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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vs차범근, 비교 대상 '아니다'

 

오늘(19일) 오전에 모 스포츠 신문에서 창간 특집으로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차범근(56, 수원 블루윙즈 감독)을 비교하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2009년 박지성 vs 전성기 차범근 누가 앞설까?'라는 제목의 기사인데, 축구팬들 외에도 다른 스포츠 종목의 팬들이나 일반인들의 시선을 쉽게 끌어모을 수 있는 소재라 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의 인기가 높다는 것을 고려하면 선수를 띄워주는 기사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사에 대한 나쁜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언론사는 축구의 흥행을 이끌어야 하는 구실을 맡고 있기 때문에 '박지성vs차범근'을 비교하는 기사는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 모두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영웅이자 유럽에서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 알린 대표적인 축구 선수들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비교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사람들은 특정 대상의 비교 심리를 좋아하기 때문에 '박지성vs차범근'이라는 소재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을 수 있었던 겁니다. 이미 축구 여론에서도 두 사람중에 누가 최고인지에 대한 논쟁을 벌였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언론사가 기사를 보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기사가 각 포털 메인에 올랐기 때문에 언론사로서는 성공적으로 기사를 쓴 것입니다.

물론 기사는 기사일 뿐이며 '박지성vs차범근' 비교는 기사에서 끝나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경계하고 싶은 것은 '박지성vs차범근'의 비교가 지구촌 역사상 최고의 축구 선수 논쟁으로 유명한 '펠레vs마라도나'처럼 '무의미한' 논쟁으로 '확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펠레와 마라도나 이외에도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조지 베스트, 보비 찰튼 같은 또 다른 불세출의 세계적인 축구 영웅들이 있기 때문에 최고의 선수를 가리는 객관적 기준이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펠레와 마라도나라는 이름이 팬들에게 많이 불렸을 뿐이죠.

냉정히 말해, 2009년의 박지성과 전성기 시절의 차범근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차범근의 전성기 시절이 1970~80년대인데 그때의 축구 스타일과 2000년대 후반의 축구 스타일이 전혀 다른데다 동시대에 축구 선수로 활약했던 존재가 아니라는 점에서 비교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모 포털 사이트에서는 두 명의 축구 해설자가 '네드베드vs박지성', '긱스vs베컴', '판 데르 사르vs카시야스' 비교 시리즈를 보내고 있지만 이들은 동시대에 활약했던 축구 선수들인데다 서로의 스타일 또는 장점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비교가 가능한 것이죠. 야구에서 '선동렬vs최동원'의 비교가 완벽하게 형성될 수 있었고 아직까지 회자되는 이유 또한 두 사람 모두 동시대에 활약한 투수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럽 대회 우승 경력'만'을 놓고 보면 박지성이 우위일 것입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박지성 1회)과 UEFA컵 우승(차범근 2회)는 접어두더라도 차범근에게 없는 정규리그 우승 경력이 두 번이나 있기 때문이죠. PSV 에인트호벤 시절을 논외 하더라도 맨유에서 많은 우승 경력을 쌓았습니다. 특히 지난해 12월 클럽 월드컵 우승은 아시아 선수 최초라는 점에서 희소가치가 높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이 속한 맨유는 모든 대회 우승을 노릴 만큼 이미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박지성은 얼마전 팀이 칼링컵을 제패하면서 우승 메달을 받았지만, 정작 그가 올 시즌 칼링컵에 나선 것은 단 1경기(칼링컵 4라운드 퀸스파크 레인저스전) 밖에 안됩니다. 이는 칼링컵이 군소격에 속하는 대회이기 때문이죠. 더욱이 지금의 프리미어리그와 20~30년 전의 독일 분데스리가가 속한 환경, 두 선수가 속한 팀의 전력 또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차범근과 박지성의 우승 경력 논쟁은 무의미합니다.

그리고 박지성과 차범근이 팀에서 맡고 있는 역할은 엄연히 다릅니다. 부지런한 움직임과 빠른 발로 상대 수비수를 흔드는 면모와 멀티 플레이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합니다만, 박지성은 팀에서 동료 선수들의 골 기회를 창출하는 이타적인 역할에 치중하는 선수이자 궃은 역할에서 진면목을 다하는 선수입니다. 반면 차범근은 골을 노리는 선수입니다. 유럽 축구에서 활약했던 포지션을 놓고 볼때도 박지성은 미드필더이며 차범근은 공격수입니다. 포지션까지 다른 선수들을 비교한다는 것은 무리수가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브라질 축구의 '카카vs펠레' 비교의 앞뒤가 안맞듯이 최고를 가릴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부족합니다.

'박지성vs차범근' 비교가 확대되어서는 안될 또 하나의 '결정적' 이유는 박지성과 차범근은 레벨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차범근과 펠레, 마라도나는 이름 그 자체로도 전설이지만 '아직 젊은' 박지성은 전설의 반열을 향해 노력해야 하는 단계에 있는데다 맨유와 한국 축구를 위해 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차범근과 펠레, 마라도나 같은 축구 전설들은 시대를 거슬러 존경의 대상이 된 인물들이기 때문에 박지성이 속한 위치와는 거리가 멉니다.

물론 지금은 누가 뭐라해도 박지성이 한국 축구의 핵심입니다. 유럽축구가 우리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결정타를 날린데다 국가대표팀에서의 자리가 가장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현존하는 한국 축구 선수 중에서는 가장 완벽한 선수이기도 하고요. 그런 박지성이 훗날 차범근과 같은 '한국 축구의 전설'로 남으려면 맨유와 대표팀에서 이루어야 할 과제들이 많습니다.

박지성은 차범근에 이어 '한국 축구의 전설'이 되어야 할 선수입니다. 차범근이 쌓아왔던 모든 것은 추억이지만 박지성의 활약상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죠.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 지난해 5월 1일 고려대에서 열린 U-리그 개막전에 참석해 "박지성은 한국의 자랑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자랑이기도 하다. 아시아 하면 박지성이 떠오를 정도"라고 치켜세운 것 처럼 박지성이 이루어야 할 신화는 차범근이 쌓아왔던 명불허전의 '신화'처럼 완성 궤도를 그려야 할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박지성의 미래에 흠을 찾을 수 없습니다. 박지성은 성실함과 꾸준함, 강인한 정신력으로 맨유에서의 입지를 굳힌 선수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세계 최고의 축구 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저력이 있습니다. 박지성보다 개인 실력이 뛰어난 루이스 나니가 맨유의 철저한 벤치 선수라는 점은 '성실한 선수가 감독에게 인정받는다'는 축구의 진리를 말해주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박지성의 미래는 밝을 수 밖에 없는 것이며 훗날 차범근과 더불에 한국 축구의 전설로 남게 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전설이 되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둘 중에 한 명이 최고라고 비교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축구를 잘하는 박지성이 차범근 처럼 오랫동안 유럽 무대에서 큰 미래를 그려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