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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디어메이트

제주 4.3사건, 제주도 예전 아픔이 잊혀지지 않기를

얼마 전 제주 4.3사건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제주 4.3사건 키워드가 상위에 떴을 뿐만 아니라 지난 4월 3일에는 1위에 오르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됐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 참석,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제주평화선언, 배우 유아인 발언이 엄청난 화제를 모았습니다. 특히 유아인이 "부끄럽게도 저도 4.3을 잘 몰랐다"고 언급했던 말이 지금도 저의 머릿속에 기억에 남습니다. 유아인의 말이 한국인 대부분의 인식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전까지만을 놓고 보면, 아마도 제주 4.3사건을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제가 지난 4월 2일 제주도에서 봤던 벚꽃 사진입니다. 단순히 찍어본 사진인데, 막상 사진 정리를 해보니 이 모습을 저의 제주 4.3사건 포스팅 첫 번째 사진으로 올리고 싶더군요. 벚꽃의 원산지가 제주도이니 말입니다. 제주도하면 여행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행지하면 많은 사람들은 제주도를 떠올립니다. 더욱이 제가 제주도에 갔을 때는 제주도에 벚꽃이 한창 피었습니다. 제주도가 수도권보다 벚꽃이 빨리 피더군요. 역시 제주도는 한국에서 가장 가볼만한 여행지 같습니다. 하지만 그 제주도에는 7년 7개월 동안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 당했던 아픔이 있는 곳입니다. 그 아픔이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알려지는 것 같습니다.

 

최근 제주 4.3사건을 새롭게 알게된 분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제주 4.3사건을 왜 몰랐을까?'라고 말입니다. 저로서도 제주 4.3사건은 잘 몰랐습니다. 그나마 이 사건을 인지하게 된 계기가 2018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었으며 문재인 대통령 참석 및 이효리 시 낭독이 화제의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아마 이 때를 기점으로 제주 4.3사건을 알게 된 분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4.3사건이 벌어진지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왜 이제서야 이 사건을 알게 되었는지는 저의 마음속에서 의문이 없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제주 4.3사건 70주년 추념사 핵심을 올립니다.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제주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다짐이었습니다. 과연 현 정부에서 제주 4.3사건이 얼마나 해결될지 알 수 없으나 지난해와 올해 제주 4.3사건 추념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어느 정도는 진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제주도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현 정부에서만 제주 4.3사건에 관심을 쏟은 것은 아닙니다.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 4.3진상규명특별법 제정 및 4.3위원회 출범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 4.3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 및 위령제 참석과 더불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을 향한 사과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제주 4.3사건 추념식에 참석했습니다. 12년 뒤인 2018년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면서 제주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강조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제주 4.3사건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잊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은 제주 4.3사건을 알고 싶어하는 분이라면 반드시 찾아야 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4.3의 과정을 상세히 알 수 있는 곳입니다. 기념관 건물이 그릇 모양을 연상케하는 모습이 특색있게 느껴졌습니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발포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3.1절 기념대회 도중 군정경찰이 군중을 향해 총탄을 쏘면서 6명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제주 민심이 들끓었습니다. 그 해 3월 10일부터 민관 합동 총파업이 펼쳐지면서 경찰에 항의했습니다. 하지만 4월 중순 검속자가 500명으로 늘어났으며, 미군 감찰보고서에 따르면 "10 x 12피트(약 3.3평)의 한 방에 35명이 수감됐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검속된 사람들은 늘었으며 1947년 3월 1일 발포사건부터 1948년 4월 3일 발발에 이르기까지 검속된 사람은 2,500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의 3.1기념식은 허가된 집회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에 전시된 판결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당시의 경찰이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안타까운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당시 제주도는 미군정이 실시되었으나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 식민 통치기구에서 일했던 경찰 및 관리가 재등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제주도 민심이 안좋았다고 합니다. 한국 근대사를 보면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는데 제주 4.3사건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서북청년회라는 극우청년단체까지 제주도로 들어오면서 경찰, 행정기관, 교육기관 등을 장악했다고 합니다. 1948년 초 서북청년회 단원이 760명 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제주도에서 이른바 빨갱이 사냥을 구실로 테러를 가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1948년 4월 3일 사태가 벌어지면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학살극이 벌어졌습니다.

 

제주 4.3사건의 책임은 당시의 미군정에게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경찰 및 관리를 재등용한 것도 문제였지만, 무리한 강경 진압 작전을 펼치면서 제주도민들이 잇따라 희생되는 안좋은 일이 거듭됐습니다.

 

당시 정부는 제주도 해안에서 5Km 이상 들어간 곳에 통행한 사람을 폭도로 간주하여 총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군경토벌대가 중산간마을에 불을 내거나 비무장 민간인들을 집단적으로 학살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그 정부의 대통령은 이승만입니다.

 

제주 4.3 평화기념관 옆에서 우연히 동백꽃을 봤습니다. 동백꽃은 제주 4.3사건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4.3의 영혼들은 붉은 동백꽃처럼 차가운 땅으로 소리없이 쓰러져갔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다음 날 4월 3일에는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제주 4.3사건 71주년 추념식이 펼쳐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제주평화선언(-삼다(三多)의 고난과 삼무(三無)의 평화-)은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핵심적인 부분을 언급하면 이렇습니다.

 

-제주는 젊습니다. 영원히 젊습니다. 성산 일출봉의 분화구처럼 항상 푸릅니다. 젊기 때문에 비극의 강렬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사적인 욕망에 갇힌 권력의 남용과 횡포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를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도덕적 선과 악을 상식의 느낌에 따라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그 당위의 선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젊음의 청순함과 단순성은 반드시 비극을 초래합니다. 비극이란 파멸이며 상실이며 억울한 존재의 울부짖음입니다. 파멸과 상실은 절망을 초래합니다. 그러나 젊음에게 절망은 좌절을 의마하지 않습니다. 절망은 젊음에게 평화의 직관을 선물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돌 많고, 바람 많고, 고통 받는 여자 많은 삼다의 섬. 그것은 고난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이 삼다의 처절한 절망 속에서 제주의 사람들은 도둑 없고, 거지 없고, 대문 없는 삼무의 여백과 평화의 감각을 창출했습니다. 삼다의 절망 속에서 삼무의 평화를 피어냈습니다. 백설 속에 피는 동백처럼. 삼무는 천하위공(天下爲公) 대동(大同)의 이상입니다.

 

-제주의 젊음은 비극 속에서 성장하면서 비극의 모든 성과를 수확했습니다. 정의를 한라산 현무암 굴곡진 아름다움 속에 구현하여 왔습니다. 제주는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제주는 탐라의 민중들이 창조하여 온 것입니다. 제주의 모험은 이여도의 꿈에서 시작하여 청춘의 열정과 비극적 아름다움을 결합시켰습니다. 그 결합의 힘이 바로 삼다삼무의 평화의 감각입니다.

 

-우리의 개체적 인식의 지평의 화전, 역전, 확대가 없이 평화는 달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는 모든 이데올로기, 편협한 개념적 사유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빨갱이는 설문대 할망이 만든 우주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명화된 문화의 발전과 유지에 필요한 근원적 요소 속에는 종교적 비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아인은 전국 대표 6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젊은 세대의 결의와 다짐을 했습니다. 자신도 4.3사건을 잘 몰랐다며 우리가 그 사건을 왜 몰라야 했는지 잘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주 4.3사건을 접하며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소환하고 현재로 만들어야 하는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와 더불어 젊은 세대가 4.3을 알아나가고 3세대 유족이 1세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언급했습니다.

 

추념식이 끝난 뒤에는 봉안관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제주 4.3사건 희생자 유해발굴을 통해 발굴된 유해를 봉안한 곳입니다. 4.3사건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은 2006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관련 목격자 및 유가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학살, 암매장지 현장발굴을 추진하였으며 희생자들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유해와 유가족의 유전자(DNA)감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봉안관에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화북, 제주국제공항, 선흘리, 태흥리, 도두동 등에서 발굴된 4.3희생자 유해가 안치되었다고 합니다.

 

차마 사진으로는 올리기가 무섭지만, 이곳에서는 제주 4.3사건 당시 최대 학살, 암매장지 중의 하나였던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 내 유해발굴 현장을 실물 크기로 재현 및 전시된 유해발굴 현장이 전시됐습니다. 다시는 한국에서 이러한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주 4.3평화공간에서는 제주 4.3사건 희생자 중에서 시신을 찾지 못해 묘가 없는 행방불명인 대상으로 개인표석을 설치해 넋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됐습니다. 행방불명 희생자는 4천여 명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의미있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각 전국 블로그 기자단이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 기원을 바라며 동백나무를 심었습니다. 서울미디어메이트에서는 서울 대표로서 동백나무를 심었네요. 동백나무가 무럭무럭 성장했으면 합니다.

 

변병생모녀상(작품제목 : 비설)도 볼 수 있었습니다. 1949년 1월 6일 변병생(당시 25세)과 그의 두 살배기 딸이 거친오름 북동쪽 지역에서 피신 도중에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후일 행인에 의해 눈더미 속에서 모녀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변병생모녀상은 당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던 두 사람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에는 제주시 초전읍 북촌리를 찾았습니다. 벚꽃이 한창 피어있는 곳을 들렸는데 알고보니 북촌리는 제주 4.3사건이 벌어졌을 때 '리' 단위로는 최대의 피해 마을로 기록됐다고 합니다. 이곳에는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북촌 너븐숭이 기념관이 조성됐습니다.

 

순이삼촌 문학비는 지난 2008년 정부에서 옴팡밭 부지를 매입하여 설치됐다고 합니다. 비석이 눕혀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쓰러졌던 희생자들의 모습이 표현됐습니다. 순이삼촌은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하는 소설가 현기영씨의 중편소설입니다. 이 책에서는 4.3사건의 참혹상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제주시 애월읍 하귀1리에 있는 영모원도 들렸습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의 넋을 위령하고,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희생자의 명예회복 및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 조성됐다고 합니다. 하귀리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절 야학운동 등을 통해 항일운동가가 많이 배출됐습니다. 이곳은 4.3영령 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 시절 하귀리를 지켜왔던 순국 선열, 6.25 및 베트남전 참전희생자를 한자리에 모신 추모공원이 조성됐습니다.

 

4월 4일에는 용눈이오름을 찾았습니다. 이곳은 다랑쉬오름 옆에 위치했습니다. 다랑쉬오름에서 일어난 4.3사건의 비참한 상황을 보고 들은 산 목격자라고 할 정도로 다랑쉬오름과 가깝습니다.

 

성산일출봉이 보이는 터진목도 들렸습니다. 터진목은 성산읍 지역의 4.3사건 희생자 460여 명 원혼을 기리는 추모공원이 조성됐습니다. 그와 더불어 4.3사건 당시 학살 당했던 주민들의 시신이 모래밭에 묻히거나 바닷물에 떠내려갔다고 합니다. 제주도의 인기 관광지 성산일출봉 근처에서 4.3사건 당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 줄은 몰랐습니다. 성산일출봉하면 여행 관련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우나 불과 몇십 년 전까지는 비극적인 장소였습니다. 

 

성산일출봉 옆에는 우뭇개해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터진목과 더불어 제주 4.3사건 때 주민들이 학살 당했던 해안이라고 합니다. 사진을 봐도 성산일출봉에 둘러쌓인채 고립된 모습이 눈에 띕니다. 그곳에서 주민들의 눈을 피해 잔학한 학살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제주도에서 제주 4.3사건 관련 장소들을 둘러보면서 '어떻게 이런 일이 한국에 있었나?'라는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지금의 한국에서 벌어지기 어려웠던 끔찍했던 일이 불과 몇십 년 전에 벌어진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건이 한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뚜렷하게 알려졌던 타이밍이 다소 늦은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물론 문재인 정부 이전에 제주 4.3사건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겠으나 유아인이 제주 4.3사건을 잘 몰랐다는 언급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는 제주 4.3사건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며 제주도가 과거에 겪었던 아픔이 한국인들에게 잊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월 3일 트위터를 통해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입장을 전했습니다.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이 이념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입니다. 더딘 발걸음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진상을 완전히 규명하고 배보상 문제와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등 제주도민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일에 더욱 힘을 기울이겠습니다. 대통령으로서 끝까지 챙기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4월 3일 트위터)

 

향후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그동안의 문제를 극복하는 방안 등이 이슈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주 4.3사건의 아픔이 치유되는데 있어서 국민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거듭될 수록 제주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입니다.

 

연예 블로거로 활동하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만약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상업 영화가 큰 인기를 얻는다면 제주 4.3사건은 대중들에게 강렬한 주목을 받는 또 다른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및 1987년 6월 민주 항쟁 향한 사람들의 주목도가 높았던 원동력 중에 하나가 상업 영화였습니다. 향후 제주 4.3사건 관련된 상업 영화가 제작되어 사람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