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생중계 일정이 없는 프로리그를 본 적이 있습니까? 한국 스포츠 No.1인 프로야구를 비롯해서 겨울철에 열리는 남녀 프로농구와 프로배구는 어김없이 생중계를 하지만, K리그는 생중계로 축구 경기를 시청하기 힘든 실정입니다. 믿기 어려우신 분들이 있겠지만, 이것이 아시아 최초 프로축구를 창설한 우리의 현실입니다.
블로거는 이번 주말(7월 18일~19일)에 열리는 K리그 방송 중계 일정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K리그 7경기 중에 3경기는 중계 일정이 없고 3경기는 녹화, 그리고 1경기는 후반전 생중계입니다. '축구팬들이 원하는' 풀타임 생중계는 단 한 경기도 없습니다. 프로야구는 케이블에서 연장전도 중계하고, 지난해 9월 3일 잠실 구장에서 열렸던 두산-한화 전에서는 밤 12시 넘도록 연장 18회까지 중계했는데 K리그는 케이블에서 마저도 풀타임 중계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프로야구의 높은 인기도 중요하지만, K리그를 중계하려면 적어도 기본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캡쳐=1번 캡쳐 자료는 개막전 중계 일정인데 7경기 모두 TV 생중계에 편성 되었습니다. 이때는 프로야구 개막 이전이었기 때문에 방송사들이 생중계 일정을 잡은 것입니다. 하지만 2번 캡쳐 자료는 이번 주말에 열리는 K리그 방송 중계 일정 입니다. 생중계는 단 한경기도 없습니다. (C) 효리사랑(프로축구연맹 홈페이지 일정 캡쳐)]
이번 주말에 열리는 7경기 중에서 수원-대전의 경기는 K리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빅 매치입니다. 두 팀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서포터즈들의 대립하면서 라이벌 관계로 발전했고 수원은 대전 원정에 약한 징크스로 유명합니다.(이번 경기는 수원 빅버드에서 열리지만) 이 경기를 후반전에 생중계하는 MBC ESPN은 축구팬들이 선호하는 방송국입니다. 목소리가 경쾌하고 경기 상황 판단이 빠른 신승대 아나운서, 수원 경기만 되면 샤우팅 뻥뻥 지르는 이상윤 해설위원, 해박한 축구 지식을 자랑하는 장지현 해설위원이 현장에서 전하는 목소리를, 축구팬들은 후반전부터 들어야만 합니다. 세 분이 전반전에 어떻게 중계하는지를 축구팬들은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방송사가 전반전에 중계를 안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강원-서울의 경기는 생중계해야 마땅한 경기입니다. 강원은 빠른 템포와 침투패스를 활용한 공격 축구, 그리고 팬들의 뜨거운 응원속에 K리그의 새로운 흥행 메이커로 자리잡았습니다. 서울은 두말할 필요없이 수원과 함께 K리그 흥행의 쌍두마차 역할을 하고 있죠. 어쩌면 다음주 초 잉글랜드 볼튼으로 출국할 것으로 알려진 이청용이 강원전을 끝으로 K리그 고별전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기는 중계 일정 조차 없습니다. 경기 장소가 강릉이기 때문에 서울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중계를 안하는 것 같습니다. 만약 이 경기가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다면 최소 1경기는 중계 일정이 잡혔을 것입니다.
강원-서울 경기의 문제는 지난 주말 전북-수원전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방송사들이 이 경기를 중계하지 않았던 이유는 경기 장소가 전주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날짜에 열린 서울-인천 전에서는 KBS N, MBC ESPN, SBS Sports가 전반 30분 이후 생중계 및 후반전 생중계 일정을 편성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는 방송 3사가 겹치기 중계일정을 했는데, 전주에는 단 한 경기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전파 낭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녹화 중계는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K리그는 방송사의 수입을 보장하고 3연전이라는 특성이 있는 프로야구의 파워에 밀릴 수 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하지만 K리그 녹화 중계는 자주 벌어져서는 안됩니다. K리그 중계를 영화 <타이타닉>에 비유하면, 관객들이 타이타닉호가 어떻게 침몰하는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어떻게 죽는지 그 외 등등 줄거리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를 봅니다. 당연히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될 수 밖에 없습니다. 축구는 각본없는 드라마로서 경기를 보는 짜릿함이 생명인데, 녹화 중계는 그런 느낌을 받기 어렵습니다.
후반전 중계는 더 문제 있습니다. 형식상 후반전 중계일 뿐, 실제로는 프로야구 경기 시간이 끝나면 곧바로 K리그 중계 모드로 들어갑니다. 이러다, 프로야구 생중계-K리그 후반전 중계라는 공식이 성립될까 걱정입니다. 영화 <타이타닉>에 비유하면, 관객들은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딪치는 그 순간부터 영화를 봅니다. 그 이전에 어떤 스토리가 있었는지 잘 모르고 누가 선역이고 악역인지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디카프리오가 갑판 위에서 케이트 윈슬렛의 두 팔을 옆으로 벌리며 애정을 나누는 장면도 못봤을 것입니다. 이것이 K리그 후반전 중계의 문제점입니다.
블로거는 지난달 27일 MBC ESPN이 대전-인천 경기를 후반전 중계했을 때, 장지현 해설위원의 "전반전 못보신 분들은 녹화 경기를 꼭 보시길 바랍니다. 대전의 올 시즌 최고의 경기였습니다"라는 멘트가 아직도 머릿속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블로거는 전반전에 그라운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머릿속으로 궁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블로거만의 생각이 아닌, K리그를 좋아하는 축구팬들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프로야구가 우천으로 취소되는 날에는 K리그 녹화 및 후반전 중계가 생중계 일정으로 앞당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녹화 및 후반전 생중계 일정이 편성된 것 자체만으로도 문제 있습니다. "K리그는 왜 중계를 제대로 하지 않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축구팬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K리그 경기를 보고 싶은 축구팬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K리그는 재미없다', 'K리그는 인기가 없다'는 편견이 있다고 할지라도 K리그 풀타임 생중계를 원하는 팬들 많습니다. 그런 편견도 방송사가 한 몫을 했습니다. 스포츠뉴스에서 K리그를 깎아내리는 편파성 보도 말입니다.
그리고 지난달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는 방송사들이 단 한경기도 생중계하지 않았습니다. AFC 챔피언스리그는 아시아 최고의 클럽 팀을 가리는 대회로서 K리그의 자존심, 더 나아가 한국 축구의 위상이 걸린 문제입니다. 국내 축구팬들은 어쩔 수 없이 인터넷에 있는 외국 방송으로 수원-서울-포항 경기를 보면서 버퍼링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포항-뉴캐슬 경기는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렸음에도 외국 방송으로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국내에서 열리는 경기를 외국 방송으로 봐야만 하는 현실을 솔직한 심정으로 표현하면 참으로 서럽습니다.
언제까지 K리그가 재미없다, 인가없다는 편견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K리그의 흥행은 필수 요소입니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이대로는 K리그를 홀대하는 방송사들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축구계에서 K리그 방송 중계 활성화를 위해 어떤 타개책을 제시하고 실행에 옮길지 주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