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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첼시vs리버풀, '이 죽일놈의 악연'

 

지난달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는 일본과 5번이나 맞붙으며 '한일 베이스볼 클래식'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습니다. 다른 나라와의 경기를 끝마치고 나면 일본과 대결해야 했으니, 이를 두고 국내외에서 많은 이슈들이 쏟아졌습니다. 특히 스즈키 이치로는 한국과 자주 대결하는 기분에 대해 "헤어진 여자 친구를 길에서 운명처럼 자주 만나는 것과 같다"는 비유적인 말을 내뱉으며 국내팬들의 이목을 끌게 했죠.

유럽축구에서도 WBC 한일전에 버금갈 정도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악연 관계를 형성하는 팀이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컬러 더비'의 이름으로 라이벌 대립각을 세웠던 첼시와 리버풀입니다. 두 팀은 2004/05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네 시즌 동안 챔피언스리그에서 지겹도록 맞대결을 벌이더니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또 격돌하여 다섯 시즌 연속 '별들의 전쟁'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첼시 미드필더 프랭크 램퍼드는 지난달 13일 잉글랜드 일간지 <데일리 메일>을 통해 "첼시 선수들은 리버풀과 챔피언스리그에서 맞붙는 것을 지겹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리버풀도 첼시를 만나기 싫어할 것이며 두 팀 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며 소속팀의 8강 상대가 리버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뒤 챔피언스리그 8강 조추첨 결과, 두 팀이 다섯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에서 만나면서 물러설 수 없는 일전을 벌이게 됐습니다.

두 팀은 지난 네 시즌 동안 챔피언스리그 맞대결에서 8전 2승4무2패의 팽팽한 전적을 기록했습니다. 그중 세 시즌은 4강에서 맞붙었는데 리버풀이 두 번, 첼시가 한 번 승리했습니다. 2004/05시즌 4강에서는 리버풀이 1승1무의 성적으로 첼시를 꺾고 결승에 진출하여 AC밀란까지 제압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2005/06시즌 32강 예선 두 경기에서는 득점없이 비겼습니다. 2006/07시즌 4강전에서는 리버풀이 승부차기 끝에 결승에 진출했고 지난 시즌 4강전에서는 첼시가 1승1무의 성적으로 결승 무대를 밟게 되었습니다.

우선, 오는 9일 안필드(리버풀 홈 구장)에서 열릴 1차전에서는 리버풀의 우세가 예상됩니다. 리버풀은 지금까지 안필드에서 열린 첼시전에서 75전 49승16승10무의 압도적인 전적을 자랑하는데다 최근 다섯 번의 경기에서도 패한적이 없었습니다. 특히 지난 2월초에 열린 프리미어리그 첼시전에서는 페르난도 토레스가 후반 44분과 45분에 골을 터뜨리며 89분 동안의 치열했던 접전을 홈팬들 앞에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더욱이 첼시는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원정 4경기에서 3무1패를 기록하며 원정 경기에 약한 면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리버풀은 최근 챔피언스리그 10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구가하며 22경기 무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더불어 유럽 무대에서 뚜렷한 오름세 행진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2004년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 부임 이후에는 두 시즌에 한번꼴로 결승에 진출했는데(2004/05, 2006/07시즌) 이러한 공식이 올 시즌에 적용될 경우, 첼시를 4강 및 결승 진출의 제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최근 프리미어리그 4연승으로 선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뒤를 바짝 뒤쫓고 있어, 올 시즌 최고의 팀 분위기와 완벽한 공수 밸런스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기록 대결이라면 첼시도 뒤지지 않습니다. 지난 2003년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팀을 인수한 이후 지금까지 다섯 번의 챔피언스리그에서 4번이나 4강 진출 이상의 성적을 올렸기 때문입니다. 특히 지난 시즌에는 클럽 역사상 최초로 결승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또한 첼시는 레알 마드리드를 꺾은 팀을 이기면 챔피언스리그에 우승한다는 속설을 지닌 '레알 징크스'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팀입니다. 최근 세 시즌 동안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한 팀들의 공통점은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은 팀들을 8강에서 물리쳤는데, 리버풀이 16강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제압하고 8강에서 격돌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레알 징크스가 올 시즌에도 유효할 경우, 첼시가 리버풀을 꺾고 4강에 오른 뒤 내친김에 우승컵까지 거머쥐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지난 2월 '마법사' 거스 히딩크 감독을 영입하면서 4강 진출을 향한 감동적이고 짜릿한 드라마를 연출하기 위한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기록 대결과 더불어 지구촌 축구팬들의 이목 대결을 끌어모으는 것이 바로 '두 마법사' 히딩크 감독과 베니테즈 감독의 지략 대결입니다. 두 감독은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이번 맞대결에서는 어느 감독의 지략이 상대의 허를 찌르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될 것입니다. 첼시는 히딩크 감독 부임 이후 4-3-3과 4-4-2, 4-3-1-2 등을 골고루 구사하며 공격력에 대한 다변화를 꾀했고 리버풀은 베니테즈 감독의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앞세워 매 경기 마다 두꺼운 선수층을 골고루 활용했습니다.

첼시로서는 그동안 안필드 원정에서 리버풀에 불리했던 전적을 극복하기 위해 1차전에서 수비 위주의 전략을 짤 것임이 분명합니다. 히딩크 감독은 첼시 사령탑 부임 이후 공격보다 안정에 무게감을 두는 전술을 즐겨 구사했습니다. 좌우 풀백의 공격 가담을 줄이고 '램퍼드-에시엔-발라크'로 짜인 미드필더진과 포백의 간격을 좁히는 경기력으로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데 주력한 뒤 2차전에서 '4강 진출을 위한' 과감한 승부수를 띄울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드록바-아넬카' 투톱이 부상으로 리버풀전 출전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살로몬 칼루와 프랑코 디 산토가 이들의 공백을 확실히 메울지는 의문입니다.

리버풀은 '제토라인' 제라드-토레스 콤비의 막강 화력을 앞세워 첼시의 두꺼운 수비벽을 뚫겠다는 각오입니다. 특히 공격형 미드필더인 제라드는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7골로 미로셀로프 클로제(바이에른 뮌헨)와 더불어 득점 공동 1위를 기록하는 등 이번 대회에서 파괴적인 '한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시즌 후반들어 토레스와의 호흡이 무르익고 있어 첼시전에서 환상의 콤비네이션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문제는 두 선수에 대한 공격 의존도가 높다는 점인데 히딩크 감독이 이를 어떻게 간파할지 주목됩니다.

첼시와 리버풀의 '컬러더비'는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8강 최고의 빅 매치로 꼽히고 있습니다. 두 팀의 막상막하 기록 대결과 두 마법사들의 지략 대결, 그라운드를 화려하게 수놓을 선수들의 치열한 공방전 등등 어떤 결과로 끝을 맺을지 예측불허입니다. 과연 어느 팀이 웃게될지 안필드와 스탬포드 브릿지를 뜨겁게 달굴 '별들의 전쟁'에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입니다.

-첼시vs리버풀, 최근 챔피언스리그 전적-

2004/05시즌 4강 1차전 첼시 0-0 리버풀, 2차전 리버풀 1-0 첼시
2005/06시즌 32강 예선 두 경기 모두 0-0 무승부
2006/07시즌 4강 1차전 첼시 1-0 리버풀, 2차전 리버풀 1-0 첼시, 승부차기 리버풀 4-1 첼시
2007/08시즌 4강 1차전 리버풀 1-1 첼시, 2차전 첼시 3-2 리버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