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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위기의 한국 축구 구원한 메시아



필자의 머릿속에 가끔씩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습니다. '박지성 없는 한국 축구는 과연 어땠을까?'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저뿐만이 아니라 축구팬, 혹은 축구에 조금 관심을 가지셨던 분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한국 축구는 지금까지 답답한 행보를 걸어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00년대 한국 축구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영광' 그리고 '위기' 였습니다. 영광은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의미하며 위기는 한일 월드컵 이후 힘겨운 모습을 보였던 행보를 말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위기입니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 4강이라는 현실에 안주하더니 어느새 베트남, 오만, 몰디브 같은 아시아 약체 팀들에게 쩔쩔메는 종이 호랑이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더니 2003년부터 4년 동안 쿠엘류-본프레레-아드보카트-베어벡으로 이어지는 잦은 대표팀 감독 교체로 조직력 약화를 비롯해서 세대교체의 타이밍을 놓치는 악순환에 빠졌습니다. 또한 황선홍-홍명보의 대를 이을 기대주들이 부상과 부진으로 고전했던 것도 아쉬움에 남았죠.

허정무호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지난해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전 3-1 승리 이전까지 연이은 졸전을 거듭하는 아쉬움을 남기며 '축구장에 물 채워라'라는 국민들의 비아냥을 받았기 때문이죠. 물론 지금은 세대교체 성공의 영향으로 전력이 안정되었지만 남아공 월드컵 본선 16강에 진출하기에는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여론의 주된 반응입니다.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하고도 쓴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한국 축구가 겪어왔던 위기와 후유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대표팀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절대적인 원동력은 다름 아닌 박지성이었습니다. 2004년 아시안컵부터 한국 공격의 에이스 노릇을 했던 것을 비롯 유럽 무대에서의 경험이 더해졌기 때문에 이번에도 박지성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죠. 하지만 허정무호에서는 그 이전과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해 10월 초 박지성을 대표팀 새 주장으로 발탁하면서 오랜 침체에 빠진 팀을 쇄신 시키기 위한 칼을 꺼냈습니다. 대표팀의 고공행진을 위해서는 혁신이 불가피했고, 팀을 새롭게 변화시키기 위해 '주장과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순둥이 박지성에게 왼쪽 팔에 노란색 완장을 채웠죠.

흔히 '캡틴 박'으로 일컫는 박지성의 주장 등극은 의미가 큽니다. 허정무 감독의 세대교체 의지에 부합할 수 있는 최적의 카드가 자신이었기 때문이죠. 앞으로 한국 축구의 밝은 미래를 이끌어갈 영건들에게 정신적인 버팀목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한국 최고의 선수이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축 선수로서 당대 최고의 실력을 자랑합니다. 세대교체의 주역인 영건들은 박지성과 함께 호흡하여 실전에서 기죽지 않고 당찬 축구 실력을 뽐내며 대표팀에 없어선 안될 활력소로 거듭났습니다. 그러더니 매 경기마다 적극적인 경기력을 발휘하면서 한국 축구의 위기를 잠재웠습니다. 그 중심엔 박지성이 있었죠.

특히 지난 10일 사우디 아라비아전은 '주장' 박지성의 클래스를 느낄 수 있었던 대표적인 경기였습니다. 박지성은 지난달 2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이후 잉글랜드 맨체스터로 돌아가 대표팀 차출 및 국내 휴식을 위해 짐을 정리한 뒤, UAE를 거쳐 한국에 왔습니다. 2주 동안 4개국을 돌아다니며 4경기를 치렀던 강행군 속에, 그것도 시차적응이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우디전에 풀타임 출전하여 후배 선수들을 다독였던 것입니다.

박지성은 이날 경기에서 왼쪽 윙어로 출전했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중앙, 오른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팀 공격의 활기를 쏟았습니다. 자신을 중심으로 거치는 공격 물줄기는 상대 선수들이 좀처럼 공략하기 힘들 정도로 위협적이었죠. 또한 미드필더 후방쪽으로 깊게 수비 가담하는 과정에서 사우디 오른쪽 공격을 여러차례 끊은 뒤 재빨리 공간을 향해 역습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맨유에서 '수비형 윙어'로 이름 떨치던 활약상을 허정무호에서 그대로 이어간 것입니다.

그보다 더 놀랐던 것은 경기 막판까지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던 겁니다. 최근 살인적인 강행군을 소화했기 때문에 체력 및 컨디션 저하로 막판에 고전할 것 같았지만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때까지 그라운드를 부지런히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태극전사들 중에서 가장 많이 뛰었으니 주장 이상의 몫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활약상은 그가 왜 실력으로 말하는 주장인지를 스스로 보여준 것이며, 더 나아가 동료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다른 누구보다 든든한 존재이기 때문에 위기에 빠졌던 한국 축구가 그를 기댄 것이었고 모두가 '한국 최고의 선수'라고 치켜 세웠던 것이죠.

박지성이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얻을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모든 경기 마다 성심 성의껏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부진한 경기에 손에 꼽을 만큼 드물 정도로 기복 없는 경기를 펼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꾸준함으로 단련되어 자신만의 클래스를 그라운드에서 내뿜었습니다. 이는 맨유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리 많은 골을 넣지 못하더라도 팀의 주전 선수로 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성실함을 인정 받았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베컴, 뤼트 판 니스텔로이, 그리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을 내쳤던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인정받은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겁니다.

잦은 감독 교체로 바람 잘 날이 없었던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동안 많은 스타들이 대표팀의 주력 선수로 뛰었고 감독 성향에 따라 다양한 전술들이 오갔던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박지성은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팀을 위해 열심히 뛰는 성실함을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대표팀 오랫동안 꿋꿋이 버텨낼 수 있었고 2004년부터 지금까지 대표팀의 에이스로 군림하며 자신의 명성을 떨쳤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존재 여부에 따라 대표팀 경기력이 큰 차이를 보일 정도로 엄청난 존재감을 쌓게 되었죠.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엔트리 23인 명단에 포함되었던 23세 이하의 선수는 박지성을 포함해서 7명 이었습니다. 이천수를 비롯해서 최태욱, 차두리, 송종국, 현영민, 설기현(실제 나이는 1세 더 많습니다.)이 있었죠. 그중에서 대표팀의 일원으로 뛰고 있는 선수는 박지성과 최태욱 뿐입니다. 이천수-차두리-송종국-설기현은 한일 월드컵 이후 온갖 시련에 시달린 끝에 태극마크 인연과 멀어졌고 현영민은 이영표의 레벨을 쫓아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최태욱은 최근 허정무호에 합류하기 전까지 오랜 방황에 시달린 끝에 3년 9개월만에 A매치에 모습을 드러냈던 선수입니다. 이들은 7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축구의 10년을 짊어질 기대주로 평가받았지만 정작 제대로 성장한 선수는 박지성 단 한명 뿐이었습니다.

박지성은 한일 월드컵 최종엔트리가 발표되기 전까지 언론으로부터 대표팀 탈락 1순위에 꼽힐 만큼 여론으로부터 저평가를 받던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위기에서 허우적거리던 한국 축구를 구원하리라 예상했던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던 선수가 지금은 한국 축구의 메시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캡틴 박'을 기점으로 한국 축구의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난 그의 이름에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