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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이청용 EPL 볼튼 이적, 실패 가능성 크다



'블루 드래곤' 이청용(21, FC서울)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볼튼 원더러스(이하 볼튼) 진출설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볼튼이 지난 10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A매치 한국-사우디 아라비아의 경기에서 이청용의 경기력을 관찰하기 위해 스카우터를 파견한 것으로 알려져 볼튼 진출 여부가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이청용은 지난 13일 국가대표팀 훈련 합류 후 가진 인터뷰에서 "팀(서울)도 만족하고 나도 만족하면 볼튼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미 서울측이 언론을 통해 "(이청용이) 무리한 해외 진출을 위해 헐값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기 때문에 볼튼행이 빠른 시일내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볼튼 외에도 맨체스터 시티와 웨스트햄 같은 유럽 몇몇 팀들이 이청용 영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서울측과 이청용이 머리를 맞대고 각각 합당한 수준의 이적료를 제시하는 팀 또는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최적의 팀을 원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청용의 볼튼 이적 여부는 국내 여론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합니다. 세계 최고의 리그로 꼽히는 프리미어리그 팀인 볼튼의 영입 공세를 받은 것은 훗날 잉글랜드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량과 잠재력을 인정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볼튼이 국내에 스카우터를 파견할 정도로 다른 팀들보다 적극적인 영입 구애를 펼치고 있다는 것도 국내 여론의 반응을 설레게 합니다. 숲이 아닌 나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 이청용의 볼튼 이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옷에 맞지 않는 리그 혹은 팀에서 뛰면 그에 따른 고생이 이만저만 클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유럽이라면 명성보다는 많은 경기에 뛸 수 있는 실리를 택해야 합니다. 또한 동양권 선수가 자국리그에서 곧바로 유럽 빅 리그로 이적하여 성공한 경우도 드뭅니다. 최근 10년 동안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공했거나 어느 정도의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는 나카타 히데토시(은퇴) 나카무라 슌스케(셀틱) 모리모토 다카유키(카타니아)에 불과합니다. 한국인 선수 중에서는 이러한 케이스를 통해 성공한 선수가 없었죠. 빅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도르트문트)는 네덜란드 무대에서 경쟁력을 쌓았기 때문에 잉글랜드 무대에서 꾸준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겁니다.

사실 이청용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는 역량이 '어느 정도는' 갖춰진 선수입니다. 빠른 순발력과 매직 드리블을 자랑하는 '한국판 호날두'로서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플레이에 능합니다. 특히 오른쪽 측면에서 상대팀 문전으로 찔러주는 패스는 국내에서 가장 정확하고 날카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쉴세없이 빠른 공수전환과 부지런한 움직임, 강력한 공격 임펙트를 요구하는 프리미어리그 스타일에 잘 맞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청용은 지난 2007년 6월 18일 스포츠 전문 잡지 <스포츠 2.0>을 통해 프리미어리그 진출에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유럽 진출의 꿈은 갖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면을 많이 보완해야 한다. 훗날 기회가 된다면 스페인쪽에서 뛰고 싶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내 스타일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고 싶다는 꿈을 꾼다"며 잉글랜드보다 스페인에서 뛰고 싶은 속내를 밝혔습니다. 자신의 장점이 잉글랜드 스타일과 잘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2년 전 인터뷰 내용이지만, 그가 지닌 장점은 프리미어리그보다 더 기술적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스포츠 2.0이 유료 잡지여서 그런지 몰라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축구팬들이 거의 없더군요.)

이청용의 프리미어리그 성공을 낙관할 수 없는 이유는 피지컬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프리미어리그는 테크니션들에게 위험부담이 따를 정도로 거친 수비가 많습니다. 특히 최근 프리미어리그는 상대팀 공격 옵션을 꽁꽁 묶거나 공격 길목을 차단하는 강력한 압박이 트렌드를 형성하면서 이전보다 수비가 강해졌습니다. 아넬카-호날두-호비뉴-자키 같은 2008/09시즌 득점 랭킹 상위권 선수들의 득점포가 들쑥날쑥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죠. 아직은 피지컬에 힘이 부족하고 경험이 덜 쌓인 이청용에게는 거칠기로 유명한 프리미어리그 무대가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청용은 타고난 체격 조건과 힘이 좋은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만큼, 바디 밸런스가 뛰어난 선수입니다. 워낙 자신있게 공격에 몰입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상대 압박을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국내 무대에서 아무리 밸런스가 뛰어나더라도 유럽 빅 리그에서 쉽게 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피지컬이 약한 이천수는 2003년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에 진출하기 전까지 꾸준한 웨이트 트레이닝과 반복적인 기본기 훈련으로 신체 밸런스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스페인 무대에서는 상대팀 선수와의 몸싸움 과정에서 밸런스에 약점을 드러내면서 자신의 출중한 공격력을 뽐내지 못한 끝에 결국 실패했습니다.

이청용이 빅 리그에서 박지성처럼 이름 떨치고 싶다면 유럽 팀의 명성 보다는 실리를 택해야 합니다.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네덜란드 무대에서 체격 좋은 거구들을 상대로 몸싸움을 많이 했기 때문에 밸런스와 몸싸움 기술이 늘었던 겁니다. 만약 J리그에서 곧바로 잉글랜드 무대로 진출했다면 PSV 에인트호벤 시절에 비해 현지 적응이 매우 힘들었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잉글랜드 무대와 네덜란드 무대의 레벨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청용은 빅 리그보다 네덜란드-프랑스-독일 같은 중상위권 리그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면서 자신의 부족한 피지컬 능력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길러야 합니다. 그런 과정을 밟지 않는다면 유럽에서 실패할 것 임이 분명합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청용 영입을 추진하는 볼튼이 피지컬을 앞세운 팀 컬러를 자랑하고 있다는 겁니다. 볼튼은 기술력보다는 선수 각자가 지닌 피지컬을 통해 거칠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입니다. 게다가 잉글랜드 축구의 스타일이 프리메라리가처럼 기술적인 요소보다는 투박함에서 강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이청용으로서는 피지컬 좋은 동료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거친 상대들과 마주쳐야 하기 때문에 볼튼에 순조롭게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볼튼은 타겟맨을 향해 띄워주는 롱패스를 통해 골을 노리는 팀입니다. 프리미어리그 20개 팀 중에서 가장 '뻥축구'를 즐기기로 악명 높을 만큼 공격력이 단조롭습니다. 빠르고 섬세한 기술을 자랑하는 미드필더가 전무하기 때문에 공격력이 떨어집니다. 어찌보면 이청용에게는 볼튼에서 성공할 수 있는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그 이전에 피지컬이 약한 한계를 이겨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하기 위한 경쟁력을 기르지 못한다면 이천수의 전례처럼 팀 공격에서 이렇다할 강점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이청용도 프리미어리그 볼튼 진출을 놓고 고민할 것입니다. 자신이 프리미어리그 스타일에 맞지 않는 선수라는 것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현명한 선택을 내릴 것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볼튼이라는 프리미어리그 팀의 명성에 기댄다면 그곳에서 실패 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실적인 선택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고려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