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KFA)의 갑작스러운 2018-2022년 월드컵 단독 유치 신청이 뜨거운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한국 축구의 재도약을 위해서인지, 한국 경제의 발전인지, 월드컵 유치를 신청한 일본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조중연 신임 회장의 전시행정인지 월드컵 유치 의사를 놓고 여론에서 여러가지 말들이 오가고 있습니다.
월드컵 유치 자체가 기쁜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는 단 한번도 월드컵 유치 계획을 밝힌적이 없었을 뿐더러 구체적인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조중연 회장은 3일 기자회견에서 "월드컵 유치 의사 표명을 정부와 논의할 단계는 아니다. 어제 국제축구연맹(FIFA)에 유치 의사를 전한 뒤 정부 정책과장과 통화했다.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며 정부의 동의가 부족했다는 외부의 비판에 이 같이 대응했지만 여론을 달래기에는 뭔가 부족한 여운이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대한축구협회의 월드컵 유치 의사는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2020년 부산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지자체와의 마찰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두 올림픽 대회 유치전에 뛰어든 상황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를 조율해야 합니다. 평창과 부산이 올림픽 유치를 고수할 경우 월드컵 유치는 성공보다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클 뿐더러 명분마저 잃게 됩니다. 평창과 부산 모두 올림픽 유치에 강력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어서 '삼자 합의'가 필요하거나 두 올림픽과 월드컵 중에 하나를 포기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에 조 회장은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문제이며 월드컵은 FIFA가 결정할 일이다. 올림픽과 월드컵은 전혀 다른 기관으로 마찰이 없을 것이다. 월드컵 유치 신청 자체 만으로 국민들을 신나게 할 것이다"며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월드컵-올림픽 개최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시각입니다. 굳이 한국이 월드컵 유치 신청을 하지 않더라도 IOC가 2년 사이에 열리는 평창 올림픽과 부산 올림픽을 한국에 밀어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월드컵이 대열에 포함되어도 상황은 마찬가지 입니다.
이러한 요소 때문에, 평창과 부산은 지난해부터 올림픽 유치를 두고 열띤 '힘겨루기'를 벌였는데요. 김진선 강원도지사는 지난해 9월 9일 한나라당 정책협의회에서 "두 대회는 개최지 결정시기가 2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개최지가 먼저 결정되는 동계올림픽부터 순차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반면에 허남식 부산시장은 지난해 9월 25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평창이 두번의 올림픽 도전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이제는 부산이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국에는 이렇다할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서 평창과 부산 모두 올림픽 유치전에 뛰어 들었습니다.
현재 평창과 부산은 올림픽 유치에 대한 의지가 확고합니다. 평창은 2010, 2014년 동계 올림픽 유치전에서 벤쿠버(캐나다) 소치(러시아)에 아쉽게 패했기 때문에 3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동계 올림픽이 1998년 일본 나가노 이후 20년 동안 개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평창의 올림픽 유치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반면 부산은 2002년 아시안게임의 성공적 유치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했던 한국의 제2도시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올림픽 개최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며 이미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에서 물밑 유치전을 벌였습니다.
비단 올림픽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국은 2011년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2012년 여수 세계 박람회,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등 거대한 국제적인 행사들을 치러야 합니다. 이미 평창, 부산 올림픽 유치 준비를 하고 있는데다 월드컵까지 유치할 경우 국제 사회가 이를 좋게 바라보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2001년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김운용 전 대한체육회장은 신임 IOC 위원장 선거에서 구미 연합세력 지지를 얻은 자크 로게 현 IOC 위원장에게 패했습니다. 그 해 중국 베이징이 200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가 되면서 '아시아에게 2개의 선물을 줄 수 없다'는 서구 여론의 주장이 로게에게 큰 힘을 실어줬던 것입니다.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사마란치도 베이징이 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더니 로게를 지지했었죠.
물론 대한민국이 월드컵, 올림픽 유치를 많이 한다는 것은 '욕심 같아서는' 좋은일이 될 것입니다. 국가 산업 및 이미지 향상에 막대한 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이외의 여러 국가들이 유치전에 뛰어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 사회는 냉정합니다. 월드컵, 올림픽 유치전 때마다 대륙별 순환 개최원칙-분배 개최 원칙의 룰이 존재했던 것은(월드컵 같은 경우에는 순환 개최원칙이 폐기되었죠.) 어느 한쪽이 많은 대회를 유치하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대륙및 국가들의 참여를 늘리겠다는 의도입니다.
따라서 대한축구협회의 월드컵 개최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올림픽과의 교통정리가 불가피합니다. 다행히 월드컵 유치 공식 신청 기한이 내년 5월까지이기 때문에 시간은 많습니다. 올해 10월에는 2016년 일본 도쿄 하계 올림픽 개최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것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할 전망입니다. 만약 세개의 대회 중에 한 개가 포기하면 나머지 두 대회의 유치가 탄력을 얻는 것이며 세 대회 중에 어느 한쪽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혹시 있을지 모를' 국제 사회의 비판을 정면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기 때문에 2018-2022년 월드컵 유치전에서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밀릴 가능성이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올림픽 입니다. 앞으로 '월드컵이 우선이냐? 올림픽이 우선이냐?'를 놓고 많은 말들이 오갈것임에는 틀림없지만, 분명한 것은 대한축구협회의 월드컵 유치 결정이 섣부른게 아니냐는 씁쓸함이 듭니다. 월드컵 유치가 축구팬 그리고 국민적인 명분을 얻으려면 올림픽과의 조율은 꼭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