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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둥가vs마라도나,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어쩌면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는 '남미 축구의 양대산맥'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우승을 다투는 모습을 볼 수 없을지 모릅니다. 브라질이 남미예선에서 9승6무1패 조 1위의 성적으로 월드컵 본선 조기 진출을 확정지은 반면에 아르헨티나는 6승4무6패 조 5위의 성적으로 북중미와의 플레이오프를 통해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려야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특히 아르헨티나는 최근 남미예선 3연패로 부진한 상황에서 남은 예선 2경기에서도 부진하면 각각 승점 1점 차이로 추격중인 우루과이, 콜롬비아에 밀려 월드컵 예선 탈락의 수모를 겪게 됩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엇갈린 행보는 축구에서 감독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를 알 수 있는 척도입니다. 브라질의 오름세는 카를로스 둥가(46) 감독의 지도력이 빛났기에 가능한 것이며 아르헨티나의 내림세는 디에고 마라도나(49) 감독의 지도력 부재가 그 원인입니다. 둥가 감독과 마라도나 감독은 월드컵 우승으로 현역 선수 시절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지도자로서는 둥가 감독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행보를 보면 두 감독의 자질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1. 공통점은 부실한 감독 경력, 그런데?

둥가 감독과 마라도나 감독의 공통점은 감독 경력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둥가 감독은 일본 J리그 주빌로 이와타와 잉글랜드 퀸스파크 레인저스(QPR)에서 기술 이사를 맡았을 뿐 현장 지도자 경험이 없었으며 마라도나 감독은 1994년과 1995년에 걸쳐 만디유 데 코리엔테스, 라싱 감독을 각각 2개월, 4개월 역임했던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두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 선임 이후 '감독 경력이 부족하다'는 현지 여론의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어찌보면 무임승차의 대표적인 유형에 속하는 두 감독입니다.

하지만 두 감독의 경력은 축구 내적인 업무와 외적인 일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둥가 감독은 비록 현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하지 않았지만 기술 이사를 맡아 현역 시절에 이어 꾸준히 축구 종사자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마라도나 감독은 1997년 은퇴 이후 쿠바에서 약물 중독 치료를 했고 2004년에는 약물 쇼크로 중환자실에 들어가 사경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2005년에는 TV토크쇼 진행자로 나섰던 경력이 있고 그 외 축구 외적인 곳에서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축구에 대한 개념을 꾸준히 쌓았기 보다는 외도를 통해 여러차례 정체를 거듭했고 그 결과는 자신이 감독으로서 무능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말았습니다.

2. 감독 잘 뽑은 브라질vs감독 잘못 뽑은 아르헨티나

둥가 감독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브라질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습니다. 당시의 브라질은 호나우두-아드리아누-호나우지뉴-카카로 짜인 '판타스틱4'를 앞세워 월드컵 우승을 자신했으나 8강 프랑스전에서 무기력한 경기력 끝에 탈락했습니다. 실력은 최고이나 경기에서 승리하겠다는 정신력은 최악이었다는 것이 당시 브라질 축구의 현 주소였습니다. 그래서 브라질 축구협회는 현역 시절 브라질 대표팀에서 강인한 카리스마로 호화 선수들을 휘어잡았던 둥가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둥가 감독은 기술보다는 승리, 개인보다는 팀을 우선시한다는 지도 방침으로 선수들을 독려하며 자신의 팀으로 빠르게 흡수했습니다.

마라도나 감독은 지난해 10월 성적 부진으로 좌초하던 아르헨티나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습니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남미예선에서 5경기 연속 무승(4무1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자 새로운 전환점을 위해 마라도나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공격수 출신으로서 공격 축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데다 선수들과의 의사소통에도 문제가 없을거라 내다봤기 때문에 마라도나 감독을 선임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승리를 할 수 있는 전술 역량이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마라도나 감독은 사령탑 초기에 순항을 거듭했으나 지난 4월 볼리비아 원정 1-6 대패를 비롯 최근 남미예선 3연패로 궁지에 몰렸습니다. 그 원인은 전술 부족이었고 결과적으로 아르헨티나 축구협회는 감독을 잘못 뽑았습니다.

3. 지지 않는 팀vs이길 줄 모르는 팀

둥가 감독의 브라질은 남미예선 16경기에서 9승6무1패, 32득점 9실점을 기록했습니다. 비록 골은 브라질 이름값에 비해 많지 않지만 실점이 적었다는 것은 '지지않는 팀 컬러'를 자랑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둥가 감독은 4-2-3-1을 구사합니다. 질베르투 실바와 펠리페 멜루 같은 수비 역량이 뛰어난 선수들을 중원에 배치하고 오른쪽 윙어인 엘라누가 경기 상황에 따라 수비 역량을 늘리면서 포백의 수비 부담을 덜어줬습니다. 화려한 공격축구를 자랑하던 브라질의 전통적인 스타일에 비해 수비에 중점을 두는 둥가 감독의 '선수비 후역습' 전술은 한때 '안티 풋볼'이라는 이름으로 현지 여론의 지탄이 됐습니다. 하지만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및 남미예선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서 '실리 축구의 대가'로 재평가 받았습니다.

마라도나 감독의 전술은 뚜렷한 색깔이 없습니다. 지난 6일 브라질전과 10일 파라과이전만 봐도 그렇습니다. 브라질전에서 리오넬 메시의 드리블 돌파에 치중하는 4-4-2를 시도하다 1-3으로 패했지만 파라과이전에는 후안 베론의 패스와 크로스를 앞세운 4-4-2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0-1로 졌습니다. 그보다 더 문제는 에이스의 역량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기적인 공격 패턴과 부분 전술이 전무했습니다. 이러한 전술은 압박이 강화된 현대 축구와 타입이 맞지 않습니다. 팀이 완성되려면 전술적인 진화가 있어야 하지만 오히려 퇴보하고 말았습니다. 마라도나 감독은 자신의 전술을 앞세워 경기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지도자였습니다.

4 극강의 조직력vs모래알 조직력

조직력은 팀이 얼마만큼 완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이자 감독의 역량을 파악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둥가 감독은 4-2-3-1에 수비에 무게감을 두었는데, 수비는 개인 역량보다 조직적인 움직임이 중요시 됩니다. 포백의 하나된 호흡과 '질베르투-멜루'로 짜인 중원의 탄탄함, 좌우 측면에서 공격과 수비를 분담하는 호비뉴와 엘라누의 분업화, 카카에서 파비아누로 이어지는 공격 패턴은 흠잡을 곳이 없습니다. 3년 전 판타스틱4가 존재하던 시절에 비해 선수층이 얇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조직력이 더 강해졌다는 평가입니다.

마라도나 감독은 조직력보다 선수의 개인 역량에 초점을 맞추는 공격 전술을 펼치면서 중원과 포백이 약해지는 문제점에 직면했습니다. 중원을 맡는 '가고-마스체라노'는 팀 공격을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는 선수들이 아닙니다. 투톱 공격수가 최전방에 고정된 상황에서 한 선수가 전방 쪽으로 공격을 띄우는 역할을 맡아야 하나, 마라도나 감독은 그 전술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로인해 중원의 두 옵션은 각자의 역할에 치중하면서 공격수가 고립되고 공격 옵션끼리의 공격이 잘 안풀렸습니다. 또한 가고-마스체라노가 수비 상황에서 활동폭을 넓히지 못한 것은 포백까지 흔들리는 문제점으로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포백 옵션들도 호흡이 서로 안맞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조직력은 모래알에 비유할 수 밖에 없습니다.

5. 카카 잘 아는 둥가vs메시 모르는 마라도나

둥가 감독이 수비에 초점을 맞춘 것은 카카의 공격 재능이 팀의 구심점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의해서 였습니다. 카카는 전 소속팀인 AC밀란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경험이 있고 전방 공격수의 골을 위해 헌신적인 활약을 펼치는 선수로서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그 역량을 충분히 발휘 했습니다. 불과 1년전까지만 하더라도 호나우지뉴와의 공존 실패로 자신의 역량을 맘껏 쏟지 못했지만, 둥가 감독이 호나우지뉴를 정리하면서 빠르게 구심점으로 잡았습니다. 카카가 남미예선 10경기에서 9골 넣은 파비아누와 철벽호흡을 과시했던 것은 둥가 감독이 에이스를 잘 활용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마라도나 감독은 메시를 활용할 줄 모릅니다. 메시는 오른쪽 윙 포워드 혹은 제로톱 상황에서 공격형 미드필더의 역할에 강점을 발휘하는 선수일 뿐 타겟맨이 아닙니다. 하지만 마라도나 감독은 메시의 골 역량을 늘리기 위해 박스 안에서 골을 노리는 역할을 부여했고 위치까지 고정시켰습니다. 부지런한 움직임과 넓은 활동폭을 자랑하는 메시의 역량을 떨어뜨렸고 그 결과는 팀 밸런스가 무너지는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지난 6일 브라질전에서는 메시를 처진 공격수로 놓으며 드리블 돌파를 주문했지만 동료 선수와의 연계 플레이 부족을 절감하고 말았습니다. 마라도나 감독은 팀의 에이스를 앞세워 공격 역량을 최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6. 호나우지뉴 쫓아낸 둥가vs리켈메 쫓아낸 마라도나

둥가 감독이 슬럼프로 부진한 호나우지뉴를 대표팀에서 제외한 것은 '최고의 선택' 이었습니다. 호나우지뉴는 전성기 시절에 비해 움직임과 파괴력, 스피드가 저하된 선수로서 대표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역량을 잃었습니다. 또한 호나우지뉴는 둥가 감독의 4-2-3-1에 적합한 선수가 아닙니다. 3의 중앙 자리인 공격형 미드필더는 상대의 거센 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순발력과 민첩함, 볼 키핑력이 중요합니다. 호나우지뉴보다는 카카가 둥가 감독의 공격 전술을 강화할 적임자였던 겁니다. 둥가 감독은 개인기보다 팀의 전술을 중요시했고 그 과정에서 호나우지뉴는 대표팀에서 제외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라도나 감독이 팀의 구심점이었던 리켈메를 대표팀에서 제외한 것은 '최악의 선택' 이었습니다. 리켈메는 플레이메이커로서 팀 공격을 이끄는 리더였지만,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를 놓는 마라도나 감독으로부터 이타적인 역할에 주문 받았습니다. 그 불만을 이기지 못한 리켈메는 지난 3월 "마라도나 감독의 대표팀에는 흥미없다"고 비아냥거리며 마라도나 감독과 불화에 빠졌고 결국 대표팀에서 제외됐습니다. 마라도나 감독은 리켈메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베론을 중용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10일 파라과이전에서 베론을 오른쪽 윙어로 놓은 것은 자신의 중앙 미드필더 운용이 틀렸음을 의미하는 대목입니다. 리켈메의 존재감이 아쉬운 이유입니다.

7. 경질 위기 넘긴 둥가vs경질 위기 맞은 마라도나

둥가 감독은 한때 브라질 여론에서 경질 압박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습니다. 화려한 공격 축구를 버리고 선수비 후역습 카드를 꺼내든 것, 남미예선 초반의 부진한 행보, 여론 입장에서 납득할 수 없는 선수 선발이 그 원인이었죠. 특히 선수 선발 과정에서는 디에고 대신에 조슈에를 꾸준히 발탁하면서 팬들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둥가 감독은 자신의 뚝심으로 끝까지 밀어붙여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월드컵 남미예선 조1위 및 본선 조기 진출의 성과를 올리며 경질 위기를 넘겼습니다. 자신의 선택이 독단적인 고집이 아닌 팀의 승리를 위한 과정 이었음을 브라질 국민들에게 과시한 것이죠.

마라도나 감독은 아르헨티나 사령탑을 맡은지 1년도 안되 경질 위기에 빠졌습니다. 최근 남미예선 3연패 및 5위 추락으로 월드컵 본선 탈락 위기에 빠진 것이 그 원인입니다. 팀의 승리를 이끌 수 있는 전술이 없었으며, 에이스를 활용하는 방법도 몰랐고, 팀의 조직력은 날이 갈수록 엉망이었습니다. 36세 노장 공격수인 마틴 팔레르모를 대표팀에 복귀시키고 A매치 출전 경험이 없던 36세 수비수 쉬아비를 10일 파라과이전에서 교체 멤버로 출전시킨 선수 선발도 납득을 얻지 못했습니다. 만약 감독직에서 경질되면 자신의 명성에 흠집이 가는 것은 불가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