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을 새로 옮기는 이적생들에게는 외부의 편견이 따라붙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저 선수는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힘들 것 같다'는 편견이 바로 그것이죠. 당연한 현상입니다. 새롭게 얼굴을 보는 선수에 대해서는 성공 가능성이라는 긍정적 시각과 함께 불안 요소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죠. 성공한 이적생들이 있는가 하면 실패한 이적생들도 부지기수여서 외부에서 의구심을 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 축구의 아이콘' 박지성은 2005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입단 당시 현지 언론으로부터 갖은 쓴소리를 들었습니다. 맨유의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유니폼을 팔기 위해 맨유에 왔다, 마케팅 선수 등의 혹평을 받았으나 그라운드에서 보여준 실력으로 해처나가면서 많은 편견들을 이겨냈습니다. 외부의 편견을 넘어섰다는 것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4년 뒤, '블루 드래곤' 이청용이 7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가 될 날이 머지 않았습니다. 이청용은 볼튼과 이적 협상을 하기 위해 20일 잉글랜드로 떠났으며 메디컬테스트와 세부 계약을 거쳐 이적을 완료지을 계획입니다.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이청용도 4년전의 박지성처럼 외부의 편견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물론 몇몇 편견들은 박지성이 어느 정도 해소했지만 이청용 개인에 대한 편견까지 더해진 상황입니다. 이청용이 볼튼에서 성공하려면 편견의 장벽을 넘어서야 합니다. 그 편견은 4가지 입니다.
잉글랜드 대중지 <가디언>은 지난해 4월 박지성을 패러디하는 10개의 이미지를 올렸는데 그 중에 2개가 박성이 유니폼을 팔고 있는 모습과 합성된 것이었습니다. 맨유 현지팬인 마크 프로겟은 지난 5월 12일 맨유 공식 홈페이지에 글을 기고하며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영입한다고 했을때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박지성의 영입이 한국 선수를 이용해서 아시아에서 셔츠(유니폼) 판매를 노린 것으로 봤다. 그래서 맨유 전력에 도움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편견이 생긴 원인은 현지에서 아시아 축구를 잘 모르는데다 마케팅 목적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했던 동양인 선수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맨유에서의 성공으로 유니폼 판매원이 아님을 증명했지만, 현지에서는 여전히 동양인 선수를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습니다. 박지성 한명 만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입니다. 이청용도 프리미어리그 진출 초기에는 박지성처럼 유니폼 판매원 혹은 마케팅용 선수라는 현지의 혹평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뚜렷하게 성공했던 동양인 선수가 박지성과 이영표에 불과한 만큼, 그 대열에 이청용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청용은 적어도 한국인 선수 만큼은 유니폼 판매원이 아님을 그들에게 강렬한 임펙트를 남길 필요가 있습니다. 축구 선수는 그라운드에서의 실력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2. '피지컬이 열세인 선수는 EPL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라
프리미어리그는 다른 유럽 리그에 비해 상대팀 공격 옵션에게 가하는 압박이 심한데다 미드필더와 수비라인의 간격이 짧아 상대팀 공격형 미드필더가 많은 견제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다 보니, 피지컬이 뛰어난 미드필더 혹은 공격수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피지컬에 열세를 나타내는 선수는 상대팀 선수와의 힘 싸움에서 밀릴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테크니션 성향의 공격 옵션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프리미어리그의 전반적인 스타일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피지컬이 열세인 선수는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성공을 낙관할 수 없는 것이 축구팬들의 생각이자 편견입니다.
문제는 이청용의 피지컬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닙니다. 타고난 체격 조건과 힘이 좋은 윙어가 아닌데다 개인기와 패싱력을 앞세운 스타일을 선호하는 공격 옵션이기 때문에 피지컬 싸움에서 밀릴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까지는 꾸준한 훈련을 통해 바디 밸런스 향상에 노력하여 단점을 커버했고 K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 통할지는 의문입니다. 이청용이 피지컬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상대 선수의 허점을 파고드는 기교를 키워야 합니다. 때로는 단점을 덮으면서 때로는 장점을 부각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뽐내는 것이 이청용의 성공 답안입니다.
3. '이청용은 거친 선수'의 편견을 깨라
이청용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거친 선수' 입니다. 축구에서는 상대팀 선수와 공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로 몸싸움을 주고 받는 공방전을 펼칠 수 밖에 없으며 때로는 거친 행동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청용은 그 과정에서 도를 넘은 행동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상대팀 선수를 향해 위험한 태클을 날리는가 하면 점프하는 과정에서 쓸떼없는 발차기로 상대 복부를 가격하여 물의를 빚었습니다. 상대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하는 동작, 선배 선수와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까지 축구팬들의 비난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만약 이러한 행동을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범한다면 곤란합니다. 상대 복부 가격은 K리그에서는 징계를 받지 못했지만, 잉글랜드 같은 경우 잉글랜드 축구협회(FA)에 의해 추가 징계를 받을 수 있는 사안입니다. 또한 프리미어리그에서 즉각 퇴장당하면 3경기 출전 정지를 받기 때문에 위험한 플레이에 대해서는 판정 강도가 엄격합니다. 이청용이 거친 선수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는 때로는 몸싸움 과정에서 거칠게 나오는 순간이 있더라도 위험한 플레이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4. 'K리그 → 빅 리그 진출 선수는 실패한다'는 편견을 깨라
지금까지 K리그에서 빅 리그로 진출했던 한국인 선수 중에서 성공을 거둔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했던 원동력은 네덜란드라는 중소무대에서 체격 좋은 거구들을 상대로 거친 몸싸움을 통해 밸런스와 몸싸움 기술이 늘면서 경쟁력을 강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각각 스페인과 잉글랜드에서 실패했던 이천수, 이동국은 유럽 중소리그에서 검증을 거치지 않고 빅 리그 무대에 뛰어들었던 선수들입니다. 공교롭게도 이청용도 유럽 중소리그를 건너 뛰고 빅 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올해 21세의 이청용이 올 시즌 볼튼의 붙박이 주전으로 뛰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동안 K리그의 경기 템포와 몸싸움에 익숙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빅 리그의 스타일에 맞추기에는 적응이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팀 내 입지 향상에 대한 조급함을 자제하고 현지 축구 스타일에 배워가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하여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성공 가도를 달리면 됩니다. 한국인 선수들의 유럽 정착이 쉬어지기 위해서는 'K리그 → 빅 리그 진출 선수는 실패한다'는 공식이 언젠가는 깨져야 합니다. 이미 위건에 진출한 조원희, 그리고 이청용이 그 공식을 깰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그 공식이 없어지면 K리그의 가치가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