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첼시 히딩크, 마법사는 '아무나 하나'

 

거스 히딩크 첼시 감독의 마법은 여전히 거침 없었습니다. 지난달 21일 아스톤 빌라전부터 지난 7일 코벤트리 시티전까지 5연승을 거두더니 이번에는 원정 경기 무승부로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고지에 오르면서 마법사의 진면목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첼시는 11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에 소재한 올림피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에서 2-2로 비겼습니다. 경기는 그야말로 장군멍군 격이었습니다. 전반 20분 빈첸초 이아퀸타에게 선제골을 내준뒤 45분 마이클 에시엔이 동점골을 넣었고 후반 28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가 페널티킥 골을 넣더니 10분 뒤 디디에 드록바가 팀의 8강 진출을 이끄는 골을 기록하며 히딩크 감독의 마법을 도왔습니다. 첼시는 1차전 1-0 승리를 비롯 원정 다득점에서 우세를 점하면서 8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사실 첼시에게는 이번 경기가 어려운 경기였습니다. 유벤투스가 홈에서 열린 잉글랜드 클럽과의 역대 챔피언스리그 전적에서 10승3무3패의 압도적인 우세를 자랑했고 첼시가 최근 5경기 동안 이탈리아 원정 경기에서 1승2무2패로 부진하면서 유벤투스에게 밀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입니다. 특히 유벤투스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파벨 네드베드를 비롯 델 피에로, 다비드 트레제게 같은 노장 선수들이 그동안 빅 이어(챔피언스리그 우승컵)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에 첼시전에서 만만찮은 공세를 퍼부을 것으로 예상되었죠. 반면 첼시는 그동안 바쁜 일정으로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이탈리아 원정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원정 경기에서 두 골을 넣으며 비긴 것은 1승 못지 않은 값진 소득을 얻은 것이며 히딩크 감독의 지략 또한 성공적이었습니다.

첼시의 시작은 순조로운 듯 했습니다. '램퍼드-에시엔-미켈-발라크'로 짜인 미드필더진(에시엔이 윗쪽으로 올라감)이 서로 간격을 좁히며 중원을 탄탄하게 다지고 '아넬카-드록바' 투톱이 2선으로 내려가 수비 가담에 치중하면서 유벤투스의 공격을 번번히 차단했습니다. 이는 원정 경기에서 상대팀에 단 한 골도 허용하지 않으며 공격보다 안정적인 경기를 펼치겠다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전반 13분에는 드록바가 전방에서 상대 수비수가 가지던 공을 인터셉트한 뒤, 근처에 있던 미하엘 발라크가 패스를 받으며 슛을 날리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첼시의 위용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바쁜 일정에 시달리며 선수들의 체력이 저하되었는데 이날 경기에서는 전반 중반부터 허리에서 문제점이 하나 둘 씩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발라크는 전반 14분 클라우디오 마르치시오에게 공을 빼앗겨 역습을 허용하더니 20분 실점 상황까지 2번이나 패스 미스를 범하는 불안함을 노출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첼시의 오른쪽 공격이 살아날 틈이 보이지 않았고 드록바, 에시엔의 수비 부담이 커지면서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선제골 허용의 일차적 책임은 미드필더진 이었습니다. 램퍼드-미켈이 빈첸초 이아퀸타의 골을 하프라인에서 롱패스로 어시스트했던 다비드 트레제게에 대한 압박을 풀어줬던 것이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죠. 이 과정에서는 수비수들의 실수까지 한 몫을 했습니다. 에슐리 콜이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려다 지나치게 앞쪽으로 나오는 바람에 존 테리와의 호흡이 맞지 않았고 테리는 이아퀸타의 마크를 놓치면서 갑자기 한 순간에 골을 내주고 말았던 것이죠.

첼시의 공격은 실점 이후에도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 성향의 램퍼드-에시엔-미켈-발라크가 지나치게 가운데에 중심을 두는 공격을 펼치면서 경기를 넓게 운영하지 못하자 아넬카-드록바 투톱이 전방에서 이렇다할 공격 기회를 잡지 못하는 문제점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볼 터치가 적은 에시엔의 공격형 미드필더 기용이 실패로 기우는 듯 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상대팀에 밀리는 팀 공격에 대하여 어떠한 파격적인 변화를 주지 않으며 선수들을 믿었습니다.

그런 히딩크 감독의 믿음에 보답한 것이 바로 에시엔 이었습니다. 전반 43분 페널티박스 오른쪽 바깥에서 카르두주 티아구의 핸드볼 반칙을 이끌어내면서 팀의 프리킥 기회를 제공했고 이것이 드록바의 위협적인 프리킥으로 이어졌습니다.(공이 골라인 안에 완전히 들어갔기 때문에 골이 맞지만, 심판이 무효 처리했습니다. 장지현 MBC ESPN 해설위원도 인정했습니다.) 그런 에시엔은 45분 램퍼드가 문전에서 날린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자 근처에서 흘러 나오던 공을 골문 안으로 밀어 넣으며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그것도 원정 경기에서 넣은 득점이었기에 1골 이상의 가치가 있었던 골입니다.

첼시는 에시엔의 골로 원정 다득점에서 앞서면서 후반전에 수비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였지만 오히려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유벤투스를 괴롭혔습니다. 아넬카와 드록바가 2선에서 찔러주는 정확한 롱패스를 받으며 상대 수비수를 흔들었고 미드필더진이 패스 위주의 경기를 펼치면서 유벤투스를 곤혹스럽게 한 것이죠. 후반 중반에는 포백 수비수들이 조커로 투입된 세바스티안 지오빈코의 감각적인 문전 돌파를 철저히 차단하면서 미드필더들의 수비 부담을 덜어냈습니다. 그러더니 후반 24분 유벤투스 센터백인 지오르지오 키엘리니가 경고누적으로 퇴장당하면서 11-10의 숫적 우세를 점했습니다.

위기 상황도 있었습니다. 후반 28분 줄리아노 벨레티가 페널티박스 안쪽에서 핸드볼 파울을 범하면서 델 피에로에게 페널티킥 골을 허용한 것이죠. 그보다 더 불안했던 것은, 최근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선수들의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기 때문에 자칫 유벤투스에게 추가 실점을 내줄 뻔했습니다.

그런 첼시의 흐름을 '긍정'으로 바꾼것이 바로 드록바 였습니다. 후반 38분 문전으로 과감히 쇄도하는 과정에서 벨레티의 오른쪽 패스를 받으며 오른발 골을 슬라이딩하여 밀어 넣은 것입니다. 유벤투스가 키엘리니 퇴장 이후 3백을 쓰면서 수비라인이 엷어졌던 틈을 첼시가 공격적으로 밀어 붙이면서 2-2 동점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죠. 1~2차전 합계 스코어에서 3-2로 앞섰으니, 드록바의 골이 첼시의 8강 진출을 이끄는 결정적인 장면이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첼시는 유벤투스전 무승부로 8강 진출에 성공했고 히딩크 감독으로서는 자신의 마법이 여전히 통하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마법이 적중할 수 있었던 것은 에시엔과 드록바의 골 상황도 있었지만 전반전 0-1 실점 이후 의기소침하지 않았던 것이 8강 진출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첼시 선수들은 이아퀸타에게 골을 내주면서 상대팀 수비진영을 뚫는 공격 활로를 뚫지 못했습니다. 그러더니 전반 43분 에시엔이 상대 수비진영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어내면서 전세가 첼시의 우세로 기울어졌습니다. 선수들은 서로 힘을 모아 전반 막판 골을 넣는데 사력을 다했고 44분 드록바 프리킥, 45분 램퍼드 오른발슛에 이어 에시엔이 동점골을 넣으며 상대팀에 끌려다니던 흐름을 뒤집었습니다.

후반전에 수비가 아닌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던 것은 상대팀의 추격 흐름을 끊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안정적인 경기를 펼칠 것으로 보였지만 램퍼드의 롱패스와 에시엔의 스루패스를 필두로 드록바와 아넬카의 공격력을 무게감을 실어주는 전술을 구사하면서 경기 주도권을 장악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후반 28분 델 피에로에게 페널티킥 골을 내주고도 드록바가 2번째 동점골을 넣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겁니다. 이는 히딩크 감독의 '지략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첼시는 후반전에 많은 체력을 소모하면서 앞으로의 일정이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히딩크 감독이 선수층을 최대한 활용하여 팀의 오름세를 꾸준히 이끌지 주목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