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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허정무호, WBC 처럼 '감동 드라마' 절실


지난 24일 결승 일본전을 끝으로 약 한달 동안 전국을 들끊게 했던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하 WBC)이 막을 내렸습니다. 경기 침체로 힘겨워하던 국민들의 뜨거운 야구 사랑은 대표팀 선수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고 미국 현지에서도 교포들의 열렬한 성원속에 야구 열기가 연일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고 또 거듭했습니다.

일부에서는 WBC이후 야구의 인기가 거품처럼 식어갈 것이라는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 틀린말은 아닙니다. 축구가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K리그 흥행성공을 거듭하다 어느 시점부터 냄비가 식어간 것 처럼 야구도 분명 언젠가 내리막길을 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WBC 결승전 이후 야구 팬들이 '유소년&인프라 확충'을 거듭 주장했던 것 처럼 한국 야구의 전반적인 환경은 '선진적인 실력에 비해' 그리 우수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대로라면 한국 야구의 인기는 몇년 뒤 급속한 내리막길을 걷게 될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 야구는 지금의 축제 분위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발전을 모색하는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야구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로 손꼽히는 종목으로서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500만 관중시대의 '꿈'을 이루면서 이 땅의 야구열풍을 주도했었죠. 그런 팬들이 있기 때문에 2002년의 축구 처럼 거품을 의심할 수 없는 것이며 지금의 열렬한 인기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이 분명합니다. 팬들이 꾸준히 성원할 수 있다면 '유소년&인프라 확충'에 대한 목소리는 더욱 뜨겁고 거세질 것입니다.

야구팬들의 뜨거운 야구사랑이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히 야구를 좋아해서가 아닙니다. '직업' 야구 선수인 스타들의 멋진 플레이와 팬들의 뜨거운 환호가 어우러졌기 때문에 프로야구의 경기 수준이 부쩍 높아진 것이며 베이징 올림픽과 WBC에서의 '감동 드라마'가 연출될 수 있었던 겁니다.

얼마전 김경문 두산 감독이 K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발야구를 하는 이유는 팬들을 위해서다.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어다녀야 팬들이 좋아하지 않는가"라고 한 것처럼 한국 야구가 많은 팬들을 보유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당연한 것이며 WBC 감동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선수들은 평소 프로야구에서 팬들을 위해 뛰겠다는 마음으로 단련되어 있었기에 베이징 올림픽과 WBC에서 투혼을 발휘했고 이것이 '감동 드라마'가 되어 한국의 야구 열풍을 이끌었습니다. 국민들이 WBC에서 준우승하고도 선수들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이러한 야구의 뜨거운 열기에 위축되는 종목이 하나 있습니다. 야구와 더불어 한국 스포츠의 양대산맥이었던 축구가 그것이죠.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열기를 오랫동안 이어가지 못하더니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무기력한 부진으로 국민들을 실망시키면서 야구에 이어 No.2로 밀린 상황입니다. 이제는 야구가 WBC에서 No.1을 확고하게 굳혔으니 더 이상 분발하지 않으면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등장했던 '축구장에 물채워라'라는 국민들의 주장이 또 나타날 것임이 분명합니다.

비단 박성화호 뿐만은 아닙니다. 축구 국가대표팀은 2003년 쿠엘류호를 시작으로 본프레레-아드보카트-베어벡 체제에서 소심한 전술과 단조로운 공격 루트를 일관하며 팬들을 실망시켰고 이들 중에는 '전략 없는 축구'로 관중들의 거센 야유를 받은 지도자들도 있었습니다. 2003년에는 오만과 베트남에게 패했고 2004년에는 몰디브를 상대로 두번이나 납득할 수 없는 경기력을 일관하며 '월드컵 4강'의 자존심을 단단히 구기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부진은 세계 축구의 평준화가 한 몫을 했지만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원하는' 국민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지난해 9월까지의 허정무호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대표팀 전 주장인 김남일이 지난해 9월 5일 요르단전을 마친 뒤 믹스드존에서 취재진을 향해 "허정무 감독님이 더 이상 실험을 그만했으면 좋겠다. 선수들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는 뼈있는 한마디를 남겼던 것 처럼 허정무호는 거듭된 실험으로 연이은 졸전을 일관하며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습니다. 한때 '6만 관중 매진'을 자랑하던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지난해 대표팀 경기에서 1만명대 관중 동원만 두번이나 기록할 정도로(1월 30일 칠레전, 9월 5일 요르단전) 팬들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축구<야구'의 흐름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겁니다.

일각에서는 "한국에서 축구와 야구는 경쟁 관계가 아니다"며 두 종목의 상대성이 다르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만 많은 팬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원론적인 말이 될 뿐입니다. 스포츠 파이가 넓었더라면 상대성이 인정될 수 있었지만 워낙 팬들이 '야구vs축구'의 대립적인 흐름에 오랫동안 익숙했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은 어쩔 수 없이 감안해야 할 부분입니다. 스포츠 파이가 크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축구와 야구가 오랫동안 국내 인기 스포츠 No.1을 두고 치열한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이죠. 두 종목 팬들이 서로를 헐뜯고 일부 야구팬들이 유명 축구 커뮤니티를 공격하는 모습은 그동안 온라인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축구가 야구처럼 국민적인 성원에 힘입어 예전처럼 많은 인기를 얻으려면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같은 큰 대회에서의 활약상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경기력이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늘었고 유럽파들이 꾸준히 배출되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경기 수준을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만 선수들이 '반드시 이기겠다'는 승리욕과 열의를 가지며 열정 넘치는 모습이 축적된다면 국민들의 인기를 한 몸에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태극전사들이 지난 월드컵 최종예선 3경기에서 보여준 활약상은 국민들을 납득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10월 아랍에미리트전 4-1 대승과 11월 사우디 아라비아 원정 2-0 승리, 그리고 지난달 이란 원정 1-1 무승부 모두 값진 결과였을 뿐더러 선수들이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무기력한 경기력을 잊으며 멋진 플레이와 뜨거운 승리욕으로 팬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허정무 감독의 용병술까지 팬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이란 원정에서 팬들의 반응이 비난 일색이 아닌 뜨거운 찬사로 뒤덮인 것은 허정무호의 앞날 행보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러한 허정무호의 긍정적 행보가 반가운 이유는 예전 태극전사 선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혼'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마지막 예선이었던 벨기에전에서 월드컵 첫 승을 위해 사력을 다했던 태극전사들의 투지와 붕대 투혼은 멕시코전 1-3 참패와 네덜란드전 0-5 대패로 실망했던 국민들의 분노를 잊게 했고 이것이 K리그 르네상스의 발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멕시코전에서는 유상철이 경기 중 코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도 인저리 타임에 결승골을 넣으며 팬들을 열광시켰죠.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군 선수들의 강인한 승리욕까지, 이러한 면모를 지금의 태극전사들이 되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허정무호가 지난 월드컵 최종예선 3경기 만으로 국민들을 완전히 납득시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계속된 부진으로 '한국 축구 부활'을 바라던 국민들의 인내와 실망감이 바닥까지 드러났던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에 3경기는 부족한 것이며 이번 A매치 두 경기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오는 28일 이라크전과 다음달 1일 열릴 북한전에서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고 앞으로의 경기에서 멋진 플레이로 팬들을 사로잡는 모습이 쌓이고 또 쌓이면서 끝없이 단련되면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본선에서 야구의 WBC 못지 않은 '감동 드라마'를 연출할 것입니다.

그래서 '월드컵 본선 티켓이 걸린' 이번 북한전이 중요합니다. 허정무호는 지난해 북한과의 4번의 A매치에서 모두 비긴데다 두 골밖에 넣지 못해 '북한 징크스'에 단단히 걸린 상황입니다. 이번 북한전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경기력과 뜨거운 열정으로 그라운드를 화려하게 수놓는다면 한국의 축구붐이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여기에 K리그 열기까지 뒷받침된다면 한국축구의 열기는 연일 용광로처럼 활활 끊어오를 것입니다. 이러한 팬들의 열광적인 성원을 얻으면서 2010년 월드컵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죠. 한국 축구는 지금의 야구붐을 타산지석 삼아 국민적인 축구 열기를 끌어 모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하며 그 주역은 허정무호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대표팀 그리고 한국 축구의 발전이 그저 '입'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