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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인터밀란 격파' 벼르는 퍼거슨 고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서 23년 장기집권하여 24개의 크고 작은 우승 메달을 받았던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 감독(68). 상대팀의 허를 찌르는 용병술과 두꺼운 선수층을 최대한 활용하는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 목표에 대한 동기부여, 선수를 아들처럼 아끼는 친근함, 강력한 카리스마 등등 명장의 요소를 모두 갖춘 최고의 지도자입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에게는 한 가지의 아쉬운 경력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승 제조기'로 명성을 떨쳤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경력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잉글랜드 대중지 <타임즈>는 지난 2007년 9월 14일 역대 세계 최고의 감독 설문 조사에서 퍼거슨 감독에게 4위를 매기며(현역 감독 1위, 설문조사 1위는 2005년 타계한 리누스 미셸 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퍼거슨 감독은 맨유를 오늘날 괴물 같은 팀으로 키웠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이 2개였다면 그를 3위안에 포함시켰을 것이다"며 퍼거슨 감독 경력의 약점을 꼬집었습니다.

물론 퍼거슨 감독은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것을 만회했습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올 시즌에도 유럽 제패를 단단히 벼르며 우승에 대한 욕심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이미 올 시즌에는 클럽 월드컵, 칼링컵 우승으로 2관왕을 달성했고 프리미어리그 3연패까지 앞둔 상황입니다. FA컵은 '박지성의 골에 힘입어' 4강까지 진출했지만, 문제는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맨유 킬러' 조세 무리뉴 감독이 이끄는 인터밀란을 꺾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맨유가 챔피언스리그 2연패를 차지하려면 여러가지 난관을 극복해야 하나 쥬세페 메아차에서 열린 지난 1차전에서 증명한 것 처럼(0-0 무승부) '무리뉴의 벽'은 견고하고 강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맨유가 인터밀란을 제치고 8강에 오르려면 오는 12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릴 2차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인터밀란에게 골을 내주는 무승부를 허용할 경우 원정 다득점 원칙에서 8강 진출이 좌절되기 때문에 '골을 노리는' 공격적인 축구를 앞세워 무리뉴 감독의 코를 납짝하게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은 2차전을 앞두고 여러가지 고민에 빠져있는 상황입니다. 지난 8일 풀럼과의 FA컵 8강에서 테베즈-루니-박지성이 골을 넣으며 팀의 4-0 승리를 이끌자 인터밀란전에 나설 스쿼드를 짜기가 어려워진 것이죠. 퍼거슨 감독은 풀럼전 종료 후 AFP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테베즈는 두 번의 환상적인 골을 넣었다"고 전제한 뒤 "나의 걱정은 인터밀란전 선발 라인업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다. 월드클래스급 선수를 빼야 하는 상황이니까"라며 1차전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선수들 중 일부가 2차전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할 것임을 암시했습니다.

그런데 2차전 선발 출장이 불투명했던 테베즈-루니-박지성은 풀럼전에서 골을 넣으며 퍼거슨 감독의 2차전 계획을 어렵게 했습니다. 풀럼전에서 선발 투입되지 않았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와 18인 엔트리에 없었던 루이스 나니는 2차전 선발 출장이 유력했던 선수들이지만 테베즈-루니-박지성의 풀럼전 활약에 가려 인터밀란전에서 벤치를 지킬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퍼거슨 감독으로서는 누구를 선발 출장시키고 또 누구를 조커로 활용해야 할지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올 시즌 베르바토프에 의해 주전 경쟁에서 밀리던 테베즈는 풀럼전에서 두 골을 넣었고 1차전에서 후반 37분에 교체 투입되었던 루니도 풀럼전에서 골을 기록했습니다. 2차전은 골을 넣어 이겨야 하는 경기인 만큼 박지성보다 공격 포인트가 많은 나니를 기용할 의도가 짙었지만(나니는 칼링컵, FA컵 단골 출전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최근 4경기 중에 3경기에서 공격 포인트(1골 2도움)를 기록하며 자신에게 가장 부족한 것을 채웠습니다. 1차전에서 더글라스 마이콘의 발을 묶는 맹활약을 펼친 것 역시 이점이 될 수 있겠지만 문제는 퍼거슨 감독 입장에서 나니의 활용 빈도가 약해지는 점이 고민이 될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의 고민은 선발 라인업 뿐만이 아닙니다. 수비의 중심 축인 리오 퍼디난드가 풀럼과의 전반전 도중 바비 자모라의 태클에 걸려 발목 부상으로 교체된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경기 종료 후 "퍼디난드가 부상에서 회복해 인터밀란전에 출전할 수 있길 바란다"며 다음 경기에 투입되기를 바랬지만 퍼디난드가 2차전에 투입될지는 의문입니다. 현재로서는 인터밀란전에 무리하게 출전하지 않고 14일 리버풀전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지만, 1차전 무실점 주역이었던 그를 빼기에는 리스크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맨유가 인터밀란을 꺾고 8강에 진출하려면 상대팀에게 단 한번의 실점이라도 헌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퍼디난드가 결장한다는 전제하에 '비디치-에반스' 콤비가 '즐라탄-아드리아누' 투톱과의 정면 대결에서 우세를 점해야 하지만 문제는 인터밀란 공격의 에이스인 즐라탄의 감각적인 발을 어떻게 묶느냐 입니다. 1차전에서는 퍼디난드가 수비 라인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즐라탄을 꽁꽁 견제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비디치의 활동 반경이 그리 넓은 선수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럴 경우 비디치-아드리아누, 에반스-즐라탄의 매치업을 고려할 수 있겠지만, 아직 유럽 무대 경험이 부족한 에반스가 즐라탄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저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맨유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즐라탄이 최근 허벅지 부상 여파로 컨디션이 완전치 않다는 것이죠.

공격에서는 베르바토프의 활용 문제가 될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은 1차전에서 미드필더진의 우세를 점하기 위해 라이언 긱스를 처진 공격수로 놓고 베르바토프를 최전방에 배치하는 4-4-1-1 포메이션으로 중원을 두껍게 했습니다. 하지만 긱스가 캐릭-플래처-박지성에게 활발한 패스를 연결하다보니 베르바토프의 최전방 고립이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다 보니 베르바토프는 2선에서 이렇다할 골 기회를 얻지 못하면서 상대 수비진의 허를 찌르는 날카로움이 부족했고 이는 맨유가 1차전에서 무득점에 그쳤던 문제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지난 풀럼전에 결장했기 때문에 인터밀란전에 선발 출전할 가능성이 큽니다. 문제는 베르바토프를 활용하는 퍼거슨 감독의 고민일 것입니다. 베르바토프를 1차전에 이어 이번에도 원톱으로 놓을지, 아니면 베르바토프의 짝으로 루니와 테베즈 중에 누구를 기용할지, 이도 저도 아니면 베르바토프를 또 제외시키고 '루니-테베즈' 투톱을 2차전에 그대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인터밀란전은 골을 넣으며 이겨야 하는 경기인 만큼 최적의 공격 전술이 요구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니면 지난 1차전에 이어 2차전에서도 긱스가 처진 공격수로 나올 공산이 있으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공격수로 배치하는 변칙 기용 가능성 또한 없지 않습니다. 이래 저래 퍼거슨 감독의 머릿속이 골치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마지막 고민은 호날두의 챔피언스리그 골 부진일 것입니다. 호날두는 지난 시즌 11경기에서 8골을 넣으며 퍼거슨 감독에게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선사했지만 올 시즌에는 6경기 470분 동안 39개의 슈팅을 날렸음에도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12.05분 동안 1개의 슈팅을 날렸고 25번의 슛이 골문 안쪽으로 향했음에도 아직까지 골을 넣지 못했다는 것은 '인터밀란 격파'를 벼르는 퍼거슨 감독에게 걱정거리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호날두가 지난 시즌 만큼의 득점포를 퍼붓지 못하더라도 맨유의 공격은 여전히 그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이러한 골 부진이 아쉬울 수 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호날두를 풀럼전 18인 엔트리에 제외시켜 인터밀란전을 위한 휴식을 제공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경기를 치렀던 호날두에게는 꿀맛같은 휴식이 되었을 것입니다. 맨유가 인터밀란을 꺾으려면 호날두의 득점포가 전제되어야 하는 만큼, 호날두가 퍼거슨 감독의 기대에 부응할지 주목됩니다.

퍼거슨 감독은 지난 4일 <타임즈>와의 인터뷰를 통해 "올 시즌 맨유의 스쿼드는 1999년 트레블을 달성했던 스쿼드보다 강하다"며 올 시즌 트레블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거라 확신했습니다. 그 꿈을 이루려면 이번 인터밀란과의 2차전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문제는 퍼거슨 감독에게 놓여있는 고민들이 여럿 있다는 점입니다. 맨유에서 23년 동안 장기집권한 퍼거슨 감독이 '맨유 킬러' 무리뉴 감독을 상대로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 벌써부터 2차전 경기가 두근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