을 세세히 떠올리기 힘들 것입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피곤하죠. 결국에는 호나우두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골을 몰아쳤던, 꾸준히 골을 터뜨렸던, 적어도 골에 있어서는 지구상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활약상 말입니다. 축구를 최소 10년 넘게 좋아했던 분들 중에 대부분은 그런 마음을 느낄거라 생각 됩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호나우두의 루마니아전 은퇴 소식을 들으면서 안정환(35, 다롄 스더)을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안정환과 호나우두는 1976년생 동갑이었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각각 한국 축구, 세계 축구 역사를 화려하게 수놓았던 활약상까지 말입니다. 호나우두가 축구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던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제 안정환을 축구 선수로서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느꼈습니다. 안정환이 얼마전 TV 인터뷰를 통해 은퇴를 염두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죠. 2년 전에 은퇴를 생각했다는 멘트와 함께 말입니다.

 

 

제가 호나우두의 바르셀로나 시절 활약에 이끌려 유럽 축구를 좋아했다면, 1990년대 후반에는 안정환을 통해서 K리그 매력에 흠뻑 빠졌습니다. 물론 안정환만 바라봤던 것은 아닙니다. 수원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고종수, 천안의 슈퍼스타 신태용, 안양에서 우직한 모습을 보여줬던 최용수, 전북판 원투펀치 김도훈-박성배, 울산 자갈치 김현석 등 수많은 K리그 스타들을 보면서 르네상스 열기를 실감했습니다. 특히 수원과 부산의 경기때는 관중석 스탠드가 파란색(수원-부산을 상징하는 색깔. 당시 부산은 로얄즈 시절) 빛깔 이었습니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두 팀의 대결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고종수와 안정환의 맞대결을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1999년 6월 12일 코리아컵 멕시코전. 한국 입장에서는 멕시코전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1년 전 프랑스 월드컵에서 멕시코를 '1승 상대'로 설정했으나 끝내 1-3으로 패했죠. 그때를 설욕하기 위해서 가용할 수 있는 최정예 멤버를 활용했고 안정환이 왼쪽 윙 포워드로 기용됐습니다.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음에도 기뻤던 이유는 안정환이 멕시코 수비진을 농락했기 때문입니다. 왼쪽 측면에서의 민첩한 움직임과 빼어난 개인기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며 한국 공격을 주도하는 농익은 활약을 펼쳤죠. 특히 그의 '블랑코 개인기(멕시코 블랑코가 프랑스 월드컵 한국전에서 두 명의 수비진 사이를 파고들때 두 발로 볼을 잡고 점프)'가 멕시코전에서 성공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블랑코 개인기로 한국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멕시코를 상대로 말입니다.

 

 

안정환의 블랑코 개인기는 충격적 이었습니다. 한국이 프랑스 월드컵에서 탈락하면서 여론이 시끄러울 때, '우리나라는 블랑코처럼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가 없다'는 사람들의 말이 많았습니다. 고종수와 윤정환 같은 개인기가 출중한 선수들이 존재했던 한국 축구였지만 문제는 대표팀에서 지속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안정환은 블랑코 개인기로 '한국 선수도 개인기를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줬습니다. 상대 수비수를 따돌리는 개인기는 K리그에서도 계속 되었죠. 저는 그때 '우리나라 선수의 발재간이 이렇게 화려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2007년 한국을 방한했던 티에리 앙리가 안정환의 테크닉을 치켜 세웠던 것은 진심이었다고 봅니다.

 

 

축구팬 입장에서는 한국인 선수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성공 사례가 없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축구 황제 호나우두가 평정했던 리그 말입니다. 하지만 안정환이 전성기 때 스페인 진출이 이루어졌다면 그때는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그때는 안정환의 개인기가 한국에서 범접할 수 없는 포스였죠. 1990년대 후반 저의 마음을 뜨겁게 사로잡았던 호나우두와 안정환을 잊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다른 선수들도 있었지만, 특히 두 명의 화려한 아우라는 축구가 예술적인 스포츠임을 저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런 호나우두는 얼마전 축구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안정환은 은퇴를 앞두고 있습니다. 월드컵 영웅이자 A매치 71경기를 뛰었던 안정환이 언젠가 대표팀에서 화려하게 은퇴식을 치르는 날을 기대합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산소탱크' 박지성(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은 최근 축구계를 뜨겁게 달구는 대표적인 선수입니다. 지난 14일 아스날전 결승골로 국민적인 열광을 받았지만 최근 아시안컵 차출을 놓고 여론의 논란이 팽팽하게 가열됐습니다. 아시안컵 차출 찬성 및 반대 의견이 서로 맞물리는 상황이죠. 물론 박지성 본인은 오래전부터 아시안컵 참가를 열망했고 조광래호가 자신의 존재감을 원하지만 '박지성은 맨유에 전념하는 것이 좋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박지성은 오는 27일 조광래호에 합류하여 아시안컵에 참가합니다. 이번 아시안컵이 대표팀 은퇴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고, 1960년 이후 반세기 만에 아시아를 제패하는 상징성, 그리고 한국 대표팀의 주장이라는 책임감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하지만 아시안컵이 유럽 축구 시즌 중인 내년 1월에 열리기 때문에, 박지성을 비롯한 유럽파들은 잠시 소속팀에서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체력 및 컨디션, 아시안컵 이후 팀 내 입지 등이 민감한 부분이죠. 특히 박지성은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에 그의 차출을 우려하는 축구팬들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박지성 본인은 아시안컵 참가를 열망했습니다. 2년 전 부터 아시안컵에서 뛰기를 희망했고, 그 대회가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마지막 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카타르행 비행기에 탑승하기를 원했습니다.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커리어는 '아시아의 축구 영웅' 박지성이라면 충분히 욕심을 낼 수 있습니다. 대회 차출 논란을 떠나, 엄연히 선수 본인의 의사이기 때문에 그것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국 축구, 박지성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다

지난 2008년 4월로 되돌아가면, 어느 모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박지성을 베이징 올림픽 와일드카드 차출하고 싶은 의사를 표현하면서 여론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 해 6월에는 박지성이 성인 대표팀 훈련 도중 무릎 이상이 생기면서 와일드카드 차출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맨유측이 박지성의 무릎 상태를 우려하며 휴식이 필요하다는 공문을 보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차출을 막았죠. 박지성의 맨유 입지 또한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무릎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베이징 올림픽에 출전했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무릎입니다. 축구 선수에게 무릎은 제2의 심장으로 통하며, 하체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무릎을 잘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지금까지 세 번의 무릎 수술을 받았으며, 대표팀에 차출되면 무릎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부지기수 였습니다. 지난 10월에는 A매치 일본전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무릎 부상에 직면하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2007년 4월 오른쪽 무릎 재생 수술을 받았던 부위에 고통이 찾아오면서 물까지 찼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면서 많은 경기를 치렀고 장거리 비행까지 감수했기 때문에 무릎이 정상적이지 못했죠.

더욱 안타까운 것은, 무릎 부상은 언제든지 재발합니다. 박지성은 3년전 무릎 수술을 받았지만, 그 후유증이 관절염 증세로 이어지면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사례가 총 3차례(2008년 6월, 2009년 10월, 2010년 10월) 있었습니다. 무리하게 경기에 출전하면 무릎이 더 악화되어 부상 또는 슬럼프가 찾아오거나 컨디션 저하에 시달리는 안좋은 상황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박지성은 다음달인 내년이면 만 30세 입니다. 신체적인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고비점에 직면하게 됩니다. 한국과 잉글랜드를 오가며 대표팀과 소속팀 일정을 병행하기에는 박지성의 무릎이 혹사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피로 누적까지 포함하면 온 몸이 지치게 되죠. 대표팀 차출 이후 맨유에서 폼이 떨어졌던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박지성은 맨유 선수 입니다. 맨유로부터 일정한 계약 기간 동안(2012년 6월까지, 계약 연장 될 수 있음) 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박지성의 국적은 한국이며, 엄연히 한국 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으며 후배 선수들을 챙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을 영입한 것은 맨유의 선택이었고, 맨유로부터 주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수 본인은 맨유에서 오랫동안 뛰는 것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맨유에 전념하기 위해 이번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을 떠나려는 것이죠. 일시적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대표팀을 은퇴하겠다는 것입니다. 박지성의 맨유 롱런을 바라는 한국 축구라면 그 결정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축구인들은 언론을 통해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를 반대했습니다.(대표팀 선수 반응은 논외)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뛸 수 있다는 것이 공통된 요지죠. 물론 그 주장도 일리가 있습니다. 2014년이면 33세이고, 아직 대표팀에서의 영향력이 높기 때문에 4년 더 뛸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아쉬운 이유는, 박지성이 대표팀에서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무릎 부상 후유증에 시달리고, 언제 무릎 부상으로 몇개월 동안 결장할지 불안한 현 시점에서 2014년까지 대표팀과 소속팀 일정을 계속 병행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박지성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당연히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축구 선수는 경기력 못지않게 부상 예방도 중요하며, 그 책임은 박지성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박지성은 대표팀 은퇴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뜻은 무산 될 가능성을 염두해야 합니다. 대한축구협회(KFA)와의 협의가 필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대한축구협회(KFA) 대표팀 운영규정 제13조(선수의 의무) 2항에 보면 '(대표 선수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훈련 및 소집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즉, 박지성은 대한축구협회가 원하면 일정 기간 동안 대표팀의 일원이 되어야 합니다. 만약 대한축구협회가 박지성의 잦은 무릎 부상을 특별한 사유로 판단하면 대표팀 은퇴는 받아들여 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은 세계적인 선수입니다. 그의 축구 실력은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한축구협회가 모를 리 없죠.

만약 대한축구협회가 박지성의 은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는 2011년 아시안컵 이후에도 대표팀에 소집되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뛰어야 할지 모릅니다. 조광래 감독이 박지성의 브라질 월드컵 출전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축구협회가 그뜻을 수용할 여지가 있습니다. 또는 대한축구협회가 박지성의 의사를 받아들여 '아름다운 이별'을 택할 수 있죠.

그렇다고 대한축구협회를 안좋게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다. 박지성이 그동안 한국 축구를 위해 몸을 바쳐 공헌했던 것을 생각하여 올바르게 판단하기를 바란다는 뜻에서 언급했습니다. 박지성에게 계속 의지하면서 한국 축구의 발전을 바라는 것은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베이징 올림픽 사례까지 포함하면, 한국 축구는 박지성에게 너무 의지했습니다. 그 부담이 앞으로 계속 이어지면 결과적으로 박지성의 몸이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박지성의 무릎을 생각해서라도, 선수 본인의 은퇴 의사가 존중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

 

'거미손' 이운재(37, 수원)의 대표팀 은퇴는 이미 예상된 수순 이었습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K리그에서 슬럼프에 빠지면서 정성룡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에 팀 내 입지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시 대표팀 No.1 골키퍼로 자리잡더라도 앞으로 브라질 월드컵까지 4년의 시간이 남아야하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하는 숙명에 있었습니다. 결국, 이운재는 대표팀을 떠나야 할 최적의 시점에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운재의 은퇴가 아쉽게 느껴집니다. 1994년 3월 5일 김호 감독의 부름을 받아 미국전에서 데뷔전을 치른 이후 16년 동안 131경기에 출전했고,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남아공 월드컵 직전까지 '한국 최고의 골키퍼'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운재는 예전보다 순발력 및 신체의 반응속도가 늦어졌고 킥력까지 불안해지면서 기량 노쇠화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까지라도 그동안 꾸준히 유지했던 폼을 발휘했으면 좋았을껄...'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끝내 세월의 물리적인 흐름을 막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운재를 향한 대중들의 시선은 좋지 못했습니다. 아시안컵 음주 파동, 뱃살 논란, 남아공 월드컵 직전의 슬럼프 때문에 악플러들의 주된 비방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절에 비해 몸이 눈에 띄게 불어나면서 축구팬들에게 '돼운재'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자기관리 실패 및 대표팀 경쟁자 부족에 따른 나태함 때문에 몸무게가 늘어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죠. 일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이운재가 열심이 안한다'며 그를 비판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운재의 대표팀 은퇴가 박수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동안 한국 대표팀 부동의 골키퍼로서 멋진 선방을 과시했기 때문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슈팅을 다이빙 펀칭하여 한국의 4강 신화 디딤돌 역할을 했던 것을 비롯 수많은 경기에서 한국의 위기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며 한국 최고의 골키퍼임을 입증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필드 플레이어들이 즐비해도 골키퍼 한 명의 능력이 모자르면 그 팀은 원하는 결과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운재의 존재감은 한국 대표팀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운재를 너무 많이 출전시켰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이운재도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운재가 대표팀 경기에서 줄곧 주전 골키퍼 장갑을 쓰는 경우가 많다보니 '후배들 생각하지 않고 주전에 연연하는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 것이죠. 선수 선발 및 출전 권한은 감독에게 있지만 워낙 많은 경기에 출전했기 때문에 일부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역의 관점에서 보면 이운재는 남아공 월드컵 이전까지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던 골키퍼이자 어느 누구도 그를 실력으로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2007년 아시안컵 음주 파동으로 1년간 대표팀 자격 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태극마크 커리어가 이대로 끝나는 듯 싶었지만, 이듬해 수원에서의 신들린 선방으로 그해 11월 20일 사우디 아라비아전을 앞두고 다시 대표팀에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사우디 원정에서 한국의 무실점 승리(2-0 승)를 이끌며 한국의 '사우디 징크스' 극복의 주역으로 거듭나 다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습니다. 이운재의 존재감이 대표팀에게 절실했던 이유입니다.

그런 이운재는 사우디전을 앞두고 복귀하면서 줄곧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습니다. 3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있었기 때문에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절의 포스를 재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죠. 대표팀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신을 실력으로 넘어설 후배가 등장해야 한다는 것을 이운재도 인지 했습니다. 거의 매 경기에 한국의 골문을 지키면서 온갖 편견과 쓴소리를 들었던 어려움을 뒤로하고 16년 동안 대표팀 커리어를 이어간 것은 칭찬받아야 할 일입니다.

이운재에게는 하나의 인간으로써 따스한 마음을 지닌 선수였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에서 한국이 1-2로 패한 뒤, 후배 골키퍼 정성룡을 끌어안고 위로하며 다독였던 장면이 TV 카메라에 포착 되면서 여론의 호의적인 시선을 받았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독일전에서 0-1로 패한 뒤 벤치 멤버였던 라이벌 김병지에게 위로를 받았다면 8년 뒤에는 자신이 김병지의 입장이 되어 정성룡의 무거운 마음을 녹였습니다. 만약 이운재가 팀내 입지에 연연하며 정성룡을 외면했다면 그 후배 선수는 지금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것이며 한국 대표팀은 여전히 골키퍼 문제로 난관에 빠졌을 것입니다.

또한 이운재는 1996년 B형 간염 보균자로 드러나면서 2년 동안 투병의 세월을 보낸 끝에 골키퍼 1인자의 위치에 올라섰던 '인간승리의 주역' 입니다. 축구 선수는 경기장에서 뛰어야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고 꾸준히 기량을 유지하며 감각을 키울 수 있지만, 이운재는 그라운드가 아닌 간염 완치에 주력하며 재기의 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1999년 수원의 K리그 전관왕 주역으로 활약하며 재기에 성공했고 그 이후 히딩크 체제에서 당시 골키퍼 1인자였던 김병지와의 경쟁에서 실력으로 맞선끝에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 골키퍼 장갑을 쓰는데 성공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면서, 우리는 이운재를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 골키퍼라고 치켜세우지 않습니다. 이운재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정성룡에게 주전 골키퍼 장갑을 물려준데다 예전과 달리 순발력이 늦어졌기 때문이죠. 지난달 28일 수원vs서울의 라이벌전에서 이승렬에게 동점골 장면을 허용했던 장면에서 봤던 것 처럼 예전의 이운재라면 막을 수 있었던 슈팅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운재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운재가 정상 자리를 지켰던 것에 익숙했지만, 이제는 그가 하산하는 과정도 바라봐야 합니다. 이미 수원은 지난달 31일 광주전에서 이운재가 아닌 21세 영건 하강진을 선발 골키퍼로 기용하여 '포스트 이운재' 양성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오는 11일 나이지리아전은 이운재의 대표팀 은퇴 경기입니다. 황선홍-홍명보가 2002년 11월 20일 브라질전에서 은퇴 경기를 치르며 태극마크와 아름다운 작별의 시간을 가졌던 것 처럼, 이운재도 그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 축구의 영웅들이 있었지만 팬들의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으며 은퇴 경기를 치렀던 선수들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정상 자리를 지키기 위해 16년 동안 노력했던 그는 대중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한국 축구를 빛냈던 영웅의 퇴장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Posted by 나이스블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