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경기를 즐겨보시는 분들 중에서는 박지성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대한 비교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박지성은 띄엄띄엄 출전하는데 호날두는 왜 맨날 나오냐?'는 것이 그 요지죠. 이것은 박지성의 입지 논쟁으로 이어졌고 '박지성<나니', '벤치성'이라는 비하 용어까지 등장한 발단이 되었습니다.
두 선수는 맨유의 주전 선수가 맞습니다. 박지성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에 의해 중요한 경기를 위주로 모습을 드러내는 주전 선수이며 호날두는 입지에 흔들릴 기색이 없는 선수입니다. 그런데 후자 격에 선수들은 맨유에서 7명 뿐입니다. 호날두와 웨인 루니, 리오 퍼디난드, 네마냐 비디치, 파트리스 에브라, 에드윈 판 데 사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그들이지만 올 시즌 거의 매 경기에 출장했던 선수는 호날두와 비디치 뿐입니다. 하지만 비디치가 다른 포지션에 비해 체력 소모가 적은 센터백을 맡는데다 가만히 서 있는 시간이 적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때 호날두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더욱이 호날두를 제외하면 미드필더진 내에서 거의 매 경기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없습니다. 맨유가 다른 팀들보다 더 많이 뛰는 대표적인 팀이자 미드필더가 선수들의 엄청난 활동량과 강철 같은 체력이 필요한 곳임을 감안할때 호날두의 체력이 다른 누구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프리미어리그는 쉴세없는 빠른 템포의 공격력으로 그라운드를 활발히 휘저어야 살아남는 곳이어서 호날두의 체력은 리그에서도 톱클래스 수준입니다.
물론 박지성과 호날두는 체력이 강점인 선수들이지만, 박지성은 한 경기를 뛸 때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 선수라면 호날두는 박지성만큼의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발휘하며 거의 매 경기에 선발 출장하는 유형입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유럽 진출 이후 온갖 부상에 시달리며 부침을 겪었을 뿐더러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렸습니다. 반면 호날두는 지난해 6월 독일 월드컵 무릎 부상을 제외하면 이렇다할 큰 부상이 없었습니다. 잔부상이 여럿 있었지만 빠른 시일내에 회복하여 다음 경기에 모습을 드러낼 만큼 경이로운 '내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큰 부상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은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호날두의 체력에 대하여 더 놀라운 것은,120분 뛰어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호날두는 지난달 25일 인터밀란 원정에서 90분 풀타임 출장하여 오른쪽 측면과 중앙을 부지런히 누비며 팀 공격을 주도했습니다. 후반 막판까지 다비데 산톤을 등지는 드리블 돌파로 동료 선수의 골 기회를 돕는 등 전혀 지친 기색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그런 체력 적인 부담을 안고 지난 1일 토트넘과의 칼링컵 결승전에서 120분 뛰었지만 후반 막판과 연장전까지 문전에서의 부지런한 움직임과 감각적인 개인기를 앞세워 상대 수비수들을 하나 둘 씩 요리했습니다. 승부차기에서는 팀의 세번째 키커로 골을 성공시켜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니 팀 내에서 가장 체력이 좋은 선수라고 치켜 세워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올 시즌 호날두는 클럽 월드컵을 비롯 맨유에서만 37경기를 뛰었으며 그 중 33경기가 선발 출전 경기였습니다. 시즌 초반 무릎 부상으로 한달 동안 빠졌던 것을 감안하면 '과다 출전'이라는 비유를 할 만큼 많은 경기에 모습을 내밀고 있습니다. 여기에 포르투갈 대표팀의 A매치 경기까지 소화하고 있어 엄청난 체력 소모에 시달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지친 기색 없이 그라운드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리그 12경기를 남긴데다 맨유가 챔피언스리그와 FA컵 토너먼트 결승까지 진출할 경우 최대 58경기를 뛰게 됩니다. 퍼거슨 감독의 로테이션 시스템에 의해 몇몇 경기를 뛰지 않더라도 50경기 이상 출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48경기 뛰었던 지난 시즌보다 더 많이 뛰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호날두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에는 '혹사'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퍼거슨 감독은 20여명의 선수들을 많은 경기에 골고루 투입시키는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으로 선수들의 무리한 출전을 방지하고 있지만 호날두 만큼은 예외였습니다. 강팀과 약팀, 중요한 대회와 중요하지 않은 대회에 관계없이 거의 매 경기에 내보내고 있습니다. 제자가 지난해 6월에 당했던 무릎 부상 후유증을 떨칠 수 있도록 많은 경기에 출전시키고 있지만 '혹사시키고 있다'는 외부의 우려를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호날두의 체력에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오랫동안 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좀 더 두고 볼 일 입니다.
혹사라 표현될 만큼, 호날두의 출전이 많을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맨유의 공격력과 연관이 깊다는 점입니다. 올 시즌 맨유에서는 팀 내에서 꾸준히 골을 넣었던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루니는 잦은 부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카를로스 테베즈는 리그 20경기 3골에 그쳐 극심한 골 부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시즌 중반부터 골 감각이 살아났지만 토트넘 시절에 그랬던 것 처럼 전형적인 슬로우 스타터입니다. 물론 경기 상황마다 기복이 심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죠. 호날두를 제외한 미드필더 중에서 가장 높은 공격 포인트를 자랑하는 루이스 나니는 퍼거슨 감독의 믿음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맨유 공격력에서 기댈 것은 호날두 단 한명이지만 문제는 자신 조차도 지난 시즌에 비해 많은 골을 넣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호날두는 여전히 맨유의 공격을 주도하고 있지만 자신의 '주무기'인 골을 넣는 능력이 약해졌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호날두는 지난 시즌 리그 34경기에서 31골을 넣었지만 올 시즌에는 23경기에서 12골에 그치고 있습니다.
챔피언스리그는 더 심각합니다. 지난 시즌 11경기에서 8골을 넣었지만 올해는 6경기 470분 동안 39개의 슈팅을 날렸음에도 단 한 골도 넣지 못했습니다. 12.05분 동안 1개의 슈팅을 날렸고 25번의 슛이 골문 안쪽으로 향했지만 아직까지 골 기록이 없었다는 것은 '지나친 경기 출전으로 골 감각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호날두가 혹사당하고 있다는 말이 결코 틀린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호날두가 앞으로 많은 경기에 뛸 수 있도록 체력을 안배할 수 있는 것이 감독의 의무겠지만 문제는 호날두 없는 맨유의 공격력은 나사 없는 톱니바퀴에 비유될 만큼 공격의 구심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퍼거슨 감독에게는 머리가 골치 아픈 일이지요.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호날두의 체력이 다른 누구보다 월등하다는 것입니다. 비록 올 시즌에는 지난 시즌 만큼의 킬러 본능을 뽐내지 못하고 있지만 거의 매 경기에 모습을 내밀며 팀의 공격을 활발히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축구 천재'라고 치켜 세울 수 있는 선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퍼거슨 감독이 호날두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을 강력하게 반대할 만큼 마치 아들처럼 아끼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호날두의 '진정한' 주무기는 골이 아닌 체력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