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첼시vs리버풀, 8골 난타전의 짜릿한 명승부

 

그야말로 유럽 축구역사에 잊혀지지 않을만한 최고의 명승부였습니다.

축구를 볼 때 팬들에게 가장 짜릿함을 안겨주는 것은 승리에 잔뜩 굶주린 선수들의 치열한 승리욕이 아닐까 싶습니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선수들의 뜨거운 몸부림과 욕망은 축구팬들에게 희열과 감동을 안겨주며 경기의 재미를 더해갑니다. 그것은 곧 명승부로 이어집니다.

22명의 선수들은 녹색 그라운드 안에서 치열한 혈전을 주고 받으며 상대팀 전술과 움직임에 따른 일사불란한 경기력을 펼칩니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거친 몸싸움 대결과 신경전, 상대팀 골문에 비수를 꽂기 위해 틈을 노리는 선수들의 모습, 어느 경기 때보다 더욱 치열한 수비수와 공격수의 양보 없는 승부는 경기를 보는 축구팬들을 더욱 설레게 하는 한편의 드라마 혹은 명승부라는 존재감으로 남게 됩니다.

'컬러 더비'로 불리는 첼시와 리버풀의 라이벌 혈전은 축구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었던 멋진 한판 이었습니다. 15일 오전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에서 8골을 주고 받는 난타전을 벌이며 경기 초반부터 불꽃튀는 공방전을 펼쳤습니다. 두 팀 감독과 선수들은 경기 전 '이번 경기는 특별한 경기다.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다지며 전형적인 라이벌전 분위기를 고조 시켰습니다. 22명의 선수는 경기 초반부터 상대방을 힘으로 제압하거나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는 팽팽한 힘싸움을 펼치며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비장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전반전을 0-2로 마무리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리버풀이 기적을 연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4년전 이스탄불의 기적이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또 다시 재현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그 이유였죠.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첼시는 힘겨운 모습을 보이며 답답한 모습을 일관했습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마법이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의 집념에 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첼시는 후반전에서 본래의 페이스를 되찾으면서 리버풀을 사정없이 공략했고, 후반 6분과 11분에 걸쳐 손쉽게 2골을 넣으며 리버풀의 기적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후반 30분 프랑크 램퍼드의 역전골로 0-2였던 스코어를 3-2로 바꾸면서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명승부를 연출했습니다. 비록 후반 36분과 38분에 골을 허용했지만 종료 직전 램퍼드가 동점골을 넣으면서 4-4의 스코어를 완성 지었습니다. 이로써 첼시는 리버풀을 제치고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여 FC 바르셀로나와 결승 진출을 다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한 주인공은 경기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과 감독들 이었습니다. 선수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비장한 모습으로 평소보다 더 투철한 승리욕을 발휘했습니다. 히딩크 감독과 베니테즈 감독은 그동안 많은 경기에서 극적인 장면의 시나리오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연출했던 저력이 있었기 때문에 '마법사vs마법사'라는 시소 게임을 보는 듯한 팽팽한 지략 대결을 펼쳤습니다.

비록 경기는 4-4 무승부이자 첼시의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리버풀 선수들의 강인한 승리 의지가 없었다면 이번 경기 명승부는 불가능했습니다. 리버풀은 전반전 볼 점유율에서 63-37(%)의 우세를 점하면서 1차전 1-3 패배의 스코어를 만회하고자 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했는데 이것이 8골의 난타전을 주고 받는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비록 스티븐 제라드가 결장했지만 '알론소-마스체라노-루카스'로 짜인 중원 라인을 구축하여 1차전과 다른 전술을 구사했고,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축으로 하는 밸런스를 튼튼히 다지면서 공격 옵션들이 최전방에서 유기적인 움직임을 발휘하더니 첼시보다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얻었습니다.

반면 첼시는 경기 초반부터 소위 '잠그기' 전술을 일관하며 수비에 치중하는 전술을 꺼내들었습니다. 좌우 윙 포워드인 플로랑 말루다와 살로몬 칼루가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디디에 드록바와의 간격이 벌어졌는데, 오히려 전반전에 리버풀에게 밀리는 역효과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첼시가 2차전을 무난하게 경기하려면 전반전에 1골을 먼저 넣으면서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쳤어야 했습니다만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들의 발이 무겁다보니 공격에서 소극적인 경향을 나타냈습니다. 만약 리버풀이 전반전에 2골을 넣지 않았더라면 2차전을 싱겁게 끝냈을지 모릅니다.

8골 난타전의 첫 시작은 파비우 아우렐리우의 감각적인 왼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전반 19분 오른쪽 페널티박스 바깥에서 왼발로 직접 프리킥을 날렸던 것이 선제골로 빨려든 것이죠. 모든 사람들은 아우렐리우가 동료 선수에게 프리킥을 띄워줄거라 예상했지만 오히려 뜻밖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더니 9분 뒤에는 사비 알론소가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의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얻으며 직접 추가골을 성공 시켰습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리버풀이 첼시를 2-0으로 앞서면서 '베니테즈 마법'이 실현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리버풀의 기적보다 더 강한 것은 '히딩크 마법'이었습니다. 첼시는 후반 초반부터 미드필더들과 공격수들의 움직임과 활동량을 늘리며 상대의 기세를 완전히 빼놓더니 중원 장악에서 우위를 점하여 경기의 페이스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후반 6분 드록바가 문전에서 니콜라스 아넬카의 오른쪽 크로스를 받아 슛을 날리는 과정에서 호세 레이나 골키퍼의 손을 맞고 골망을 흔드는 '운'이 따랐습니다. 5분 뒤에는 알렉스가 35m 거리에서 대포알같은 오른발 프리킥을 골로 성공시켰습니다. 슈팅 속도가 워낙 빠르게 향하다보니 레이나의 다이빙이 한 박자 늦고 말았던 것이죠.

그리고 후반 31분. 미하엘 발라크가 리버풀 선수의 패스를 가로채기하여 드록바에게 공을 띄워줬고, 드록바의 땅볼 패스를 골문 정면에서 받은 램퍼드가 왼발로 역전골을 넣으면서 0-2로 뒤졌던 스코어를 3-2로 끌어 올렸습니다. 하지만 리버풀은 1~2차전 합계 스코어에서 3-6으로 뒤진 불리함을 만회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를 보여줬습니다. 후반 36분과 38분에 루카스 레예바와 디르크 카윗이 첼시 수비진의 방심을 틈타 골을 넣으면서 2차전 스코어에서 4-3으로 앞섰습니다. 2-0으로 앞서다 2-3으로 뒤졌지만, 4-3의 재역전을 하면서 그라운드를 후끈 불타오르게 했습니다.

그러나 리버풀의 승리욕은 아쉽게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첼시가 후반 막판에 골을 넣으면서 4-4가 되었던 것이죠. 첼시는 종료직전 램퍼드가 오른쪽 아크 부근에서 아넬카의 패스를 받아 논스톱 슈팅을 때리며 4-4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경기는 1~2차전 합계 스코어에서 7-5로 앞선 첼시의 승리로 끝났지만 두 팀 모두 2차전에서 긴장감을 더해가는 '8골 전투'를 펼치면서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축구의 진정한 묘미를 안겨줬습니다.

경기 종료 후에 웃은 팀은 첼시였지만, 승리욕에 불탄 선수들의 경기력과 의지는 한 치의 우열조차 가리기 힘들었습니다.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은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하며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짜릿한 명승부를 안겨준 것과 동시에 축구의 진정한 매력을 거침없이 선사했습니다. 히딩크 감독도 베니테즈 감독도, 그리고 스탬포드 브릿지를 밟은 선수들 모두 승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