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손' 이운재(37, 수원)의 대표팀 은퇴는 이미 예상된 수순 이었습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K리그에서 슬럼프에 빠지면서 정성룡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에 팀 내 입지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시 대표팀 No.1 골키퍼로 자리잡더라도 앞으로 브라질 월드컵까지 4년의 시간이 남아야하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하는 숙명에 있었습니다. 결국, 이운재는 대표팀을 떠나야 할 최적의 시점에서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운재의 은퇴가 아쉽게 느껴집니다. 1994년 3월 5일 김호 감독의 부름을 받아 미국전에서 데뷔전을 치른 이후 16년 동안 131경기에 출전했고,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남아공 월드컵 직전까지 '한국 최고의 골키퍼'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이운재는 예전보다 순발력 및 신체의 반응속도가 늦어졌고 킥력까지 불안해지면서 기량 노쇠화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본선까지라도 그동안 꾸준히 유지했던 폼을 발휘했으면 좋았을껄...'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끝내 세월의 물리적인 흐름을 막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운재를 향한 대중들의 시선은 좋지 못했습니다. 아시안컵 음주 파동, 뱃살 논란, 남아공 월드컵 직전의 슬럼프 때문에 악플러들의 주된 비방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절에 비해 몸이 눈에 띄게 불어나면서 축구팬들에게 '돼운재'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자기관리 실패 및 대표팀 경쟁자 부족에 따른 나태함 때문에 몸무게가 늘어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죠. 일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이운재가 열심이 안한다'며 그를 비판했습니다.
그럼에도 이운재의 대표팀 은퇴가 박수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동안 한국 대표팀 부동의 골키퍼로서 멋진 선방을 과시했기 때문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슈팅을 다이빙 펀칭하여 한국의 4강 신화 디딤돌 역할을 했던 것을 비롯 수많은 경기에서 한국의 위기 상황을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며 한국 최고의 골키퍼임을 입증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필드 플레이어들이 즐비해도 골키퍼 한 명의 능력이 모자르면 그 팀은 원하는 결과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운재의 존재감은 한국 대표팀에게 큰 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운재를 너무 많이 출전시켰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며 이운재도 경쟁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운재가 대표팀 경기에서 줄곧 주전 골키퍼 장갑을 쓰는 경우가 많다보니 '후배들 생각하지 않고 주전에 연연하는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 것이죠. 선수 선발 및 출전 권한은 감독에게 있지만 워낙 많은 경기에 출전했기 때문에 일부에서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역의 관점에서 보면 이운재는 남아공 월드컵 이전까지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던 골키퍼이자 어느 누구도 그를 실력으로 제압하지 못했습니다. 특히 2007년 아시안컵 음주 파동으로 1년간 대표팀 자격 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태극마크 커리어가 이대로 끝나는 듯 싶었지만, 이듬해 수원에서의 신들린 선방으로 그해 11월 20일 사우디 아라비아전을 앞두고 다시 대표팀에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사우디 원정에서 한국의 무실점 승리(2-0 승)를 이끌며 한국의 '사우디 징크스' 극복의 주역으로 거듭나 다시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했습니다. 이운재의 존재감이 대표팀에게 절실했던 이유입니다.
그런 이운재는 사우디전을 앞두고 복귀하면서 줄곧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습니다. 3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나이에 있었기 때문에 2002년 한일 월드컵 시절의 포스를 재현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깨닫게 된 것이죠. 대표팀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신을 실력으로 넘어설 후배가 등장해야 한다는 것을 이운재도 인지 했습니다. 거의 매 경기에 한국의 골문을 지키면서 온갖 편견과 쓴소리를 들었던 어려움을 뒤로하고 16년 동안 대표팀 커리어를 이어간 것은 칭찬받아야 할 일입니다.
이운재에게는 하나의 인간으로써 따스한 마음을 지닌 선수였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에서 한국이 1-2로 패한 뒤, 후배 골키퍼 정성룡을 끌어안고 위로하며 다독였던 장면이 TV 카메라에 포착 되면서 여론의 호의적인 시선을 받았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독일전에서 0-1로 패한 뒤 벤치 멤버였던 라이벌 김병지에게 위로를 받았다면 8년 뒤에는 자신이 김병지의 입장이 되어 정성룡의 무거운 마음을 녹였습니다. 만약 이운재가 팀내 입지에 연연하며 정성룡을 외면했다면 그 후배 선수는 지금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것이며 한국 대표팀은 여전히 골키퍼 문제로 난관에 빠졌을 것입니다.
또한 이운재는 1996년 B형 간염 보균자로 드러나면서 2년 동안 투병의 세월을 보낸 끝에 골키퍼 1인자의 위치에 올라섰던 '인간승리의 주역' 입니다. 축구 선수는 경기장에서 뛰어야 자신의 가치를 드높이고 꾸준히 기량을 유지하며 감각을 키울 수 있지만, 이운재는 그라운드가 아닌 간염 완치에 주력하며 재기의 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 1999년 수원의 K리그 전관왕 주역으로 활약하며 재기에 성공했고 그 이후 히딩크 체제에서 당시 골키퍼 1인자였던 김병지와의 경쟁에서 실력으로 맞선끝에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 골키퍼 장갑을 쓰는데 성공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이 끝나면서, 우리는 이운재를 대표팀의 붙박이 주전 골키퍼라고 치켜세우지 않습니다. 이운재가 남아공 월드컵에서 정성룡에게 주전 골키퍼 장갑을 물려준데다 예전과 달리 순발력이 늦어졌기 때문이죠. 지난달 28일 수원vs서울의 라이벌전에서 이승렬에게 동점골 장면을 허용했던 장면에서 봤던 것 처럼 예전의 이운재라면 막을 수 있었던 슈팅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이운재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운재가 정상 자리를 지켰던 것에 익숙했지만, 이제는 그가 하산하는 과정도 바라봐야 합니다. 이미 수원은 지난달 31일 광주전에서 이운재가 아닌 21세 영건 하강진을 선발 골키퍼로 기용하여 '포스트 이운재' 양성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오는 11일 나이지리아전은 이운재의 대표팀 은퇴 경기입니다. 황선홍-홍명보가 2002년 11월 20일 브라질전에서 은퇴 경기를 치르며 태극마크와 아름다운 작별의 시간을 가졌던 것 처럼, 이운재도 그 시간을 보내게 됐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 축구의 영웅들이 있었지만 팬들의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으며 은퇴 경기를 치렀던 선수들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정상 자리를 지키기 위해 16년 동안 노력했던 그는 대중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한국 축구를 빛냈던 영웅의 퇴장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