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비기거나 패할 수도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적어도 후반 초반까지의 경기력만을 놓고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맨유는 프리미어리그의 최강자입니다. 그것도 세 시즌 동안 순위권 최정상에 있었기 때문에 그만한 자존심이 있었으며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한 선수들의 의지는 꾸준히 단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강팀이라는 존재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강팀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평소의 페이스를 그대로 유지하여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때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경기는 맨유가 왜 '잘되는 집안'인지를 알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맨유가 14일 오전4시(이하 한국시간) JJB 스타디움에서 열린 위건과의 프리미어리그 순연 경기에서 2-1 역전승을 거두었습니다. 전반 28분 우고 로다예가에게 선취골을 내줬지만 후반 16분 카를로스 테베즈가 동점골을 넣으며 스코어를 따라잡았고 승부의 고비처였던 후반 41분 마이클 캐릭이 역전골을 넣으며 값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승점 86점(27승5무4패)으로 2위 리버풀(80점, 23승11무2패)을 6점 차이로 제쳤으며 오는 16일 아스날전에서 최소 비길 경우 프리미어리그 3연패를 달성하게 됩니다. 위건전에서 승점 3점을 획득한 것은 우승 레이스에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위건에 고전하던 맨유, 어떻게 이겼는가?
맨유의 역전승은 그동안 꾸준히 단련되었던 선수들의 경험과 노련미, 그리고 승리욕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후반 초반까지의 흐름대로라면 위건에게 발목을 잡힐 것으로 보였지만 테베즈가 동점골을 넣으면서 경기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맨유의 우세로 이어졌고, 막판에는 위건 선수들의 체력과 활동량이 급격히 저하되면서 맨유가 승리를 굳혔습니다. 그동안 많은 경기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던 것이 위건전에서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사실 이번 경기는 맨유가 손쉽게 이길 것으로 보였습니다. 맨유는 위건전 이전까지 UEFA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해서 6연승을 달린 반면에 위건은 최근 리그 5경기에서 1무4패로 고전했기 때문이죠. 위건과의 역대 전적에서도 8승 무패의 압도적인 우세를 점했습니다. 또한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이 자신의 제자인 스티브 브루스 위건 감독과의 역대 전적에서도 10승2무로 앞서있죠.(브루스 감독의 버밍엄 시티 사령탑 시절 포함) 어찌보면 맨유의 승리는 당연할 것 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이번 경기에서도 맨유가 2-1로 이겼지만, 문제는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맨유는 전반 초반부터 중앙 수비가 흔들리는 문제점을 노출했습니다. 전반 1분 조니 에반스가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문전 기습 돌파를 놓치면서 1-1 슈팅을 허용하는 아찔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죠. 다행히 발렌시아의 슛이 골대 바깥으로 향하면서 위기를 넘겼지만 '에반스-비디치' 센터백 라인의 잔실수로 여러 차례 실점 위기 상황들이 벌어졌습니다. 에반스는 빠른 순발력을 앞세운 위건 공격 옵션들의 드리블 돌파에 속수무책이었고 네마냐 비디치는 로다예가와의 경합 과정에서 끌려다니는 문제점을 노출했죠. 그러더니 28분 로다예가와의 공중볼 경합 과정에서 상대의 마크를 놓치면서 실점을 헌납했습니다.
수비가 불안정하면 팀 밸런스가 무너지기 쉬운 것이 축구의 흐름입니다. '캐릭-스콜스'로 짜인 더블 볼란치는 에반스-비디치 조합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하자 수비 부담이 가중될 수 밖에 없었으며 공격에 이렇다할 무게감을 실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더니 공격형 미드필더 안데르손이 위건 미드필더진에 철저히 막혀 부진했고 '루니-베르바토프-호날두'로 짜인 3톱의 공격력 또한 평소와 같지 않았습니다. 맨유가 전반전 볼 점유율에서 위건에 67-33(%) 앞섰음에도 슈팅 숫자에서 7-8(유효 슈팅 0-3)로 뒤졌던 것은 상대에게 단단히 끌려다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던 퍼거슨 감독이 후반 12분 안데르손을 빼고 테베즈를 투입하는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4-3-3을 쓰던 맨유는 루니와 호날두를 좌우 윙어로 놓고 베르바토프-테베즈 투톱의 '판타스틱4' 체제를 가동하며 화력을 끌어올리는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테베즈는 문전에서의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맨유 공격에 힘을 실으며 위건 수비진을 농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후반 16분 캐릭의 대각선 패스를 받아 왼발 뒷꿈치로 골을 넣었습니다. 테베즈의 골에 힘을 얻은 맨유는 '스콜스-캐릭' 조합의 패스가 점차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판타스틱4의 콤비 플레이를 최대화 시키기 위한 부분 전술의 성공률을 높였습니다.
특히 스콜스-캐릭 조합의 패싱력은 맨유가 이길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존재 역할을 했습니다. 스콜스는 후반 29분 교체되기까지 63개의 패스 중에 단 4개의 미스만을 범했으며 캐릭은 56개의 패스 중에 3개만 미스하더니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맨유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공격형 미드필더 안데르손이 57분 동안 24개의 패스(4개 미스)를 시도했던 것과 비교하면, 스콜스-캐릭 조합이 테베즈의 골과 더불어 경기의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었던 결정적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동점골 상황에서 캐릭의 대각선 패스는 위건 선수들 어느 누구도 차단하지 못할 정도로 날카롭고 정교하게 향했을 정도였죠.
TV에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지만, 베르바토프의 패싱력도 단연 군계일학 이었습니다. 52개의 패스 중에 6개만 미스 했을 뿐이죠. 이날 경기에서는 최전방 공격수로 출전했음에도 슈팅을 날리지 않고 패스 플레이에 치중했습니다. 이는 자신보다 동료 선수들의 골을 돕기 위해 전방에서 골 기회를 적극적으로 열어줬던 것이죠. 팀을 위해 경기에 힘하는 베르바토프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맨유는 후반 중반들어 오름세 페이스를 좀처럼 얻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또한 베르바토프의 패스는 최전방 뿐만이 아니라 하프라인 부근에서도 정확도를 높인 것이어서 위건 미드필더들의 공격 의지를 떨어뜨리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맨유가 후반 41분 캐릭이 역전골을 넣을 수 있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 였습니다. 스콜스-캐릭-베르바토프의 섬세한 패싱력에 위건 수비수들과 미드필더진들이 이를 대처하지 못하면서 힘이 떨어졌고, 그 틈을 노린 맨유 선수들의 공격 의지와 승리욕이 빛을 발하면서 골을 넣었던 것이죠. 이날 경기에서 공격 가담을 자제했던 존 오셰이가 41분 상황에서 상대 문전까지 오버래핑을 시도하여 캐릭에게 골 기회를 열어줬던 것은, 맨유가 후반 막판에 이르러 경기를 완전히 뒤집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맨유의 위건전 승리가 더욱 값진 이유는 루니-호날두의 부진 속에서도 이겼기 때문입니다. 루니는 47개의 패스 중에 13개씩이나 미스를 범할 만큼 기복있는 경기력을 일관했고 호날두는 결정적인 공격 상황에서 여러차례 실수를 범하는 문제점을 노출했습니다. 그럼에도 역전승을 거두었던 것은 스콜스-캐릭-테베즈-베르바토프 같은 다른 선수들의 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죠. 웬만한 팀이라면 에이스의 공격력에 의존할지 모르지만, 맨유는 경기 상황마다 에이스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맨유가 '잘되는 집안'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이로써 맨유는 위건전 승리로 16일 라이벌 아스날전에 대한 밝은 여운을 내비쳤습니다. 이날 경기에서는 박지성이 후반 43분에 교체 투입 되어 경기 감각을 유지했는데 이는 아스날전에 선발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위건 원정에서 역전승을 거둔 맨유가 아스날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지, 그리고 박지성이 아스날전에서 '강팀 킬러'의 진면목을 발휘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