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제패를 위해 UEFA 챔피언스리그에 발을 내딛었던 32개 팀 중에 절반이 지난해 가을 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 고지에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16강 1차전을 거쳐 오는 11일과 12일에 열릴 2차전에서 8강에 진출할 승자를 가리게 됩니다.
챔피언스리그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처럼 패자부활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16개의 팀들이 8강에 진출하기 위해 2차전에서 모든 사력을 다해야 합니다. 한 팀은 웃어야 하고 다른 한 팀은 울어야 하지만 팬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흥미진진한 대결입니다.
국내 축구팬들에게도 2차전에 대한 관심사는 높습니다.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한 팀들 중에 유일한 한국인 선수가 대열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죠. 오는 12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인터 밀란의 16강 2차전에서 왼쪽 윙어로 나설 박지성(28) 말입니다. 맨유와 인터 밀란의 경기는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매치 중에서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열띤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 축구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고 있는 박지성이 맨유의 8강 진출을 위해 어떤 활약을 펼칠지 2차전이 몹시 기다려집니다.
박지성, AC밀란에 이어 인터 밀란전에서도 골 넣을까?
맨유와 인터 밀란의 2차전은 어느 때보다 치열한 혈전이 예상됩니다. '퍼거슨vs무리뉴', '잉글랜드 리그 1위vs이탈리아 리그 1위'의 매치업이 형성된데다 서로 안정된 팀 컬러를 자랑하는 만큼 어느 팀이 이길지 섣불리 장담할 수 없습니다. 1차전에서 0-0으로 비긴 두 팀이 8강에 진출하려면 2차전에서 골 넣는 축구로 승리해야 합니다. 특히 인터 밀란은 최소 1-1의 무승부를 거둘 경우 원정 다득점 원칙에서 8강에 진출하기 때문에, 맨유가 인터 밀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어 이겨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점에서 당초, 박지성의 2차전 선발 출장 가능성은 낮았습니다. 맨유가 공격적인 경기를 펼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동안 공격 포인트가 부족했던 자신보다는 루이스 나니의 선발 출장이 유력했으며 실제로 그는 지난 8일 풀럼 원정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박지성이 풀럼전에 선발 출장하면서, '12일 인터 밀란전 교체 또는 결장-14일 리버풀전 선발 출장'이라는 밑그림이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리버풀전은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3연패 여부가 거의 윤곽이 드러나는 중요한 경기였기에 '강팀용 선수'인 박지성의 활약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경기입니다.
그런데 박지성은 풀럼전에서 골을 넣으며 '골이 부족한 선수'라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편견을 '실력으로' 깨뜨렸습니다. 그것보다 더 놀라운것은 최근 4경기 중에 3경기에서 공격 포인트(1골 2도움)를 기록하며 팀의 골을 엮어내는 선수로 발돋움한 것입니다. 경기 종료 후 퍼거슨 감독이 "인터 밀란전 선발 라인업을 짜기 힘들어졌다. 월드클래스급 선수를 빼야 하니까"라고 말했다는 것은 풀럼전 4-0 승리 주역인 박지성이 인터 밀란전에 선발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미 1차전에서 더글라스 마이콘의 발을 묶는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에 2차전에서는 마이콘을 또 봉쇄하는 것과 동시에 팀의 왼쪽 공격을 개척하기 위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입니다.
박지성은 지난 1~2월 동안 이타적인 활약에 치중하던 역할에서 벗어나 맨유 공격의 새로운 루트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기존에는 퍼거슨 감독의 무한 스위칭 전술 속에 좌우 측면과 중앙을 골고루 휘저었지만 최근에는 한쪽 측면에서만 움직이면서 공격을 전개하는 모습이 늘어났으며, 공격 포인트를 기록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입니다. 이는 인터 밀란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터 밀란의 좌우 풀백 라인이 스위칭을 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에, '박지성vs마이콘'의 공방전이 계속 벌어질 공산이 큽니다. 박지성이 왼쪽 날개에서 어떤 활약을 펼치느냐에 따라 맨유가 골 넣는 과정이 쉬워질 것이고, 박지성이 '오른쪽 윙 포워드'와 다를바 없는 마이콘을 꽁꽁 봉쇄하면 맨유 수비진이 무실점 경기 운영에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두 팀 모두 골을 넣어야 하는 경기 입니다. 그런 만큼 박지성은 1차전보다 더 공격적인 역할을 맡거나 골을 노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마이콘을 농락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여야 합니다. 박지성은 PSV 에인트호벤 시절을 비롯, 그동안 마이콘과의 볼 다툼에서 거의 우세를 점했기 때문에 이번 경기에서 고도의 집중력과 강한 체력으로 쉴세없는 공격을 펼칠 경우 상대팀의 오른쪽 수비 진영을 쓰러뜨릴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차전에서도 효과를 봤던 만큼, 항상 꾸준하고 매 경기 나아지는 경기력을 펼친 그의 진가가 기대될 수 밖에 없습니다.
박지성은 그동안 세컨볼이나 팀 동료 선수가 찔러주는 킬패스를 통해 골을 넣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풀럼전에서는 자신이 직접 골을 만들며 그동안 숨겨졌던 킬러 본능의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공수 양면에 걸쳐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뛰어다녔던 이전의 경기력에서 벗어나 감각적인 개인기로 과감히 문전을 돌파하며 상대 수비 진영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슈팅으로 골망을 가른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단지 풀럼전 골을 넣었다고 해서 '골이 부족한 선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에는 뭔가 확실한 존재감이 부족합니다. 이번 인터 밀란과의 2차전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최고의 빅 매치이기 때문에 이 경기에서 골을 넣는 맹활약을 펼칠 경우 유럽 무대에서 그의 주가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게 됩니다. 항상 결정적인 순간마다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던 그였기에 조세 무리뉴 인터 밀란 감독의 콧대를 납짝하게 만들 능력이 있음엔 분명하기 때문이죠.
특히 2005년 봄에 열린 챔피언스리그 4강 AC밀란전은 오늘날의 박지성을 있게 한 경기나 다름 없었습니다. 1차전에서는 미드필더진과 수비라인 최후방에서 상대팀의 공격을 끊어내고 역습을 전개하며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뛰어다녔고 2차전에서는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원정 다득점에 의해 팀은 결승진출 실패) 박지성은 두 경기에서의 활약상에 힘입어 그해 여름 맨유에 입성했고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베스트 11 선정, UEFA 올해의 선수 후보와 발롱도르 후보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런 박지성은 4년만에 밀라노를 연고로 하는 팀을 상대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기회를 맞이 했습니다. 2005년 AC밀란과의 2차전에서 골을 넣으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면 올해는 AC밀란 라이벌 인터 밀란을 상대로 골문을 조준하게 됐습니다. 최근 맨유에서 3번이나 공격 포인트를 쌓았던 그의 인터 밀란전 골 여부는 더 이상 '설레발'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박지성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유럽 축구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던 선수입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그리고 2008/09시즌 맨유의 주전 선수로 자리잡으며 항상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정체가 될 이번 인터 밀란과의 2차전 경기는 자신의 축구 인생의 큰 족적을 남길지 모를 중요한 때입니다. 최근들어 만개한 공격 포인트 본능, 그리고 5개월 18일 동안의 기다림 끝에 단련된 킬러 본능을 앞세워 팀의 8강 진출을 이끄는 골을 터뜨릴지 그의 인터 밀란전 활약이 어느 때보다 기다려지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