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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맨유 박지성 영입, '최고의 영입'인 이유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최근 2경기 연속골을 비롯 평소의 경기력을 완전히 되찾으면서 잉글랜드 언론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칭찬이야 박지성의 데뷔 시즌인 2005/06시즌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지만, 그 이전에는 박지성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들이 주류였습니다. '마케팅용 선수', '유니폼 선수'라는 비아냥이 그것이죠.

맨유 현지팬인 마크 프로겟은 12일(이하 현지시간) 맨유 공식 홈페이지 메인에 뜬 'FAN BLOGS'에 'How Park proved me wrong(어떻게 박지성이 내가 틀린것을 증명했나)'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며 박지성을 마케팅용 선수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프로겟은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영입한다고 했을때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박지성의 영입이 한국 선수를 이용해서 아시아에서 셔츠(유니폼) 판매를 노린것으로 봤다. 그래서 맨유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프로겟은 "박지성 이적에 대한 불안감은 아시아 축구에 대한 물정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지성은 최근 미들즈브러전과 아스날전에서 골을 넣으면서 맨유라는 기계에 없어선 안될 소중한 부품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다른 누구보다 많이 뛰는(루니, 테베즈 제외) 박지성의 경기력은 팬들의 기쁨이 되기에 충분하다. 요즘과 같이 부풀려진 이적시장에서 400만 파운드의 이적료(박지성이 맨유 입성 당시에 기록했던 이적료)는 정말 저렴한 것이다"며 박지성의 진가를 인정 했습니다.

이러한 프로겟의 글은 박지성을 향한 잉글랜드 여론의 반응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입니다. 박지성은 맨유 이적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현지 여론으로부터 '유니폼을 팔기 위해 맨유에 온 선수'라는 비아냥을 받았습니다.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서의 맹활약을 통해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했지만 잉글랜드 현지에서는 낯선 선수였던 것이 사실이죠. 그들에게는 동양권 선수가 '돈'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으며 유니폼, 마케팅 선수라는 비아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한국과 중국, 일본의 자본이 그들에게는 자금 마련을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여러명의 동양인 선수들이 마케팅을 위한 수단으로 잉글랜드 무대를 밟았습니다.

그 흐름은 이랬습니다. 지난 2001년 일본인 이나모토 준이치(현 프랑크푸르트)가 아스날에 입단했지만 마케팅을 위한 목적으로 영입된 선수였기 때문에 현지 팬들로부터 비웃음을 샀습니다. 이듬해에는 중국인 선수들인 리 티에(현 청두 블라더스) 리 웨이펑(현 수원 블루윙즈)이 에버튼에 입단했지만 두 선수 역시 적응에 실패했죠. 2004년에는 덩팡저우(현 다롄 스더)가 맨유에 입단했지만, 맨유가 마케팅 차원에서 중국 진출을 노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냐는 여론의 반응이 대세였습니다. 물론 맨유 마케팅 담당자는 지난해 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를 부정했지만, 덩팡저우 영입으로 중국 내에서 맨유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여파가 박지성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심지어 2006년에는 한때 스코틀랜드 셀틱에 몸담았던(한 경기만에 방출로 유명한 인물) 중국인 선수인 두웨이(현 상하이 선화)가 박지성-이영표를 '마케팅용 선수'라고 비난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4월에는 잉글랜드 대중지 가디언이 박지성을 패러디하는 10개의 이미지를 올렸는데 그 중에 2개가 박지성이 유니폼을 팔고 있는 모습과 합성된 것이었습니다. 박지성은 엄연히 맨유의 전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입 되었지만 현지 여론에서는 '박지성=마케팅용 선수'라는 이미지가 확고했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그것을 실력으로 이겨냈습니다. 특유의 부지런한 움직임과 공수 양면에 걸친 고른 활약을 앞세워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전술 운용 폭을 넓게 했던 것이죠. 불과 2008년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철저한 스쿼드 플레이어에 머물면서 '약팀 전용-긱스 백업' 이라는 존재감을 강하게 부추겼지만 지난해 4월 AS로마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맹활약이 터닝 포인트가 되어 '강팀용 선수'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다졌습니다. 그러더니 올 시즌에는 맨유의 베스트11에 포함되어 자신의 위상을 굳건히 다지고 있습니다. '박지성<나니', '벤치성'이라는 키워드도 어느 정도는 자취를 감추었지요. 나날이 성장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에 잉글랜드 현지 여론의 호평을 얻어냈던 겁니다.

잉글랜드 일간지 <데일리 메일>도 박지성을 칭찬했습니다. 12일(이하 현지시간) 맨유를 비롯한 EPL 빅4의 2005년 이후 선수 영입 리스트 및 이적료를 올렸습니다. 특히 네 팀의 선수 중에서 니클라스 벤트너(아스날) 안드리 셉첸코(전 첼시, 현 AC밀란) 알베르토 리에라(리버풀) 그리고 박지성의 사진이 한마디의 코멘트와 덧붙여 실렸습니다.

지난 2005년 여름 17세의 나이에 아스날에 입단했던 벤트너에 대해서는 'Young and cheap(나이 어리고 몸값이 싸다)'고 표기했습니다. 이듬해 여름 당시 프리미어리그 최고 이적료인 3000만 파운드를 기록했던 셉첸코는 'expensive flop(값비싼 실패)'라고 지칭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안필드의 일원이 되어 리버풀의 고질적인 왼쪽 측면의 약점을 덜었던 리에라에 대해서는 'Rafa's red(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의 일원, red는 리버풀을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박지성에 대해서는 'Good korea move(한국인의 움직임이 좋다)'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박지성의 실력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이 리스트를 보면, 박지성의 이적료가 얼마만큼 값이 저렴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2005년 여름 맨유와 400만 파운드의 계약을 맺었는데 2년 뒤 맨유에 입단했던 루이스 나니의 1425만 파운드와 비교하면, 맨유의 박지성 영입은 그야말로 '저비용 고효율'이었다는 것입니다. 한때 박지성 안티팬들 사이에서는 박지성이 나니보다 이적료가 무려 1025만 파운드가 더 부족하다며 박지성을 깎아내리기에 주력했지만, 이제는 퍼거슨 감독이 인정할 정도로 '박지성>나니'의 흐름이 되었습니다. 반면 나니는 자신의 높은 이적료 값을 다하지 못하면서 방출설에 오르내리고 있지요. 또한 맨유 리저브팀 선수로 뛰고 있는 조란 토시치는 올해 1월 '박지성보다 2배 많은' 80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했습니다.

공교롭게도 EPL 빅4 팀들은 2005년 여름에 윙어들을 한 명씩 보강했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맨유는 박지성을 400만 파운드에 영입했는데 아스날은 알렉산더 흘렙(현 FC 바르셀로나) 영입을 위해 112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지출했습니다. 첼시는 션 라이트-필립스(현 맨체스터 시티) 영입에 무려 2100만 파운드를 투자했고 리버풀은 부데베인 젠덴(현 마르세유)을 자유 계약 형태로 데려왔습니다. 자유계약인 젠덴을 제외하면, 흘렙과 라이트-필립스는 박지성보다 훨씬 많은 이적료를 기록한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흘렙과 라이트-필립스, 박지성 모두 1981년생 동갑내기라는 점이죠.

하지만 흘렙과 라이트-필립스, 젠덴은 현재 다른 팀에서 뛰고 있습니다. 흘렙은 아스날에서 어느 정도 두각을 나타내면서 지난해 여름 바르셀로나에 이적했지만, 라이트-필립스와 젠덴은 첼시와 리버풀에서 기대 이하의 활약을 펼치고 팀을 떠났습니다. 그런 점에서 맨유가 박지성을 400만 파운드에 영입한 것은 결코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앞서 맨유팬인 프로겟이 "요즘과 같이 부풀려진 이적시장에서 400만 파운드의 이적료는 정말 저렴한 것이다"고 했던 것 처럼, 맨유의 박지성의 영입은 그야말로 '최고의 영입'이자 성공작이었다는 평가입니다. 구단으로서도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과 관련된 칭찬을 할때마다 "박지성은 늘 과소평가를 받는 선수"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는 박지성의 실력을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박지성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을 나타냈던 여론의 반응을 뒤집기 위한 의도였죠. 아무리 박지성이 '마케팅용 선수', '저렴한 선수'라고 할지라도 팀내에서의 위상은 맨유의 주전 선수입니다. 역시 축구선수는 실력으로 말한다는 것을, 박지성이 '축구의 종주국'인 잉글랜드 땅에서 그대로 보여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