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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토트넘전 결장, 오히려 반가웠다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13일 토트넘전 결장으로 3경기 연속 선발에서 제외됐습니다. 현지 언론에서는 박지성이 지난 5일 A매치 호주전 이후 일주일 동안 경기를 치르지 않은 것, 루이스 나니-안토니오 발렌시아가 주중과 주말 A매치에 모두 뛰었기 때문에 토트넘전 선발 출장을 예고했습니다. 하지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에게 냉정한 모습을 보이며 18인 엔트리에서 제외 시켰습니다.

우선,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18인 엔트리에서 제외한 것은 선수의 컨디션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이 그동안 대표팀 경기 이후에 컨디션 저하로 실전에서 여러차례 부진했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이 우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선수 선발은 기량 이전에 경기 당일 컨디션이 더 중요합니다. 퍼거슨 감독이 토트넘전에서 박지성을 18인 엔트리에서 제외한 것은 선수 보호차원에 의한 결과였습니다.

일각에서는 박지성의 토트넘전 결장을 공격력 문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틀리지 않는 말입니다. 맨유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떠나면서 공격력이 뛰어난 윙어를 선호하게 되었고 나니-발렌시아의 비중이 커지면서 박지성의 무게감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프리시즌에 팀에 늦게 합류하면서 시즌 초반부터 컨디션에 문제가 있었음을 상기하면 공격력은 3경기 연속 선발 제외의 두번째 이유일 뿐입니다. 첫째이자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컨디션 문제 입니다.

국내팬들 입장에서는 황금 같은 주말 밤에 박지성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을 아쉬워 할 것입니다. 하지만 나무가 아닌 숲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박지성의 토트넘전 결장은 오히려 반갑습니다. 박지성은 토트넘전 결장과 동시에 컨디션과 체력을 보충함으로써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컨디션이 정상적으로 올라오지 못한 상황에서 토트넘전에 무리하게 출전하면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기 어려운데다 팀 전력에 마이너스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4월 6일 FC 포르투전과 20일 에버튼전 부진이 그 예입니다. 또한 부상 가능성도 염려 됩니다. 박지성은 2007년 3월 23일 A매치 우루과이전을 마친 8일 뒤인 블랙번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9개월 동안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습니다.

박지성의 토트넘전 결장은 맨유의 다음 경기인 배식타스전 선발 출장과 연관 깊습니다. 맨유는 오는 16일 터키에서 배식타스와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 1차전 경기를 갖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원정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줬던 박지성에게는 배식타스전을 통해 자신의 저력을 떨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물론 배식타스의 전력이 약한것은 사실이지만 극성팬들이 많은 터키팬들의 거센 야유를 받을 원정팀 입장에서는 터키 원정이 부담스럽습니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박지성의 선발 출장 가능성이 높은 이유입니다.

박지성의 맨유는 앞으로 6경기 동안 1주일에 2번 간격으로 경기를 치러야 합니다. 16일 배식타스전(원정) 20일 맨체스터 시티전(홈) 24일 울버햄튼전(홈) 26일 스토크 시티전(원정) 10월 1일 볼프스부르크전(홈) 4일 선더랜드전(홈)을 치르는 바쁜 일정에 직면했습니다. 지난 시즌보다 공격 옵션이 엷어진 상황에서 최정예 멤버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맨유는 여러 대회에서 우승하도록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운용하기 때문에 박지성의 토트넘전 결장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한 경기에 결장하더라도, 3경기 연속 선발에서 제외되더라도 얼마든지 출전할 기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쓸 계획이 없었다면 지난 여름 이적시장에서 정리했을 것입니다. 박지성은 내년 여름에 맨유와 계약기간이 끝나는 선수입니다. 맨유가 박지성 이적을 통해 적지 않은 이적료를 챙길 수 있는 기회는 지난 여름 이적시장이 실질적인 마지막 이었습니다. 물론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다른 팀에 둥지를 틀 가능성은 있지만 퍼거슨 감독의 성향과는 맞지 않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아무리 스쿼드 플레이어라고 할지라도 시즌 끝까지 안고 가는 지도자입니다. 선수층이 두꺼울 수록 좋다는 것이 퍼거슨 감독의 지론이기 때문이죠.

일부에서는 박지성이 토트넘과 같은 중요한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게 불안하다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물론 토트넘전이 중요한 경기인것은 사실이지만, 중요한 경기가 한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토트넘전 못지 않게 배식타스전과 맨체스터 시티전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목표로 하는 맨유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경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경기를 따져가면서 박지성의 팀 내 입지를 걱정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느낌입니다.

만약 토트넘전이 중요한 경기라면 좌우 윙어로 선발 출장한 긱스-플래처는 나니-발렌시아를 능가하는 측면의 정예멤버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퍼거슨 감독은 토트넘전에서 미드필더진을 로테이션으로 운용했다는 것을 우리가 잊어선 안됩니다.

맨유는 토트넘전에서 긱스-플래처를 좌우 윙어에 포진 시켰습니다. 중앙 미드필더가 주 포지션인 두 선수가 측면을 맡은 것은 A매치에 차출된 박지성-발렌시아-나니의 체력을 보충하기 위한 퍼거슨 감독의 차선책입니다. 두 선수는 윙어로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긱스는 패스 성공률 65.8%(38개 시도 25개 성공)에 그칠 정도로 중앙에 있을때에 비해 패스 정확도가 떨어졌고 플래처는 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치면서 팀의 오른쪽 공격 템포를 떨어뜨리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긱스가 전반 24분 자신의 왼발 프리킥으로 동점골을 넣은 것은 선수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긱스-플래처, 나니-발렌시아 조합의 등장이 박지성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박지성은 비록 컨디션이 정상 궤도에 올라오지 못했지만 자신의 실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클래스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클래스 있는 선수는 언젠가 기량을 폭발하기 마련입니다. 박지성이 그랬습니다. 지난 4월 A매치 차출에 따른 컨디션 저하로 부진했지만 5월 3일 미들즈브러전 골 이후 가파른 활약을 펼쳐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선발로 뛰었습니다. 박지성의 클래스는 맨유에서 4년 동안 꾸준히 단련되었기 때문에 쉽게 허물어지지 않습니다. 박지성의 토트넘전 결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