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도 없고, 안정환도 없고, 설기현도 없고, 이천수까지 빠졌는데 어떻게 잘할까?'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준우승을 달성했던 한국 야구만이 세대교체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야구와 더불어 스포츠 양대산맥을 형성하는 축구도 세대교체에 성공했습니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젊은 선수 위주로 세대교체를 단행한 끝에 결국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값진 수확물을 올렸습니다. 물론 이것은 1차적인 성공작이며 그 다음 성공작은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16강 진출, 3차 성공작은 허정무호 전력의 구성원들이 향후 오랫동안 한국 축구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흐름대로라면 2~3차 과정도 무난할 것임에 분명합니다. 그 원동력은 다름 아닌 허정무 감독 이었습니다.
허정무 감독, 한국 축구의 병폐 이겨냈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표팀이 선수의 이름값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남일, 안정환, 설기현, 이천수 같은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6년 독일 월드컵 멤버들은 허정무호 출범 초기 팀 전력의 핵심으로 뛰었거나(김남일, 안정환, 설기현) 가끔 얼굴을 내비치던(이천수) 인물들 이었습니다. 이름값으로 치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대표팀 주전으로 뛸 수도 있는 선수들입니다.
하지만 허정무 감독은 이들을 과감이 내쳤습니다. 자신의 전술에 맞지 않거나 소속팀에서의 부진이 그 이유였죠. 김남일은 그동안의 부상 여파로 활동폭과 체력, 기동력이 떨어지면서 4-4-2 전술에 맞지 않았고, 안정환은 주전으로 뛰기에는 젊은 선수들에게 힘에서 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설기현과 이천수는 소속팀에서의 부진 여파가 컸습니다. 이들의 빈 자리에는 젊고 싱싱한 자원들을 내세우며 대표팀의 세대교체를 주도했고 결과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름값보다 실력을 택한 허 감독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허정무 감독의 세대교체가 값진 이유는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병폐는 이름값에 의존하는 풍토죠. 선수 선발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모 감독이 자신과 출신 학교가 똑같다는 이유로 팀의 일원으로 뽑거나 혹은 라이벌 학교 팀 선수의 발탁을 꺼리는 '학연'이라는 한국 축구의 병폐가 나타났습니다.
특히 '산소탱크' 박지성은 학창시절 여러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고려대 진학을 목표로 했지만 학연이라는 암초에 부딪힌 끝에 결국 명지대에 겨우 입학 했던 사연이 있었습니다. 대학팀의 무명 선수로 뛰던 그를 대표팀에 불러들인 것은 다름 아닌 허정무 감독이었습니다. 허 감독은 다른 지도자와는 달리 이름값보다는 여러 선수들을 똑같은 잣대로 바라보며 선수 본인이 지닌 실력과 잠재력을 두루 살폈으며 지금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축구계에서 인정할 만큼 선수의 자질과 잠재력을 읽을 수 있는 '눈'이 뛰어난 한국 최고의 스카우트 입니다. 그동안 허 감독의 조련속에 많은 축구 스타들이 배출되었기 때문이죠. 시드니 올림픽 세대들을 시작으로 해서 지금까지 많은 인재들을 키웠습니다.
지금까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했던 6명중에서 김두현을 제외한 5명(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이동국, 조원희)은 허 감독에게 실력과 잠재력을 인정받아 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뛰었거나 혹은 그 자리를 빛내는 선수들입니다. 그 중 조원희는 지난해 대표팀 소집 과정을 통해 허 감독으로부터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능숙한 경기 운영을 키우며 업그레이드를 거듭했던 선수입니다. 김치우와 곽태휘도 과거 전남 이적을 통해 당시 사령탑이었던 허 감독의 지도 속에 그동안 못다했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김치우는 이영표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허정무호에 없어선 안될 슈퍼 멀티 플레이어로 거듭 났습니다.
이번 대표팀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허정무 감독은 그동안 세대교체를 강조하며 끊임없이 새 얼굴들을 발탁했습니다. 올림픽대표팀 출신의 선수들을 비롯해서 K리그에서 몸담는 많은 얼굴들이 대표팀에 모습을 내밀었죠. 그 결과 박주영과 이근호 같은 올림픽 대표팀 자원들이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배기종-김치우-조용형-오범석-이정수 같은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중견급 선수들이 이제는 팀 전력에 없어선 안될 선수로 거듭 났습니다. 비록 부상으로 이번 대표팀 명단에 제외되었지만 정성훈-김형범-강민수가 대표팀에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허정무 감독의 성과 였습니다.
허정무호 세대교체, '조합의 힘'
최근 몇년 간, 대표팀의 큰 걱정거리는 황선홍과 홍명보의 존재감을 잊게할 수 있는 선수가 배출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 선수 모두 아시아에서도 손꼽힐 만큼 걸출한 기량을 자랑하는 선수들이었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자원들이 쉽게 나오지 않았던 것이 한국 축구에 있어 그동안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표팀 감독 교체까지 잦았으니 세대교체 타이밍이 더디게 진행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대교체는 앞날의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었기 때문에 허정무 감독이 칼을 빼든 것이었습니다.
허정무 감독은 그동안 많은 선수들을 저울질한 끝에 지난해 10월부터 지금까지 4-4-2 포메이션 체제로 운영 했습니다. 4-4-2 전술을 선수들의 콤비네이션 활약을 최대화시킬 수 있는 전술인데 개인 역량보다는 조합의 역량이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4-4-2는 엄청난 활동량과 희생 정신을 요구하는 포메이션인데 감독 입장에서 전술 운용에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선수들이 커버해야 할 지역이 넓은 만큼, '조합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순발력-기동력-활동량-지구력이 뛰어난 젊은 선수들이 유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허 감독은 김남일과 이천수 같은 올드보이 보다는 영건들을 위주로 지금까지 선수 선발을 단행 했습니다. 얼마 전 대표팀 명단 발표 당시, 이동국과 최성국보다 유병수와 김근환 같은 젊은 자원들이 허 감독의 부름을 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죠.
여기서 키 포인트는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젊은 선수들과 중간급 선수들의 활약상입니다. 그 선두 주자인 '쌍용' 기성용-이청용 콤비는 대표팀 미드필더진의 활력소로 거듭났습니다. 기성용은 20세의 어린 나이답지 않게 중원에서 경기를 완만하게 조절하면서도 때로는 거침없는 문전 돌파로 상대 중앙 수비망을 한꺼풀씩 벗기는 경기력을 발휘했습니다. 이청용은 피로저하로 지난해보다 활약상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주전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은 허 감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호날두'로 불릴 만큼 빠르고 현란한 기교와 예리한 패싱력을 자랑하기 때문에 공격수의 조력자 노릇을 묵묵히 해내고 있습니다.
박주영-이근호 투톱도 마찬가지 입니다. 두 선수는 활동 공간이 겹치기 때문에 그동안 이렇다할 시너지효과를 내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두 선수는 허정무호 출범 이후 자신들의 몫을 충분히 해냈던 공격수들입니다. 박주영은 지난해 8월 AS 모나코 이적 이후 전반적인 기량이 업그레이드 되더니 7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한국의 7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습니다. 이근호는 지난해 10월과 11월 A매치 4경기에서 5골 넣으며 허정무호의 간판 공격수로 자리잡았죠. 지난 2월 이란전까지 이근호와 투톱 공격수로 활약했던 정성훈도 기존 대표팀 공격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공중볼 처리능력과 포스트 플레이, 문전에서의 궃은 역할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인상깊은 모습을 심어줬습니다.
대표팀 중앙 수비를 맡는 '조용형-강민수(이정수)' 조합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 선수는 허정무호 출범이후 대표팀에 꾸준히 승선했던 선수로서 국제 경기에서 상대 공격수를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정수와 강민수는 상대 공격수를 끈질기게 마크하는 대인마크와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집중력이 뛰어나며 조용형은 지능적인 공간 장악을 필요로 하는 커버 플레이와 전방으로 연결하는 패싱력이 정확한 선수입니다. 4백 센터백으로서의 역할이 나뉘어지면서 서로의 역량을 끌어 올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세 선수 모두 허정무호에서 대표팀 수비에 필요한 옵션으로 거듭났다는 점이죠. 허정무 감독의 세대교체에 의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허정무호는 월드컵 본선 진출을 통해 자신의 4-4-2 포메이션을 앞세워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단행 했습니다. 이제는 이름값이 뛰어난 선수를 그리워하지 않을 만큼, 허 감독에 의해 대표팀에 발탁된 영건들이나 중견급 선수들이 그 몫을 완전히 메웠습니다. 여기에 젊은 선수들의 패기가 계속 오름세에 접어든다면 내년 월드컵 본선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릴 것임이 분명합니다. 세대교체의 성공을 알린 허정무호가 이제는 완성을 향해 끝없이 질주할지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