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과 FM. 군대 시절에 지겹도록 들었던 용어입니다. 전자는 아마츄어 매뉴얼(Amateur Manual)을 뜻함으로서 느슨하게 일하는 것을 말하며 후자는 야전교범(Field Manual)을 말함으로써 일을 원칙대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군대에서는 원래 AM이라는 말이 없었지만 FM이라는 개념과 반대되면서 붙여지게 되었죠. 왜냐하면 AM은 원리원칙을 무시하거나 요령을 부리는 경우에 자주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선임 혹은 간부 입장에서는 융통성이 요구될 수 밖에 없겠지요.
제가 2~3년전에 군 생활 할때는 다른 누구처럼 AM이 제일 편했습니다. 2년 동안 철책안에 있어야 하다보니 원리원칙 따지는 FM 보다 AM대로 작업하거나 훈련하는게 덜 피곤하고 재미있었으니까요. 특히 군대 적응이 덜 된 후임병 시절에는 AM이라는 존재가 너무 편했습니다. 내무 생활까지 포함해서, 워낙 이리저리 할 일이 많다보니 FM으로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죠. AM대로 하면 다른 사람들과 수다떨고 놀면서 일이든 훈련이든 서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물론 추억 거리도 많았었지요. 제가 AM의 묘미를 이 때부터 깨달았습니다.(그렇다고 AM이 FM보다 더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그런데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K리그의 골 세리머니는 군대 시절의 AM과 FM의 추억을 떠올리게 합니다. 올 시즌에 개정된 심판 판정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상대 진영을 자극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심판의 견해에 따라 경고를 줄 수 있다고 합니다. 웃통을 벗거나 코너 깃대를 넘어뜨린 것도 이에 해당하지요. 그래서 K리그가 2라운드밖에 치러지지 않았음에도 벌써 2명의 선수가 골 넣고 퇴장 당했습니다.(이전 상황에서 경고가 있었기 때문에 또 하나의 경고가 누적이 되어 퇴장당한 겁니다.) 스테보(포항)는 수원 서포터즈 그랑블루 앞에서 큐피트 세리머니를 하다 퇴장당했고 이동국(전북)은 코너 깃대를 넘어뜨리다 그라운드 밖으로 떠나고 말았죠.
규정대로라면 스테보와 이동국의 골 세리머니는 당연히 경고입니다. 이것은 엄연한 FM이기 때문에 당연히 선수들이 따라야겠지요. 그런데 규정이라는 것은 이를 시행하는 사람마다 해석이 달라지기 마련이며 골 세리머니 같은 경우에도 심판 재량에 따라 경고가 내려지기 때문에 팬들에게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스테보와 이동국은 FM이 아닌 AM대로 하다가 봉변(?)을 당한 셈입니다. 그런데 스테보는 감자와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세우는 도발적인 골 세리머니가 아니었으며 모욕을 준 것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포항이 아닌 수원 서포터즈에게 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를 충분히 심어줄 수 있는 것인데다, 그것이 모욕을 준 것인지 아닌지는 사람 시각마다 달리 볼 수 있기 마련이죠. 그런 스테보는 팬 서비스 차원에서 '독도는 우리땅' 골 세리머니와 ET춤을 추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큐피트 세리머니의 의도 또한 팬을 위한 목적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큽니다.(차라리 사진 기자 정면에서 했으면 더 좋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고금복 주심은 스테보에게 퇴장을 준 결정적 발단이 수원 서포터즈 앞에서 머문 시간때문에 상대를 자극시키려는 의도로 봤지만, FM대로라면 고금복 주심의 판정은 존중받아야 겠지요.
이동국의 골 세리머니는 상대팀에 대한 공격적인 의미가 없는데다 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목적이 다분했기 때문에 애교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볼때는, 기물 파손의 우려가 있을 수 있는 행동인데다 이전에도 이것과 똑같은 골 세리머니로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이동국의 잘못이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 또한 사람 시각마다 다르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죠. 올 시즌에는 다른 때보다 심판 판정이 더 엄격해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두 선수는 '시범 케이스'에 걸린 것입니다.
하지만 골 세리머니에 대한 의미는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골 세리머니는 오직 골 넣은 선수에게만 특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골을 기록하기까지 그동안 노력했던 과정을 관중들과 함께 정신적 흥분 상태에서 흥분하는 것이죠. 선수들이 경기전 골 세리머니를 준비하는 이유는 골을 넣기 위한 엄연한 '동기부여'일 뿐더러 단순한 기쁨의 표현이 아닌 팬들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서비스 차원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골 세리머니들이 나오는 것이며 그 표현 또한(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심판 판정 못지 않게 존중받아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K리그에서 맹활약을 펼쳤던 공격수 출신의 어느 모 고교 감독과 인터뷰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선수시절 골 세리머니와 관련되어 하는 말이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기성용(서울)의 지난 7일 전남전 골 세리머니가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기성용은 이날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웃옷을 벗는 골 세리머니를 하겠다는 서울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이것은 규정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결국 경고를 받았습니다만 팬서비스에 충실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재량껏 봐줄 수 있는 사안이었습니다. 기성용은 경기 종료 후 자신의 골 세리머니에 대해 "팬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로선수로서 그런 부분에 대해 신경을 쓰는 것도 축구팬들을 늘리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골 세리머니의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자신의 의견을 밝혔습니다.
기성용의 말은 당연히 맞습니다. 팬들을 즐겁게 하는 골 세리머니는 K리그의 흥행을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2003년 이천수(전남)가 자신의 속옷 세리머니로 K리그의 이슈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천수는 축구잡지 <베스트 일레븐> 2003년 8월호에서 자신의 속옷 세리머니에 대해 "저도 그런 생각은 전혀 못해 봤는데요. 맹새코 나 이천수를 띄울 목적으로 한 일이 아니었어요. 가라앉은 K리그 분위기를 고조시켜보자는 순수한 의미였죠. 결국 의도대로 이슈가 되었지만 저를 위한 쇼는 아니었습니다"라며 오직 팬들을 위해서 속옷 세리머리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에도 안티팬들이 많기로 유명했던 이천수 마저도 팬 서비스에 충실했던 겁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1999~2000년 즈음에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K리그 선수들의 골 세리머니 관련 프로가 몇달 동안 방영되었습니다.(제 기억으론 '축구광' 이경규가 진행했을 겁니다.) 경기 전 연예인들이 K리그 선수에게 골 세리머니 동작을 가르쳐주고, 그것을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골을 넣으면 경기 전에 연습했던 골 세리머니를 관중들 앞에서 재롱을 뽐내는 프로그램이었죠. 아무리 K리그가 인기 없다는 말들이 많다고 하지만 팬들의 흥미를 끄는 요소는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겁니다.
지난 14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리버풀의 '레즈 더비'에서는 스티븐 제라드(리버풀)가 페널티킥 역전골을 넣은것에 흥에 겨워 방송 카메라에 키스를 하는 골 세리머니를 했습니다. 어쩌면 K리그에서는 경고를 받을지 모를 일이겠지요. 이동국의 사례처럼 기물 파손의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유)의 일명 '거만 세리머니', 웨인 루니(맨유)가 코너 플랙에 입맞춤을 했던 골 세리머니 또한 K리그에서는 심판 재량에 따라 충분히 경고를 받을수도 있습니다. 규정에 충실하는 심판 재량도 존중해야 겠지만 골 세리머니를 하는 선수들의 팬 서비스도 존중 받아야 합니다. 물론 관중들의 도발을 사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 골 세리머니는 어떠한 징계를 받아도 마땅한 것이겠죠. 그만큼 심판들의 융통성, 즉 FM이 아닌 AM의 아량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골 세리머니는 무엇보다 팬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축구팬들은 딱딱하고 항상 똑같은 축구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으며 골 세리머니 또한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축구팬들이 원하는 것은 규정대로 행해지는 FM이 아닌 AM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규정도 중요하지만 때에 따라 유도리있게 경기를 운영해야 골 세리머니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입니다. FM의 부족한 점을 AM이 메우기 위하여 축구팬과 축구 선수, 그리고 심판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축구'가 K리그에서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