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로서 많은 경기에 나서고 싶은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스케줄이 있다. 또 모든 경기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나가는 경기에서 잘 해야 겠다는 마음이다"
'산소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은 FC포르투전을 앞두고 가진 맨유 공식 홈페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올 시즌 유럽 빅 클럽 중에서 가장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맨유의 모든 경기를 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박지성과 더불어 윙어로 활약중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거의 매 경기에 선발 출전하고 있지만, 정작 그는 국내에서 호노예라는 별명까지 붙여질 정도로 '혹사'에 시달리는 상황입니다.
박지성의 경기 전 인터뷰를 보면, 포르투전 결장이 예견되었던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물론 포르투 원정에 참가했지만 하파엘 다 실바 같은 부상자 명단에 있던 선수도 합류했기 때문에, 컨디션 점검 차원에서 원정 명단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국내 팬들에게 아쉬운 것은 경기 당일 18인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한 것입니다. 포르투전은 맨유의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및 퀸투플(5관왕) 달성의 최대 고비였던 중요한 경기였기 때문에, 그동안 '강팀용 선수'로 이미지를 확고하게 심었던 박지성의 결장이 아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맨유는 두꺼운 선수층을 최대한 활용하는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쓰는 팀입니다. 비록 최근에는 경기력 저하로 고전하고 있지만, 지난달 초까지 매 경기마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며 클럽 월드컵-칼링컵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로테이션 덕분이었습니다. 특히 칼링컵 결승전에서는 주전급 선수들이 아닌 그동안 칼링컵 공헌도가 뛰어났던 백업 및 영건 선수들을 주축으로 출전했던 대회여서 박지성의 입지를 놓고 칼링컵 결승전을 논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포르투전 이후에도 1주일에 두 번 경기 치르는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만큼, 지난해 5월 첼시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18인 엔트리 제외와는 차원이 다르죠.
이제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현재 박지성의 경기력과 컨디션, 체력은 평소보다 많이 떨어진 상황입니다. A매치 차출 및 한국에서 잉글랜드 맨체스터로 돌아오는 10시간의 비행거리와 8시간의 시차에 대한 피로를 극복하는 것이 정말 어려울 수 밖에 없죠. 지난달 1일 칼링컵 결승전 결장 이후 5경기를 소화하면서 피로가 쌓였던 것이 어느 정도 누적된 것도 있습니다. 이라크전, 북한전 컨디션이 그리 최상이 아니었거든요.
문제는 박지성이 지난 6일 아스톤 빌라전 결장으로 휴식을 취하고도 8일 포르투전과 11일 선더랜드전에서 부진했다는 점입니다. 포르투전에서는 후반 13분 교체되기까지 패스 성공률 56%(41개 시도 23개 성공)에 그치는 저조한 활약상을 일관했고 선더랜드전에서는 후반 23분 교체되기까지 17개의 패스를 시도했는데(13개 성공) 평소에 비해 볼 터치와 움직임, 활동량이 떨어졌던 것이 포르투전보다 많은 패스를 연결하고 받을 수 없었던 이유가 됐습니다.
그런 점에서 포르투전 18인 엔트리 제외는 경기력 저하로 고전하던 본인에게 자극제이자 약이 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앞으로 맨유에서 최상의 활약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동안의 바쁜 일정 문제 때문에 컨디션 저하로 고전을 면치 못하면 장기간 슬럼프에 빠질수도 있기 때문에 감독 입장에서는 무언가의 결단이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선수가 평상시의 경기력과 컨디션을 빠르게 되찾기 위해서는, 좋은 경기를 펼치겠다는 '자신의 의지' 없이는 절때로 불가능합니다.
분명한 것은 박지성 뿐만 아니라 맨유의 주축 선수 선수들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 리오 퍼디난드 같은 선수들은 자신의 부상을 회복시킬 시간적인 여유도 없이 포르투전에 선발 출전했습니다. 특히 퍼디난드는 이날 네마냐 비디치와 함께 빼어난 수비능력을 과시하며 포르투전 이전까지 최근 5경기에서 12골을 허용했던 맨유의 무실점 승리(1-0 승)를 이끌었습니다. 결국 박지성이 컨디션 저하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휴식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경기력 개선에 대한 의지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포르투전 18인 엔트리 제외를 계기로 더욱 분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퍼거슨 감독도 흡족할 것입니다.
그리고 맨유가 포르투와의 2차전에서 4-3-3을 썼다는 것은,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활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밀접합니다. 단지 컨디션 때문에 18인 엔트리에 제외시켰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지난 1차전에서 드러난 것 처럼, 박지성은 3톱의 윙 포워드에 어울리는 선수가 아닙니다. 물론 한국 대표팀과 교토 퍼플상가, PSV 에인트호벤에서 윙 포워드로 맹활약을 펼쳤지만 세 팀의 전력이 맨유의 클래스와 다르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3톱에서 윙 포워드로 뛰는 선수는 선수 개인이 지닌 공격력이 뛰어나야 하는데, 박지성이 지니고 있는 개인 공격력은 루니-호날두-나니-테베즈-긱스 같은 다른 공격 옵션에 비해 부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날 퍼거슨 감독이 루니와 호날두를 윙 포워드로 놓고 베르바토프를 최전방 공격수로 세운 것은, '골'을 넣기 위한 의지입니다. 맨유가 지난 1차전 홈에서 2-2로 비겼던 터라 2차전에서는 골을 넣으면서 상대에게 실점을 헌납하지 않는 축구를 해야햐기 때문에, '루니-베르바토프-호날두'로 짜인 스리톱이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워낙 골이 절실히 필요했던 경기여서 그동안 골 결정력에 문제점을 드러냈던 박지성의 존재감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지난 1차전에서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했던 루니를 오른쪽 윙 포워드로 세운 것은, 베르바토프의 공격력을 살리기 위한 의도도 있었지만 윙 포워드의 개인 공격력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최적의 활약을 펼칠 수 있는 포지션은 4-4-2의 좌우 미드필더 공간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축구는 1명이 아닌 11명이 하는 팀 스포츠이지 박지성을 위한 개인 종목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호날두가 골을 넣으려면 10명의 선수들이 필요한 것이고 그 도우미 중에 한 명이 박지성입니다. 퍼디난드 같은 경우에도 비디치 같은 존재가 있었기에 막강한 수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고요. 진정한 축구의 매력은 단 한명의 활약이 아닌 팀의 경기를 즐겨보는 것입니다. 엄연히 팀이 존재하기 때문에 선수의 활약이 빛나는 것이죠. 포르투전 18인 엔트리 제외를 놓고 박지성 입지를 흔드는 일부 팬들이 있을것임엔 분명하지만, 맨유에서 네 시즌 동안 자신의 기량을 인정받으며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겁니다.
비록 포르투전에서는 결장했지만, 이번일을 계기삼아 시즌 종료까지 좋은 경기력을 펼쳤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무리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소 1~2개라도 팀의 경기력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강한 임펙트를 발휘할 수 있다면 자신의 존재감을 퍼거슨 감독에게 확실하게 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중요한 고비때마다 자신의 저력을 발휘했던 그였기에, 분명히 해내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