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보배' 박주영(24, AS모나코)이 축구의 본고장인 유럽 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팀의 주전 선수로서 열심히 뛰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팀의 전력에서 구심점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듯한 느낌이 강했습니다. 물론 골을 넣기 힘들기로 유명한 프랑스리그에서는 아직 덜 여문듯한 모습입니다.
박주영은 23일 오전 4시 50분(이하 한국시간) 릴 메트로폴 스타디움에서 열린 릴과의 2008/09시즌 프랑스리그 25라운드 경기에 선발 출장했지만 팀은 1-2로 패했습니다. 모나코는 릴전 패배로 최근 9경기에서 1승3무5패의 총체적 부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풀타임 출장, 혹은 후반 막판 교체가 많았던 박주영은 결국 후반 16분이라는 이른 시간대에 세르지 각페와 교체되어 공격수로서의 제 몫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번 경기에서는 박주영의 진면목이 드러나야 했습니다. 히카르두 고메스 감독이 팀 공격의 중심인 알렉산드레 리카타를 대신해서 '피노-박주영' 투톱을 가동했던 것은, 리카타의 짝으로 둘 중에 어느 선수를 쓸지 가리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후안 파블로 피노는 릴전을 포함, 최근 리그 7경기 연속 선발 출장하여 3경기 연속골(2008년 12월 13일 발렌시엔네스전~2009년 1월 18일 캉전)을 넣는 등 주전급 선수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박주영은 릴전 이전에 가진 2경기에서 오른쪽 윙어로 활약하는 등 팀의 공격수 경쟁에서 밀리는 인상을 비춰졌습니다. 자신의 입지가 점점 밀려가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번 경기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골 기회를 충분히 살렸어야 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박주영이 골을 넣을 수 있는 두 번의 결정적 상황을 놓친 것이었습니다. 경기 시작 후 29초 만에 아크 왼쪽에서 2선으로부터 받은 전진패스로 상대 골키퍼와 경합 과정에서 슈팅을 날렸지만 공은 골키퍼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전반 17분에는 문전 정면에서 미드필더진의 롱패스를 받자마자 재치있게 오른발 다이렉트슛을 날렸지만 공은 골대 바깥을 스치고 말았습니다. 둘 중에 하나라도 골로 들어갔다면 분명 자신과 팀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었는데 끝내 골이 따르지 못했습니다. 이 경기를 중계했던 한준희 KBS 해설위원이 지적한 것 처럼, 두 번의 슛 기회를 놓쳤던 것이 이른 시간에 교체되는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대목에서, 박주영이 유럽에서 고전하고 있는 문제점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박주영은 지난해 11월 2일 르 하브르전에서 시즌 2호골을 터뜨린 이후 3개월 20여일 동안 극심한 골 침묵에 빠진 상황입니다. 현재 리그 10경기 연속 무득점에 빠져, 특유의 킬러 본능을 내뿜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주영이 그동안 쌓았던 이름값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활약상입니다만, '골 넣기 힘든' 프랑스 리그에 완벽히 적응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박주영의 슈팅이 이전보다 줄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9월 13일 로리앙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한 이후부터 시즌 2호골을 넣었던 르 하브르전까지 리그 8경기 2골을 비롯 22개의 슈팅을 날렸지만 그 이후에 가진 리그 10경기에서는 노골은 물론 11개의 슈팅에 그쳤습니다. 입단 초기에 비해 절반이나 슈팅 횟수가 줄어든 것입니다. 공격수가 골을 잘 넣으려면 많은 슈팅들을 날리면서 골 감각을 키워야 하지만 박주영에게는 상대의 허를 찌르는 슈팅 기회부터 부족했던 겁니다. 물론 이번 경기 이전에 가진 2경기에서 오른쪽 윙어로 뛰었지만, 공격수로 출전한 경기가 훨씬 많았기 때문에 '공격수=골'의 관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문제는 박주영의 10경기 연속 무득점이, 박주영 본인만의 문제 보다는 팀 전술이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우선, 이날 박주영과 투톱 파트너를 맡은 피노는 모나코 선수 중에서 가장 위협적인 드리블 능력과 동료 선수들을 활용하는 움직임이 뛰어난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릴전에서는 2선에서 공을 잡으면 무조건 전방으로 치고 들어가는 '무모한' 드리블을 구사하여 근처에서 골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던 박주영에게 패스를 하지 않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이는 박주영이 최전방에서 고립되는 것은 물론 슈팅 기회를 얻기 어려운 문제점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피노는 전반 중반부터 상대팀 선수들에게 쉽게 공을 빼앗기더니 전반 41분 질책성 교체 되었습니다.(한 가지 첨언하자면, 박주영과 피노는 팀 내에서 친하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박지성과 테베즈의 관계와 흡사한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드필더진과 공격수 사이의 공간이 넓다보니, 박주영의 고립은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현재 모나코 미드필더진에서 감각적인 경기 전개와 절호의 공격 기회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좋은 선수가 없기 때문에 경기를 주도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이렇다보니 모나코의 공격은 단조로운 패턴을 일관하고 있으며 한때 박주영이 오른쪽 윙어로 활약했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물론 실패로 끝났지만) 미드필더진의 경기 능력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의심스러운 것은 히카르두 감독의 공격 전술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한 미드필더들은 박주영을 향해 여러차례 롱패스를 연결했지만, 이것은 '타겟맨이 아닌' 박주영의 공격력을 살리지 못하는 불필요한 공격 전개였습니다. 더욱이 박주영은 전반 8분과 10분, 29분에 상대팀 수비수와의 몸싸움 과정에서 밀리며 공격 기회를 잃었습니다.(후반전에는 모나코 진영에서 수비에 깊게 가담한 시간이 많았죠.) 그런데 세 장면 모두 미드필더진의 롱패스를 머리로 받는 과정에서 밀려 넘어진 것이더군요. 포스트 플레이와 몸싸움에 약점이 있는 박주영이 문전에서 고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롱패스가 나올 수 밖에 없던 또 다른 이유는 미드필더진이 상대 중원의 압박에 밀리는 상황에서 속출한 것이지요.
결국 미드필더진의 경기력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박주영이 국내 팬들의 기대속에 많은 골을 넣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예전의 박주영이라면 혼자서 충분히 골을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그동안의 부진 및 부상으로 부침에 겪였기 때문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킬러 본능이 무뎌지고 말았습니다. 더욱이 그가 서 있는 곳이 'K리그보다 레벨 높은' 프랑스 무대이기 때문에 그동안 부딪혔던 수비수들보다 더 강한 상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드필더진의 공격 지원이 좋지 않다는 것은 자신의 활약을 힘들게 하는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의 골 부진을 무조건 미드필더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리입니다. 10경기 동안 골을 못넣었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공격수로서의 임무를 충분히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한준희 해설위원이 전반 막판에 "박주영이 넓은 활동폭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것 처럼 골을 넣기 위해, 동료 선수들의 공격 기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야 미드필더진과의 간격을 어느 정도 좁힐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공격 기회를 얻으며 자신의 골을 빗어내거나 문전으로 침투하는 동료 선수에게 절호의 골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슈팅 횟수에 대한 소극적인 마음을 버리고 좀 더 많은 슈팅을 날리며 골을 얻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박주영의 프랑스리그 적응은, 우리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더디게 진행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럴 수록 박주영이 자신의 긍정적인 존재감을 어필하기 위해 뭔가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10경기 연속 무득점이 앞으로 유럽 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칠 수 있는 '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