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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결장, 오히려 잘 된 이유는?


 "볼튼은 매우 강한 팀이고 매우 중요한 경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박지성, 대런 플래처, 안데르손이 볼튼전에 출장한다. 이들을 활용해 위건전과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하겠다"

알렉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감독은 지난 15일 위건전이 끝난 뒤 박지성을 볼튼전 승리를 이끌 카드로 낙점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유독 볼튼전에 강했던 박지성의 맹활약을 앞세워 리그 선두로 올라서겠다는 의도였죠.

이러한 퍼거슨 감독 발언에 기대한 쪽은 다름 아닌 국내 축구팬들입니다. 박지성이 2007년 3월 17일 볼튼전에서 두 골을 넣어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 볼튼전에서 그의 시즌 2호골을 기대했던 것이죠. 지난해 9월 28일 볼튼전에서는 특유의 폭발적인 활동량으로 동료 선수들의 공격 영역을 만드는 공헌을 하며 팀의 2-0 승리와 함께 시즌 첫 풀타임 출장했죠.

그런데 뚜껑을 열어봤더니 박지성의 이름은 볼튼전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박지성의 선발 출장을 기정 사실화했던 국내 언론과 축구팬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죠. 그러더니 볼튼전에서 결장하여 출장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습니다. 새벽까지 TV와 컴퓨터 앞에 앉은 많은 축구팬들은 그의 결장에 실망했습니다.

최근 좋은 활약으로 맨유의 리그 9경기 무패행진(볼튼전 이전)을 이끌었던 박지성이 선발이 아닌 후보 명단에 포함되면서 팬들의 반응은 퍼거슨 감독에 대한 비난의 눈초리를 보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결장의 후유증이 아물지 않았으니까요. 팬들은 '퍼거슨 감독이 이번에도 한국팬들을 상대로 낚시질을 했다'는 반응을 비롯 '퍼거슨 감독에게 또 배신감을 느낀다'며 충격적인 반응을 인터넷 축구 커뮤니티에 올리며 분노를 삼켰습니다.

결국 박지성은 볼튼전 결장으로 팀의 1-0 승리를 벤치에서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팬들은 맨유의 승리를 기뻐하기보다 박지성 결장에 충격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박지성 결장, 칼링컵 선발 출장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나무'만을 보지 말고 '숲'까지 바라봐야 합니다. 맨유의 다음 경기가 칼링컵 4강 2차전인 더비 카운티전(21일, 맨유 홈)이기 때문이죠. 물론 볼튼은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팀이고 더비 카운티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소 승점 기록으로 망신 당하며 챔피언십리그로 강등되었다는 점에서 볼튼이 더 강한 팀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리그 경기와 칼링컵 4강 2차전의 비중은 하늘과 땅 처럼 엇갈립니다. 맨유가 볼튼전 이후에 갖는 리그 경기는 아직 17경기 남았지만 칼링컵 4강 2차전은 맨유의 결승 진출 여부가 갈린 중요한 경기입니다. 맨유는 지난 8일 더비 카운티와의 원정 경기에서 90분 동안 졸전을 펼치다 0-1로 패하는 망신을 당했습니다. 2차전에서 더비 카운티를 두 골 차이로 제압해야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2차전에서는 모든 것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볼튼전에서 비기거나 패하더라도 다음 리그 경기에서 승리하면 승점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볼튼전에 대한 중요성은 거의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볼튼은 맨유전 이전까지 리그 3연패로 고전한데다 지난 3경기에서 골이 없기 때문에 '박지성 결장에서 드러났던 것처럼' 맨유가 볼튼전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퍼거슨 감독에게도 더비 카운티전은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1차전에서 챔피언십리그팀에게 패한 것도 망신이었지만 2차전에서도 기대 이하의 결과를 낸다면 맨유의 시즌 후반 판도에 적지 않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2차전은 반드시 두 골 차이로 이겨야 하는 만큼 '활동량 많은' 박지성의 체력을 아꼈던 것이죠. 그래서 박지성의 볼튼전 출장이 더비 카운티전으로 수정되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물론 박지성의 더비 카운티전 선발 출장이 이뤄질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박지성의 입지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시절과 다른데다 올 시즌 팀의 완전한 주전 자리를 굳혔기 때문에 더비 카운티전 선발 라인업에 포함될 가능성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욱이 더비 카운티전에서 박지성의 중요성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맨유는 웨인 루니가 엉덩이 부상으로 3~4주간 전력에서 이탈하고 호날두-테베즈-나니는 슬럼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는 아직 토트넘 시절의 '포스'를 되찾지 못했고 대런 플래처가 볼튼전에서 질책성 교체를 당하는 등 여러명의 공격 옵션들이 불안 요소를 안고 있는데 2경기 휴식한 박지성의 더비 카운티전 비중이 커질 수 밖에 없죠. 최근 맨유 공격패턴은 박지성의 저돌적인 돌파력, 짧고 정확한 스루패스를 통해 공격을 전개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는데 이는 퍼거슨 감독이 더비 카운티전 승리 카드로 박지성을 활용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박지성의 볼튼전 결장은 루이스 나니의 입지가 축소되었음을 나타내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나니는 칼링컵 전 경기에서 선발 출장을 거듭했지만 그는 더비 카운티와의 지난 1차전을 비롯 최근 경기에서 잦은 실수를 범하며 팀 공격에 아무런 보탬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더비 카운티전에 선발 출장하면 나니는 박지성-호날두에 밀려 벤치로 내몰릴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우리는 박지성이 맨유 입단 이후 부상 빈도가 많았다는 것을 인지해야 합니다. 3번의 큰 부상으로 총 1년 2개월 동안 부상과 싸우면서 자신의 진가를 꾸준히 떨치지 못했으니까요. 2년 전에는 9개월 부상 후유증으로 퍼스트 터치까지 불안하여 결장을 거듭했고 긱스-나니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린 듯한 인상까지 주었죠. 더욱이 맨유 선수 중에서 대표적으로 많이 뛰는 선수이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심합니다. 비록 박지성이 2경기를 쉬더라도 이것이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박지성은 지난해 11월 8일 아스날전 이전까지 3경기 연속 결장한 적이 있었습니다. 몇몇 언론을 비롯 일부 축구팬들은 박지성의 이적설까지 거론하며 팀 내 입지가 축소된 것을 아쉬워했지만, 실제로 박지성은 아스날전 맹활약을 위해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죠. 이후 박지성은 아스날전을 비롯 소속팀에서 4경기 연속 선발 출장하여 변함없는 활약을 과시했습니다. 이러한 전례를 비춰볼 때 볼튼전 결장은 팀 내 입지와 아무 관련 없습니다.

물론 '박지성을 볼튼전에 기용하겠다'는 퍼거슨 감독의 발언이 아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칼링컵 4강 2차전 더비 카운티전 '올인'을 위해 전략을 수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경기가 맨유의 칼링컵 결승 진출 여부가 걸린 중요한 일전이기 때문에 박지성의 볼튼전 결장은 오히려 잘된 일인지 모릅니다.
 

By. 효리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