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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주영-이청용, '스페인 진출' 보고싶은 이유

 

일본 대표팀 에이스 나카무라 슌스케(31)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에스파뇰로 이적했습니다. 나카무라는 올해 여름 셀틱과의 계약이 만료되면서 친정팀 요코하마 마리노스 복귀를 추진했지만 연봉 협상에서 마찰을 빚으면서 행선지를 스페인으로 틀었습니다. 자신의 유연한 기술능력과 경기 운영 방식이 프리메라리가 스타일에 적합한데다 빅 리그에서 뛸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에스파뇰 이적을 택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나카무라의 프리메라리가 성공 가능성은 쉽게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이탈리아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현란한 발재간과 정교한 킥력, 부드러운 패싱력을 발휘했지만 '기술력을 중요시하는' 스페인에서 통할지는 의문입니다. 스페인리그는 스페인 선수들을 비롯해서 포르투갈, 브라질, 아르헨티나 같은 라틴 계열의 선수들이 밀집 된 곳으로서 공을 잘 다루는 선수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지만 나카무라의 기술이 통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일본 선수들의 기술력은 아시아에서는 최고입니다. 하지만 기술축구의 요람지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성공한 선수들은 지금까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2000년 1월 조 쇼지(전 바야돌리드)를 시작으로해서 니시자와 아키노리(전 에스파뇰) 오쿠보 요시토(전 마요르카)가 프리메라리가 무대를 밟았지만 기량 차이를 이기지 못하고 실패했습니다.(후쿠다 켄지는 2006년 스페인 라스 팔마스에 진출했지만 그가 진출한 무대는 프리메라리가가 아닌 스페인 2부리그였습니다.) 현존하는 아시아 축구 선수 중에서 스페인리그에서 성공한 선수는 이란 미드필더 자바드 네쿠남(오사수나) 뿐입니다.

한국 선수들도 일본인들 처럼 프리메라리가에서 성공한 케이스는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이천수(2003년 7월, 레알 소시에다드&누만시아) 이호진(2006년 1월, 라싱 산탄테르)이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하여 경기에 출전한 경험이 있지만, 경기력 부진 및 적응 실패를 이유로 쓸쓸히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특히 이천수의 실패는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입니다. 프리메라리가 데뷔 시즌이던 2003/04시즌 13경기 출전 무득점에 그친데다 리저브팀으로 밀려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개인기와 스피드, 민첩성을 비롯해서 상대 수비를 제치는 역량과 볼 키핑력에서 약점을 드러내며 동양인의 한계를 넘지 못했죠. 프리메라리가 특유의 패스 위주 공격 패턴에 적응하지 못하더니, 급기야 누만시아 임대 시절에는 오른쪽 풀백으로 밀렸을 만큼 자신의 출중한 공격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스페인 현지 에이전트 사이에서는 이천수의 부진으로 한국 선수의 스페인 진출이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습니다. 레알 소시에다드가 이천수의 2002년 한일 월드컵 활약상을 높이 평가하여 즉시 전력감으로 영입했기 때문에 스페인쪽에서 실망감이 클 수 밖에 없었죠. 이러한 이천수의 실패는 한국인 선수들의 프리메라리가 진출이 활발하지 못했던 원인으로 작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프리메라리가는 외국인 선수 제한을 NON-EU(비 유럽연합) 선수 보유 한도 4명, 한 경기 최대 출전선수 3명(이중국적자 제외)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 선수들과 기술이 비슷한 남미, 아프리카 선수들을 NON-EU 형태로 영입했습니다. 기술력에서 이들에게 밀리는 한국인 선수의 스페인 진출이 뜸할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 원인은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프리메라리가가 한국인 선수들이 성공할 수 없는 리그라는 고정관념이 깨져야 합니다. 한국 축구의 인지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유능한 선수들이 유럽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데, 3대 빅 리그 중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만족할 수 없습니다. 프리미어리그도 프리메라리가처럼 엄연히 자신들만의 고유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선수라도 실패할 수 있는 법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프리메라리가와 이탈리아 세리에A 같은 또 다른 빅 리그 진출이 늘어야 합니다. 그럴 수록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폭이 커지기 때문이죠.

그동안 프리미어리그 진출설로 주목 받았던 박주영(24, AS 모나코) 이청용(21, FC서울)도 마찬가지 입니다. 두 선수가 빅 리그 진출을 노린다면 프리미어리그를 노크할지 모르지만, 사실 이들의 스타일은 프리미어리그와 맞지 않습니다. 박주영은 그동안의 부상 후유증 때문에 모나코에서 부지런한 움직임과 넓은 활동폭, 빠른 공수전개에 취약한 아쉬움을 드러냈고 이청용은 몸싸움과 피지컬이 약한 선수로서 거친 수비와 두꺼운 압박을 자랑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고전하기 쉬운 타입 입니다. 세리에A가 거친것을 비롯해서 개인기 구사가 쉽지 않은 리그라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남은 빅 리그는 프리메라리가가 됩니다.

박주영과 이청용은 기술로 승부하는 타입입니다. 박주영이 모나코 공격의 중심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팀 공격을 유연하게 이끌어가는 플레이메이킹 능력과 예리한 패스 감각, 상대 수비를 한꺼풀 벗겨내는 기교가 팀원들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프리메라리가가 플레이메이커들의 지능적인 경기 운영과 개인기를 위주로 공격 전개되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박주영과 궁합이 잘 맞을수도 있습니다. 이청용은 오른쪽 윙어 뿐만 아니라 중앙과 왼쪽 공간에서 자신의 기술력으로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히 오른쪽 측면에서 문전으로 찔러주는 패스가 전매특허이기 때문에 프리메라리가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것임엔 분명합니다.

현실적으로는 두 선수의 프리메라리가 진출을 낙관할 수 없습니다. 박주영은 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데다 월드컵 병역면제가 폐지되었기 때문에 몇년 뒤 상무에 입대할 가능성이 큽니다. 빅 리그 입장에서도 오랫동안 활용할 수 없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영입을 꺼릴 여지가 있습니다. 이청용은 중학교 중퇴 신분으로서(2004년 중퇴) 병역 면제를 받았지만 프리메라리가 진출 이전에는 유럽 중상위권 리그에서 자신의 기량을 검증받으며 유럽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미 FC서울측과 유럽 진출을 추진중이기 때문에 적어도 1~2년 안으로는 유럽으로 떠날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이청용은 그동안 여러 언론을 통해 프리미어리그보다 프리메라리가 진출을 바라는 인터뷰를 했습니다. 프리미어리그는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은 반면에 프리메라리가는 경기 스타일이 패스 위주인데다 경기가 즐겁기 때문에 스페인에 꼭 가고 싶다는 말을 했죠.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싶은 꿈을 키우며 지금까지 성장했던 선수이기 때문에 한국인 선수를 비롯한 아시아권 선수들이 프리메라리가에서 성공하기 힘든 고정관념을 스스로 극복할지 앞으로가 주목됩니다. 또한 박주영도 재능만을 놓고 보면 프리메라리가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역량과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빅 리그 진출이라는 목표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스페인 에스파뇰에 진출한 나카무라의 활약 여부는 한국인 선수가 프리메라리가에서 통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나타내는 척도가 될 것입니다. 박주영과 이청용의 기술력은 언젠가 나카무라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역량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주영과 이청용 이외에도 또 다른 한국 선수가 프리메라리가에 도전장을 내밀지는 모르지만, 두 선수 만큼은 프리메라리가 특유의 기술과 궁합이 맞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한국 축구의 10년을 짊어질 재목으로 인정받는 박주영과 이청용이 스페인 무대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