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그것도 '죽음의 조'로 손꼽히던 아시아지역 B조에서 1위(4승2무)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습니다. 남은 두 경기와 상관없이 조기에 월드컵 진출 했습니다.
우선,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은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에 이은 여섯번째 대기록입니다. 세계적인 축구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물론 각 대륙중에서 월드컵 성적이 취약했던 아시아 지역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통해 '아시아 축구 강호'라는 명분을 또 한 번 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본선 진출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한국 축구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8번의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토너먼트에 오른 경우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7번의 월드컵에서는 본선에서 고개를 떨구며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말았죠. 그중에는 세계 열강들에게 대량실점 패배를 당했던 경기가 여럿 있었습니다.
문제는 아시아 국가들이 월드컵 본선에서 체면을 구긴적이 비일비재했다는 점입니다. 그 여파는 2000년대 이후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독일에게 0-8 대패를 당했고 중국은 3전3패로 세계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아시아 국가중에서 16강 토너먼트에 오른 팀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호주가 16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오세아니아 대표 자격으로 오른 것 뿐이죠. 이대로의 추세라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아시아 국가들의 약세가 지속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은 본선 진출이라는 기쁨에 잔뜩 취해서는 안됩니다. 한국 축구가 세계의 변방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존재로 발돋움하려면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의 좋은 성적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아시아의 레벨을 넘어선 팀인지 아니면 전형적인 아시아의 꼬리표를 떼지 못했는지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가려질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16강 혹은 8강 진출을 위해 노력한다고 할지라도 뜻대로 되지 않는게 월드컵입니다. 본선에 진출한 32개 국가 모두 각자의 목표를 위해 월드컵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축구가 그동안 16강 진출을 위해 열심히 애를 써도 그 벽을 넘어선 것은 2002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불과했으니까요.
냉정히 말해, 월드컵 본선에서는 한국 보다 약한 국가와 상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운이 나쁘면 2개의 유럽팀과 상대 할 것이며, 유력한 우승 후보와 만날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복병과 외나무다리에서 격돌할 수도 있겠죠. 한국이 본선에서 어떤 결과를 거둘지 예측하는 것은 시기상조지만(조편성 하려면 몇 개월 더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월드컵 행보를 놓고 보면 16강 진출 턱걸이 단계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월드컵 실적이 대부분 안좋았다는 점에서 뜻대로 좋은 성과를 달성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임이 분명합니다.
그것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들의 자만입니다. 특히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의 스위스가 그랬습니다. 스위스가 1994년 미국 월드컵 이후 12년 동안 본선 무대에 진출하지 못한데다 걸출한 스타가 없기 때문에 한국이 더 우세할거라 예상한 이들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경기 내용과 결과 모두 참패를 면하지 못했습니다.(오프사이드 논란 내용은 논외) 우리 스스로 "이 정도의 조편성이면 월드컵 16강 진출은 떼 놓은 당상 아니냐"면서 스위스의 저력을 얕보고 말았습니다. 토고 같은 경우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지만 그런 팀과 다시 상대할 가능성은 그리 커보이지 않습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이 독일 월드컵 처럼 강자들만의 무대가 될지 아니면 한일 월드컵 처럼 세계 축구 평준화의 대표적 무대가 될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럴 때일수록 한국 축구는 더 강해지고 견고해져야 합니다. 세계 축구의 변화된 흐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뚜렷한 성과를 달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12개월 동안 착실히 준비하지 못한다면 예전처럼 16강 진출 문턱에서 울음을 터뜨릴지 모릅니다. 이제는 한국 축구의 새로운 희망을 위해 본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대한축구협회와 대표팀 코칭 스태프, 선수들, 그리고 국민 모두가 붉은 마음으로 서로 하나되어 합심해야 합니다.
문제는 허정무호가 최근 A매치 22경기 연속 아시아권 팀들과 상대했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2월 6일 투르크매니스탄전부터 7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까지 1년 5개월 동안 지겹도록 아시아 팀들과 싸웠죠. 월드컵 본선에서는 아시아 팀들과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비 아시아권 팀들과 많은 경기를 치르지 못한다면 본선 무대에서 고전할 것임이 분명합니다. 또한 강팀과의 경기를 통해 대표팀의 현재 위치를 파악하면서 앞으로 보완해야 할 것을 스스로 찾아가야 합니다.
그나마 이전 대회보다 여건이 나은 이유는 사령탑이 허정무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월드컵때는 잦은 감독 교체로 대표팀 전력이 오랫동안 흔들리더니 딕 아드보카트 감독 조차도 한국을 16강 고지에 올려놓지 못했습니다. 감독 교체가 빈번하지 않았다면 본선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지 모를 일이죠. 반면 허정무 감독은 1년 6개월 동안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습니다. 이미 경질 및 위기설에 대한 불안 요소를 넘은지 오래 되었으며 지금은 팀을 원만하게 이끌고 있습니다. 전술에 대해서 아쉬움이 있지만 국내 선수를 읽는 눈이 축구계에서 톱클래스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것이 본선 무대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됩니다.
어쨌든, 한국 축구는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통해 새롭게 정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이제 본선까지 12개월 남았는데 철저히 그리고 열심히 준비하고 단련해야 할 것입니다. 월드컵 본선 16강 진출을 목표로 하게 될 허정무호의 선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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