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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공격형 윙어'로 성공해야 한다

 

지난 5일 A매치 호주전은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에게 터닝 포인트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박지성은 올 시즌 맨유에서 컨디션 저하로 폼이 떨어지자 퍼스트 터치와 패싱력, 볼 키핑력에서 불안함을 나타냈습니다. 하지만 호주전에서는 측면과 중앙을 활발히 번갈아가는 종횡무진 움직임과 적시적소에 맞는 패싱력을 앞세워 허정무호의 3-1 승리에 큰 몫을 해냈습니다. 호주전 맹활약은 맨유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을 되찾기에 충분했다는 평가입니다.

문제는 박지성이 맨유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박지성은 지난달 9일 커뮤니티 실드 첼시전에서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 공격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았습니다. 오른쪽 측면에서 프리롤 역할을 맡아 미드필더진과 공격진으로 거치는 패스 연결을 활발히 시도죠. 하지만 후반들어 첼시가 박지성쪽으로 향하는 맨유의 볼 줄기를 적시적소에 차단하면서, 박지성의 연결고리 역할은 전반전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이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박지성의 공격력에 중점을 맞추겠다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전략을 읽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박지성의 공격력은 상대편에 읽히기 쉽다는 것이죠.

더욱 아쉬운 것은, 박지성이 지난달 19일 번리전과 30일 아스날전에서 컨디션 저하로 고전을 면치 못했습니다. 지난 7월초 팀 훈련에 합류하여 폼을 일찍 끌어올렸다면 그때 즈음에 폼이 완성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번리전과 아스날전에서 들쑥날쑥한 활약을 펼쳐 공격력의 불안함을 키우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부진했던 경기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던 박지성의 지난날 행보와는 다른 모습입니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에게 공격 역량을 주문하는 이유는 '전 에이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맨유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호날두가 떠나면서 박지성의 역할이 '수비형 윙어'에서 '공격형 윙어'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올 시즌을 앞두고 박지성을 비롯해서 나니-발렌시아-마케다-웰백에게 총 40골을 주문했던 것은, 박지성이 골을 통해 공격적인 윙어로 거듭나기를 바랬던 겁니다. 박지성의 수비력은 더 이상 나무랄 것이 없기 때문에 공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퍼거슨 감독의 희망사항 입니다.

다른 감독이라면 박지성의 역할을 수비형 윙어로 고정했을 겁니다. 선수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역할을 주문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다릅니다. 선수의 능력보다는 팀 전술에 적합한 선수를 더 원했기 때문입니다. 루이스 나니가 박지성보다 공격력이 좋으나 지난 시즌 박지성에게 주전에서 밀렸던 것도 결국에는 전술에서 판가름 되었습니다. 호날두의 공격적인 균형을 맞추면서 그의 단점인 소극적인 수비가담을 커버할 수 있는 수비 성향의 윙어가 팀 전술에 필요했기 때문이죠. 그 선수가 바로 박지성 이었습니다.

맨유는 최근 2경기에서 나니와 안토니오 발렌시아를 선발 좌우 윙어로 기용 했습니다. 그런데 두 선수의 역할은 서로 다릅니다. 한 명이 이기적인 성향의 윙어라면 다른 한 명은 이타적인 역할에 힘을 실어주는 선수입니다. 지난 시즌의 호날두-박지성 조합 스타일과 유사합니다. 이것은, 퍼거슨 감독이 이기적-이타적 성향의 윙어를 좌우 측면에 배치하여 공격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때 방출 위기에 놓이던 나니가 호날두 이적 이후 팀 내에서의 비중이 커진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경기 내용에서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나니를 선발 멤버로 기용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나니의 공격 포인트 역량을 믿기 때문에 나머지 불안 요소는 어쩔 수 없이 안고 가겠다는 전략입니다.

당초, 국내 축구팬들이 올 시즌 개막전에 예상했던 맨유의 윙어 조합은 박지성-발렌시아 조합 이었습니다. 나니는 지난 시즌에 부진했고 방출설에 놓였기 때문에 박지성과 발렌시아가 측면의 믿을맨 역할을 도맡을 것이라 생각 했습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이름값으로 선수를 기용하는 감독이 아니었습니다. 팀 전술에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선수를 원했던 것이며 이기적-이타적 성향의 윙어 조합을 계속 밀고 나갈 가능성이 큽니다. 호날두의 존재감 속에서 중요한 경기때 마다 선발 출전 기회가 많았던 박지성에게 새로운 국면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박지성이 올 시즌 맨유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공격력에서 퍼거슨 감독의 눈도장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부지런한 움직임과 넓은 활동폭을 앞세운 적극적인 수비가담으로 중원과 수비 쪽에 힘을 불어 넣었다면 이제는 그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공격력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지금은 컨디션 저하와 맞물려 공격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폼을 끌어 올려 공격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경기 내용이 불안한 나니를 밀어낼 수 있는 임펙트를 꾸준히 발휘해야 수비형 윙어에 이어 공격형 윙어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물론 한 가지 변수는 있습니다. 바로 발렌시아 입니다. 발렌시아는 지난 아스날전에서 가엘 클리시의 압박에 막혀 이렇다할 힘을 쓰지 못했고 이것은 맨유가 경기 내용에서 고전했던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지난 시즌의 박지성이라면 팀의 미드필더들이 상대의 기세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간을 활용하는 이타적인 활약을 펼쳐 경기 주도권을 장악하는데 큰 힘을 보탰을 것입니다.

하지만 발렌시아는 공간을 앞세운 박지성과 다른 타입의 이타적인 윙어입니다. 패스와 크로스가 좋으나 스스로 빈 공간을 창출하지 못하고, 활동 반경이 좁고, 상대 압박을 유연하게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발렌시아가 팀 전술에 부합되지 못한 활약을 펼치면 퍼거슨 감독이 '나니-박지성' 조합을 신뢰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박지성이 공격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우선입니다. 나니-발렌시아와의 경쟁력에서 우세를 점하기 위해서는 퍼거슨 감독이 원하는 역할을 충족시킬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지금까지 호날두와 호흡을 맞추면서 수비적인 역량에 몸이 배었기 때문에 PSV 에인트호벤 시절의 공격적인 역량을 되찾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수도 있습니다. 박지성이 포기하지 않는 자세를 잃지 않는다면 시즌 중반이나 후반 무렵에 '업그레이드 박지성'의 모습을 퍼거슨 감독에게 각인 시킬 것입니다. 박지성이 공격형 윙어로 성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