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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A매치 부진' 이동국을 위한 변명

 

2년 1개월 만에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이동국(30, 전북)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대단했습니다. 이동국이라는 이름 그 자체가 스타성을 상징하는 것과 동시에 현존하는 한국 선수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비난과 질타를 받았던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본프레레호와 아드보카트호 공격의 중심으로 뛰었던 것, 지난해 두 번의 방출(미들즈브러, 성남)을 이겨내고 올 시즌 K리그 득점 1위로 도약한 것, 그리고 최근에 있었던 대표팀 발탁 논란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에게 주목을 끌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파라과이전 활약 여부에 많은 이들의 초점이 모아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론에서 기대하던 '이동국 효과'는 없었습니다. 이동국은 파라과이전에서 이근호와 함께 투톱 공격수로 선발 출전하여 45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지만 골을 못 넣었습니다. 상대 수비진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동료 선수들에게 공격 기회를 열어주는 이타적인 활약에 나름대로 충실했지만 임펙트가 부족했습니다. 이동국의 움직임에 대한 여론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이동국의 움직임이 여전히 둔했다고 보는 부류가 있는 반면에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이 살아나면서 동료 선수들과의 호흡을 적극적으로 맞췄다는 부류가 있습니다. 이 같은 희비는 이동국의 활약을 바라보는 여론의 전체적인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이동국에 대한 평가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이동국의 파라과이전 활약상을 다룬 언론 기사들의 헤드라인이 이를 증명합니다. <'돌아온' 이동국 '많은 아쉬움 남긴 45분'>, <이동국, 두 번의 슈팅으로 마감한 대표팀 복귀전>, <'45분 출전' 아쉽게 끝이 난 이동국의 복귀전>, <이동국 '킬러 수능' 기대 이하> 라는 헤드라인을 내걸며 이동국의 활약이 기대에 못미쳤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김대길 KBS N 해설위원은 파라과이전 종료 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동국이 유연한 전술로 나선 파라과이 수비진에 막혀 대표팀 공격이 정체되고 막히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한국이 파라과이와의 전반전에서 무득점에 그친 원인은 이동국의 부진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동국의 파라과이전 활약상을 두고 '과연 이동국이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인가?'라는 의문을 보내고 있습니다. 파라과이전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 대표팀에서 얼굴을 못보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이동국 스타일의 타겟형 공격수(전방에서 활발히 움직이기보다 박스 안에 머무르는 유형을 지칭)는 현대 축구에서 통하지 않는다, 비효율적이다는 반응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동국이 왜 대표팀에서 안되는가?'라는 반응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이동국을 대표팀에 뽑은 허정무 감독의 반응은 다릅니다. 허정무 감독은 파라과이전 종료 후 "(이동국은 대표팀 경기 출전) 기회를 주기 위해 뽑았으며 하고자 하는 의욕과 의지는 높이 사고 싶다. 아주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못했다고도 볼 수 없으며 무난했다"며 이동국이 부진했다는 것을 부정하며,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었음을 강조했습니다. 2년 1개월만에 대표팀에 복귀한 선수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차원의 발언으로 볼 수 있지만 그 발언의 당사자가 허정무 감독인 것은 의외입니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이동국을 길들이기 위한 차원으로 경기력을 비판했던 지도자이자 '이동국 대표팀 발탁 논란'의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허정무 감독이 이동국을 대표팀에 뽑은 이유는 파라과이전을 통해 선수의 경기력을 시험하기 위한 차원이었습니다. 파라과이전 승리를 위해 선발로 기용했지만, 그 경기는 어디까지나 친선전이기 때문에 이동국의 현재 기량과 대표팀에서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이동국의 대표팀 발탁 논란에 대한 여론의 반응이 대표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는 문제점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대표팀에 우선적으로 차출하여 불안 요소를 잠재우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이렇다보니, 이동국의 파라과이전 활약상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습니다.

문제는 그 기대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던 겁니다. 파라과이전에 나선 이동국의 몸 상태가 안좋았기 때문이죠. 이동국은 7월초부터 한 달 동안 감기를 달고 살았습니다. 축구 선수들은 폐활량이 많기 때문에 감기 같은 감염 질환에 노출되기 쉬워 일반인들보다 증세가 심합니다. 이동국은 지금까지 감기를 이겨내고 소속팀 경기에 충실하여 거침없는 골 행진을 벌였습니다. 최근 K리그에서 기록한 골 수치만을 놓고 보면 이동국의 컨디션 및 활약상이 물에 올랐다는 판단을 할 수 있지만, 눈을 더 넓히면 이동국은 감기를 참아가면서 경기 출전을 강행했습니다.

물론 감기 하나 만으로 이동국을 변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동국은 이번 파라과이전까지 전북과 조모컵, 대표팀을 오가는 바쁜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최근 40여일 동안 세 팀에서 9경기에 출전했고, 지난달 4일부터 18일까지 약 3일 간격으로 5경기에 모습을 내밀었습니다. 감기에 걸린 시점도 그때부터 였습니다. 그것도 무덥고 습한 날씨속에서 빡빡한 일정을 보냈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가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K리그에서 연일 골을 터뜨렸던 것은 소속팀의 원톱으로서 팀 공격을 이끌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감이 막중했고 대표팀 합류에 대한 동기부여를 의식했기 때문에 많은 힘을 소모했던 겁니다. 그래서 조모컵과 대표팀에서는 정상적인 컨디션이 아닌 상황에서 경기에 임했습니다. 다른 감독으로부터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으며 경기를 치렀기 때문에 컨디션이 안좋은 상황에서 뭔가 보여줘야 하는 절박감이 있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파라과이전에 임한 이동국의 의욕을 칭찬했던 것은 립서비스가 아닌 진담 이었습니다.

그리고 2년 1개월 만에 대표팀에 합류한 이동국에게 당장의 맹활약을 바라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물론 이동국은 대표팀 경험이 풍부하지만 '젊은 피가 즐비한' 허정무호에서는 그동안 손발을 맞추지 않았던 선수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불안한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축구는 단체 경기이기 때문에 개인의 역량보다 호흡이 중요할 수 밖에 없으며, 최근 현대 축구의 흐름도 개인기보다 조직력이 중요시되는 현실입니다. 이동국은 파라과이전 종료 후 "새로운 선수들과 같이 훈련한 시간이 적어서 호흡에 문제를 보였다.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좋아질 것이다"며 짧은 소집 시간 속에서 호흡에 대한 문제점을 아쉬워했습니다.

특히 자신의 공격 파트너로 나왔던 이근호와 호흡을 맞춘적은 지금까지 딱 한 번 밖에 없었습니다. 2007년 7월 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후반 시작과 함께 나란히 투톱 공격수로 출전했던 것 이외에는 손발을 맞춘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이번 소집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서로의 공격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데 무리였습니다. K리그에서 발휘했던 공격 본능을 대표팀 경기에서 맘껏 쏟아내지 못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동국의 조모컵과 파라과이전에서의 기대 이하 활약 때문에 '국내용'이 아니냐는 반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두 경기만이 이동국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특히 파라과이전은 그저 45분만 뛰었습니다. 45분의 활약상만으로 대표팀에서 필요없다는 내용의 무용론을 주장하거나 월드컵 본선 출전이 힘들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르다는 느낌입니다. 선수 선발 권한을 쥐고 있는 허정무 감독은 이동국의 오는 9월 A매치 출전 여부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허정무 감독이 이동국을 대표팀에 꾸준히 중용하거나 혹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데려갈 의지가 있다면, 이동국에게 적당한 출전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2년 1개월 만에 대표팀에 합류하고 최근들어 고된 일정을 소화했던 선수에게 '압박 능력이 뛰어난' 파라과이전에서 폭발적인 활약을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앞으로 A매치가 여럿 있는데다 내년 1~2월 K리그 선수들이 주축이 될 장기 합숙훈련이 있는 만큼, 이동국은 아직 기회가 많습니다.

이동국의 파라과이전 활약상에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동국은 박주영, 이근호와 다른 유형의 선수인데다 그들과는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이동국은 그저 자신만의 장점을 키우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