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골은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기록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웨인 루니가 최전방에서 여러차례 위협적인 골 기회를 만들더니 동점골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가 골을 넣는데 결정적 시발점 역할을 했던 선수가 바로 '산소 탱크'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니다. 팀 내에서 가장 이타적인 활약으로 동료 선수들의 골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 그의 공격 본능이 뉴캐슬전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박지성은 5일 오전 4시 45분(이하 한국시간)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서 열린 뉴캐슬과의 프리미어리그 28라운드 원정 경기에 선발 출장해 1도움을 기록하며 맨유의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이날 팀의 오른쪽 윙어로 뛰었던 박지성은 전반 40분까지만 하더라도 뉴캐슬 왼쪽 윙어 구티에레즈 요나스의 측면 돌파를 봉쇄하는데 주력했지만 그 이후 상대팀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시점에서 활발히 상대 문전을 넘나들며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뛰어 다녔습니다.
특히 맨유가 넣은 두 골이 박지성의 발에서 시작되었던 것은 '박지성 경기를 보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박지성은 전반 19분 오른쪽 측면에서 존 오셰이와 2-1 패스를 주고 받았고, 오셰이가 문전으로 달려들던 루니에게 대각선 패스를 연결하면서 루니의 터닝 동점골이 터졌습니다. 후반 11분에는 상대 수비수의 수비 실수 과정에서 공을 빼앗으면서 문전쪽으로 빠르게 치고 들어가던 사이에 베르바토프에게 패스를 연결하여 역전골을 이끌어내는 도움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골 까지 넣을 뻔했습니다. 전반 44분 문전으로 치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파트리스 에브라의 크로스를 받아 오른발 다이렉트 슈팅을 날렸지만 공은 자신의 전방 5m 앞에 있던 루니의 몸을 맞고 나왔습니다. 만약 루니가 없었으면 박지성의 맨유 통산 10호골이 작렬할 수 있었지만 또 다시 아홉수 불운을 떨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두 번의 결정적인 패스 장면으로 맨유의 골을 이끌었던 것 만으로도 팀 승리의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임엔 틀림이 없습니다.
그동안 제가 맨유 경기를 보면서 느낀것은, 최근 박지성의 역할은 골을 넣는 임무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박지성은 지난해 11월 8일 아스날전부터 12월 30일 미들즈브러전까지 10경기에서 24개의 슈팅(유효슛 10개)을 기록했지만 지난 1월 11일 첼시전부터 2월 24일 인터밀란전까지 7경기에서 5개의 슈팅(유효슛 3개)에 그쳤습니다. 미들즈브러전 까지만 하더라도 상대팀 문전으로 달려들며 슈팅을 노리는 장면들이 잦았지만 첼시전 이후로는 그런 장면을 보기가 드물었습니다.
물론 미들즈브러전에서 6개의 슈팅을 놓친 원인도 있었지만(당시 호날두는 10개, 팀은 34개) 그 이후부터는 미드필더진에서 궃은 역할을 다하는 모습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골을 넣지 못했기 때문에 골 넣는 역할을 도맡는 것 보다는 동료 선수들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이타적인 활약에 치중하는 것이 오랫동안 맨유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경쟁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골을 못넣는다고 해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장과 같은 자극제는 없었습니다. 지난 1일 칼링컵 결승전은 체력 안배 차원에 의한 결장이었고요.
박지성의 진가는 강팀과의 경기에서 더 빛났습니다. 리오넬 메시와 조세 보싱와, 더글라스 마이콘 등과 같은 세계 축구를 주름잡는 선수들의 공격력을 철저히 봉쇄하는 끈끈한 수비를 앞세워 맨유 전력에 적지 않은 도움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입니다. 비단 수비 뿐만은 아닙니다. 상대팀 페널티박스 부근에서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간결하고 빠른 패스로 여러차례 결정적인 상황을 연출하며 상대 수비진을 긴장 시켰습니다.
물론 골을 못넣는다고 해서 공격 마무리가 약하다는 지적은 맞는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박지성은 골을 넣는 역할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퍼거슨 감독도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이타적인 활약에 힘을 실어주며 여전히 주전 선수로 기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달 19일 풀럼전에 이어 이번 뉴캐슬전에서도 도움을 기록한 것은 골 보다 더 값진 의미를 지닌 것입니다. 비록 골은 못넣더라도 동료 선수들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아낌없이 헌신을 다하는 그의 공격 결정체는 '도움'이 아닐런지요.
축구팬들은 흔히 PSV 에인트호벤 시절의 박지성과 맨유에서의 박지성을 비교합니다. 두 선수 모두 동일인물이겠지만, 팀 내에서의 역할은 서로 다릅니다. 전자격에 속하는 선수는 4-3-3의 왼쪽 윙 포워드로서 동료 선수들의 골을 돕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골을 넣으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면 후자격에 속하는 선수는 팀 플레이를 위주로 이타적인 활약에 치중을 하는 선수입니다. 물론 박지성의 에인트호벤 시절 공격력이 더 빛날 수 있었던 것은 네덜란드리그가 상위와 하위 클럽의 격차가 심할 정도로 전력적인 기복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폰소 알베스(미들즈브러) 디르크 카윗(리버풀) 마테아 케즈만(파리 생제르망) 같은 네덜란드 리그에서 출중한 득점력을 뽐냈던 선수들이 빅 리그에서 많은 골을 넣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죠.
하지만 맨유에서의 박지성이 더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에인트호벤 시절의 공격력이 아닌 '자신의 숨겨진 무기'인 팀 플레이 정신이 누구보다 강했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호날두와 나니처럼 골을 잘 넣는 윙어가 아닌데다 개인기량 또한 특출나게 뛰어난 선수가 아닙니다. 팀 플레이보다 에인트호벤 시절의 공격력을 앞세워 올드 트래포드 그라운드를 밟았다면 그는 맨유에서 철저하게 실패했을 것입니다.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감독인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영입하려던 이유도 AC밀란전 골 장면 하나 때문이 아니라 맨유 전술을 최대화 시킬 수 있는 최적의 선수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명장의 '눈'은 다른 누구보다 이렇게 다른겁니다.
박지성의 스승인 이학종 수원공고 감독은 지난해 12월 20일 <조이뉴스 24>와의 인터뷰에서 "박지성이 개인 능력에서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를 얼마나 잘해요. 지성이에게는 그런 것을 활용할 수 있는 머리가 있어요"라며 박지성이 맨유의 주전 선수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팀 플레이로 꼽았습니다. 최근 박지성이 도움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결정적 원동력 또한 도움이었고요. 자기 자신이 아닌 팀을 위해 뛰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며 반면 우리들에게 '박지성 경쟁자'로 꼽히는 루이스 나니는 박지성보다 더 좋은 공격 본능을 자랑하면서도 맨유의 벤치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물론 박지성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눈'도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박지성이 스쿼드 플레이어였던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경기에 출전했는지 안했는지 혹은 선발로 나왔는지 교체로 나왔는지에 초점을 두었다면 올 시즌에는 골을 넣었는지 못 넣었는지를 주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박지성은 골과는 전혀 무관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이제는 맨유의 확고한 주전 선수이기 때문에 얼마만큼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발휘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할 시기가 온게 아닌가 싶습니다.
박지성으로서도 자신의 기량 발전을 위해 더 이상 멈춰서는 안될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골을 넣어야 한다는 임무를 맡았을때는 반드시 골을 넣어야 하며 특유의 이타적인 경기력을 계속 이어가야 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팀에서 원하는 경기력에 모든 사활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죠. 항상 성실하고 착실한 모습으로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얻었던 박지성의 "맨유에서 오랫동안 남고 싶다"는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팀을 위해 열심히 뛰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