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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첼시가 바르셀로나보다 더 강한 이유

 

경기 결과는 0-0 무승부로 끝났지만 실질적으로는 첼시의 승리나 다름 없었던 경기 였습니다. 챔피언스리그 4강 토너먼트는 1~2차전 합계 스코어로 결승 진출팀을 가리게 됩니다. 1차전이 전반전이고 2차전이 후반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2차전을 홈에서 치를 첼시가 얼마만큼 유리한 고지에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차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FC 바르셀로나가 첼시를 꺾고 결승에 진출할 것이다"는 여론의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가 올 시즌 유럽 클럽 중에서 가장 뛰어난 화력을 자랑하며 경이적인 행보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죠. 프리메라리가에서 오랫동안 독주행진을 거듭한데다 코파 델 레이 결승에 오르면서 최소한 '더블'을 노리고 있으니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은 '떼 놓은 당상'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제법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물론 바르셀로나의 우세를 선택한 팬들의 주장은 맞는 말입니다.

물론 챔피언스리그가 정규리그처럼 풀리그 방식이었다면 바르셀로나가 첼시를 이겼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단기적인 토너먼트 특성을 잘 이용하는 팀은 '승리하는 과정보다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토너먼트의 중요성과 축구의 지론을 명확히 꿰뚫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첼시가 바로 그런 팀이었습니다.

첼시는 바르셀로나와의 1차전 데이터에서 많은 열세를 드러냈습니다. 슈팅 횟수 3-20(유효 슈팅 1-6), 볼 점유율 34-66(%), 패스 시도 340-668(회), 패스 정확도 59-82(%)로 밀렸습니다. 데이터만 놓고 본다면 첼시가 바르셀로나에게 명백히 밀렸지만, 결과는 0-0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바르셀로나로서는 많은 슈팅과 패스를 시도하고 경기 주도권에서 우위를 점했음에도 모든것이 '헛수고'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는 첼시가 90분 동안 방패를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바르셀로나의 창을 부러뜨리기 일보직전까지 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토너먼트에서는 수비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첼시와 바르셀로나의 희비가 엇갈렸던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공격을 잘하는 팀은 승리한다. 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한다"는 말이 있듯, 첼시는 1차전 원정 경기에서 수비 위주의 작전을 구사하며 바르셀로나의 공격력을 무력화 시켰습니다. 원톱 디디에 드록바를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 전원이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고 미드필더진과 수비라인의 간격을 좁히면서, '앙리-에토-메시' 3톱을 견제하기 위해 후방에서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발휘했습니다.

특기할만한 것은 앙리-에토-메시의 평균 패스 시도가 38회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미드필더 3인방(사비-투레-이니에스타)의 평균 패스 시도가 83.3회였다는 것과 대조적이죠. 물론 이들은 공격수이기 때문에 미드필더들보다 많은 패스를 시도하기가 어려운 특징도 있지만, 패스 시도가 2배 이상이나 낮았다는 것은 세 명의 공격수 사이에서 연결되는 패스가 활발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세 명 모두 많은 골과 더불어 도우미 역할을 충실히 하는 선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는 첼시의 압박 수비가 얼마만큼 견고하고 섬세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첼시 미드필더들 중에서 몇몇 선수들의 패스 정확도는 평소보다 많이 떨어졌습니다. 마이클 에시엔(14/29, 48%) 프랭크 램퍼드(16/29, 55%) 존 오비 미켈(23/34, 68%) 플로랑 말루다(19/31, 61%)가 그런 케이스죠. 이는 첼시 미드필더들이 패스에 의한 경기보다는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철저히 견제하기 위해 수비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첼시 미드필더 중에서 가장 높은 패스 정확도를 기록한 미하엘 발라크(17/24, 71%)는 패스 시도가 미드필더들 중에서 가장 낮았습니다. 발라크도 사비 에르난데스를 견제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았죠.

첼시의 미드필더들이 효율적인 수비 위주의 경기력을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리뉴 체제 시절부터 탄탄한 허리라인을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말루다를 제외한 4명의 선수들이 무리뉴 체제에서 많은 우승을 이끌었기 때문에(그때는 발라크의 부진이 흠이었지만) 탄탄한 조직력을 뽐낼 수 있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첼시 감독 부임 이후 12승4무1패의 놀라운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기초적인 원동력도 스콜라리 체제에서 와해되었던 미드필더들을 아주 유기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조련했기 때문입니다. 첼시의 중원은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한 팀들 중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튼튼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의 파상적인 공격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날 경기의 최대 승부처는 '초메시인' 리오넬 메시를 첼시가 어떻게 봉쇄하느냐 였습니다. 바르셀로나 공격의 무게감에 있어 메시의 비중이 실로 엄청났던 요인도 있지만, 첼시의 왼쪽 풀백 애슐리 콜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했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의 전술 운용이 어려워질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이러한 위기를 차분이 대처했습니다. 순발력과 기교, 수비 집중력이 뛰어난 조세 보싱와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포진시키는 변칙 작전을 구사했습니다. 보싱와는 경기 내내 메시를 꽁꽁 마크했고 플로랑 말루다까지 자신을 도와줬는데, 결과는 메시의 부진으로 끝났습니다.

반면 바르셀로나는 '38세' 과르디올라 감독의 지도력 경험 부족이 아쉬웠습니다. 노련한 감독이었다면 상대의 밀집 수비를 뚫기 위해 즉시 작전을 수정하여 새로운 전략을 짜냈을지 모르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에게는 이 같은 지도력이 없었습니다.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끼리의 간격을 좁히면서 빠른 원터치 패스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다면 첼시의 두꺼운 수비벽이 뚫리는 장면이 많이 속출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후반 36분과 41분에 '에토-앙리'를 빼고 '보얀-흘렙' 을 투입한 교체 작전은 좀 더 과감하고 빨리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이것이 히딩크 감독과 과르디올라 감독의 차이점 입니다.

2차전에서 첼시가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르셀로나 수비에 먹구름이 잔뜩 끼었기 때문입니다. 센터백 라파엘 마르케스가 1차전에서 부상으로 교체되었고 또 다른 센터백인 카를레스 푸욜은 경고 누적으로 2차전에 결장합니다. 왼쪽 풀백 에릭 아비달은 부상에서 회복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다음달 2일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전에 이어 7일 첼시전을 치러야 하는 체력적인 부담이 있으며, 센터백 자원인 헤르라도 피케는 발이 느린 선수인데다 다른 수비 자원처럼 노련하지 않은 것이 흠입니다. 사실 바르셀로나는 지난 시즌에도 그랬던 것 처럼, 수비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막강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냈기 때문이죠.

첼시로서는 드록바의 강력한 포스트 플레이를 이용하여 말루다와 칼루의 빠른 기동력, '램퍼드-에시엔-발라크'의 정확한 볼 배급을 통해 공격 위주의 작전으로 골을 노릴 공산이 큽니다. 2차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1차전에서 나타난 전력을 놓고보면 첼시의 우세가 예상됩니다. 첼시가 2차전 경기 장소인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웬만하면 지지않는 경기를 펼친데다 바르셀로나가 잉글랜드 원정에서 취약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히딩크 감독의 '4강 징크스'가 잘하면 이번에 깨질수도 있겠습니다.

첼시가 1차전에서 보여준 수비 위주의 경기력은 토너먼트의 특성을 얼마만큼 효율적으로 이용했는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적어도 토너먼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첼시는 바르셀로나보다 더 강했습니다. 물론 양팀 선수들의 전력은 서로 엇비슷할지 모를 일이지만, 두 팀의 희비를 엇갈리게 한 것은 히딩크 감독의 여우같은 작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