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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히딩크의 0-0 무승부 선택, 성공한 이유

 

축구에는 이러한 격언이 있습니다. "공격을 잘하는 팀은 승리한다. 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한다"라고 말입니다. 특히 토너먼트 경기에서는 공격 위주의 경기를 펼치는 팀들 보다는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는 팀들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는 수비가 토너먼트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게 합니다.

지구촌에서 가장 잘나가는 팀들끼리의 진검승부였던 첼시와 FC 바르셀로나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도 그랬습니다. 첼시는 원톱 디디에 드록바를 뺀 모든 선수가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고 바르셀로나는 평소처럼 공격적인 경기에 임했습니다. 전형적인 창과 방패의 대결이었지만 '실질적인 결과'는 방패를 든 첼시의 승리나 다름 없었습니다. 물론 1차전 스코어는 0-0 무승부였지만 2차전이 첼시의 홈인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다는 점을 상기하면 첼시의 0-0 무승부 작전이 성공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바르셀로나는 이번 경기에서 잃은 것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홈에서 열린 1차전에서 슈팅 20개를 퍼부었음에도 단 1골도 들어가지 못했으며 라파엘 마르케스는 후반 6분 부상으로 교체 되었습니다. 카를레스 푸욜은 경고 누적으로 2차전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으니 2차전 수비 운영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더욱이 '초메시인' 리오넬 메시까지 상대의 그물 압박에 막혀 이렇다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으니,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의 마음이 매우 답답했을 것입니다.

이는 '압박축구의 대명사' 거스 히딩크 감독의 0-0 무승부 작전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물론 축구는 상대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야 이기는 스포츠지만, 챔피언스리그는 1~2차전 합계 스코어로 다음 라운드 진출팀을 가리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이 2차전을 노렸던 것입니다. 1차전이 열린 누 캄프는 홈팀 바르셀로나가 우세한 경기를 펼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수비 위주의 작전을 구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특히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4강 1차전 바르셀로나 원정 경기에서 0-0 무승부 작전을 선택했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이 이를 참고했을 것입니다.

더욱이 바르셀로나는 잉글랜드 원정 경기에 약합니다. 역대 UEFA 클럽 대항전(CL+UEFA컵) 4강에서 잉글랜드 클럽과 10번 맞붙었으나 1승4무5패의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그중 원정 경기는 2무3패를 기록했죠. 최근 챔피언스리그 두 시즌 동안에는 리버풀과 맨유에게 발목 잡히고 다음 라운드 진출에 실패했으니, 2차전에서 첼시에게 무너진다면 '잉글랜드 저주'에 걸리게 됩니다. 이는 1차전 원정에서 0-0으로 비긴 첼시 그리고 히딩크 감독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첼시는 이번 경기에서 4-2-3-1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보싱와-알렉스-테리-이바노비치'를 4백으로 놓고 '발라크-미켈'을 더블 볼란치, '말루다-램퍼드-에시엔'을 공격형 미드필더, 드록바를 원톱으로 포진 시켰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포메이션에서의 선수 배치였을 뿐, 실제로는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의 구분이 거의 없을 정도로 마치 9백과 10백을 번갈아가는 듯한 극단적인 수비 작전을 구사했습니다. 상대 공격수가 자기 진영에서 공을 잡으면 최소 3명의 선수가 애워쌓을 정도로 단단한 수비벽을 구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주목되는 것은 조세 보싱와와 마이클 에시엔의 포지션이 변경되었다는 점인데 이것 또한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오른쪽 풀백이었던 보싱와는 경고누적으로 결장한 애슐리 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왼쪽을 맡았는데 상대팀 에이스인 메시를 집중 견제하는데 주력했습니다. 스피드와 대인마크가 뛰어난 선수라는 것을 히딩크 감독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메시의 매치업 상대로 놓았던 것이죠. 히딩크 감독은 원래 마이클 멘시엔을 메시의 매치업 상대로 염두했지만 경험에서 보싱와가 더 앞섰기 때문에 그를 믿고 기용했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에시엔의 오른쪽 포진은 이니에스타, 티에리 앙리의 왼쪽 공격을 봉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니에스타에서 앙리쪽으로 찔러주는 패스를 차단하기 위함인데, 이 작전 또한 일품 이었습니다. 에시엔은 두 선수 중에 한 선수가 공을 잡을때마다 족쇄처럼 쫓아다니는 수비를 펼쳤습니다. 이니에스타-앙리 사이의 간격이 좁았기 때문에 두 선수의 공간 사이를 오가며 철저히 압박했던 것이죠. 그 결과 이니에스타는 바르셀로나 미드필더들 중에서 패스 시도(73회 시도 56회 성공)와 패스 정확도(77%)가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앙리는 후반 중반들어 기동력과 체력 저하에 시달리면서 41분에 교체 되었습니다.

이날 경기 데이터를 보면, 첼시의 수비 작전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첼시는 슈팅 숫자에서 바르셀로나에 3-20, 볼 점유율에서 34-66(%)로 밀렸습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유효슛이 6개에 불과하고 골 포스트를 벗어난 슈팅이 12개라는 점은, 골을 넣을 수 있는 적절한 위치를 찾지 못해 골 결정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첼시의 수비 작전에 완전히 밀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패스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첼시와 바르셀로나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두 팀 모두 6명)들은 각각 179회, 364회 패스를 시도했는데 1사람 당 평균 29.8회, 60.6회의 패스를 시도했습니다. 특히 바르셀로나 미드필더들인 사비 에르난데스(88/99, 89%) 이니에스타(56/73, 77%) 아야 투레(69/78, 82%)는 이날 경기에서 다른 누구보다 많은 패스를 시도하며 팀의 공격축구를 이끌었습니다. 바르셀로나가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는 것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지만, 이를 역으로 바라보면 첼시의 0-0 무승부 작전이 얼마만큼 빛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첼시의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들이 패스보다 수비에 집중하면서 상대의 공격을 꽁꽁 차단했던것이 소기의 성과를 올렸던 것이죠.

히딩크 감독의 선수 교체 작전 또한 절묘했습니다. 후반 25분에 프랭크 램퍼드를 벤치로 불러들이고 오른쪽 풀백인 줄리아노 벨레티를 투입시켰는데 이는 수비에 완전히 올인하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벨레티는 남은 시간 동안 오른쪽 윙어로 뛰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브리티슬라브 이바노비치와의 간격을 좁히면서 수비에 치중했습니다. 이는 바르셀로나의 공격 템포가 점점 느려지면서 후반 막판들어 공격진과 미드필더들의 간격이 벌어지거나 기동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경기 종료 직전에는 미하엘 발라크를 빼고 니콜라스 아넬카를 투입하여 시간을 끌었으니, 역시 히딩크 감독은 노련한 지도자입니다.

물론 바르셀로나에게도 아쉬운 장면이 있었습니다. 후반 23분 사뮈엘 에토가 문전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가는 상황에서 첼시의 수비벽이 뚫렸지만 체흐의 선방에 막혀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45분에는 보얀 크로키치가 문전 정면에서 다니엘 알베스의 칼날같은 크로스를 받아 헤딩슛을 날렸지만 공은 골대 바깥으로 향했습니다. 헤딩 타점이 조금이라도 빗맞지 않았다면 골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보얀의 노골로 아쉬움을 집어삼킨 과르디올라 감독의 괴로운 표정은 히딩크 감독의 지략에 완전히 밀렸다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로써 첼시는 다음달 7일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릴 2차전에서 '골 넣는 축구'로 바르셀로나를 격침하여 결승 진출을 노릴 예정입니다. 1차전 0-0 무승부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히딩크 감독의 또 다른 지략이 주목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8일 뒤에 열릴 격전은 히딩크 감독의 마법을 기대해도 좋을 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