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소치 올림픽이 개막한지 사흘 되었던 지난 10일 한국인 선수의 대회 첫 메달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금메달 기대 종목으로 눈길을 끌었던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와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한국인 선수의 메달 획득이 불발됐다. 쇼트트랙에서는 2011년 러시아로 귀화했던 빅토르 안(한국명 : 안현수)이 동메달을 획득한 것이 위안이었다. 올림픽에서 8년 만에 메달을 얻으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하지만 스피드 스케이팅은 아쉬웠다. 2010 벤쿠버 올림픽 500m 금메달리스트이자 현재 500m 세계 랭킹 1위 모태범이 4위에 만족했다. 1차와 2차 레이스에서 각각 34초 84, 34초 85를 기록했으며 합계 69초 69를 나타냈다. 미첼 뮐데르(69초 312) 요한네스 스미켄스(69초 324) 로날드 뮐데르(69초 46, 이상 네덜란드)에 밀려 메달 획득이 좌절됐다. 이 밖에 이규혁은 18위(70초 65) 김준호는 21위(70초 857) 이강석은 22위(70초 85)를 기록했다.
[사진=소치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 결과 (C) 소치 올림픽 공식 홈페이지 모바일 화면 캡쳐(m.sochi201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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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모태범의 4위와 이규혁의 18위는 값진 성적이다. 모태범부터 살펴보면 69초 69의 성적은 벤쿠버 올림픽에서 69초 82로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보다 0초 13 단축시켰던 기록이다. 스피드 스케이팅이 기록 스포츠라는 점에서 모태범의 활약상은 벤쿠버 올림픽 시절보다 더 좋았다. 단지 네덜란드 3인방이 잘했을 뿐이다. 네덜란드는 남자 5000m에 이어 500m에서도 금은동을 싹쓸이하며 빙상 강국의 위엄을 과시했다. 오래전부터 올림픽에서 스피드 스케이팅에 강했던 기세가 이번 대회에서도 이어졌던 것.
특이하게도 벤쿠버 올림픽 남자 500m에서는 네덜란드 선수의 메달 획득이 불발됐다. 한국의 모태범과 일본의 나가시마 게이치로, 가토 조지 같은 동양인 선수 3인방이 1~3위를 휩쓸었다. 10위권 안에 포함되었던 네덜란드 선수는 얀 스메켄스(6위) 뿐이었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는 네덜란드 선수들이 500m에서 분발했다. 인프라, 선수 육성, 사람들의 관심, 선수들의 우월한 신체 조건 등에 이르기까지 올림픽을 비롯한 국제 무대에서 꾸준히 선전할 수 있는 기반이 튼튼했다. 스피드 스케이팅이 올림픽때 말고는 비인기 종목으로 통하는 한국과 다르다.
모태범의 메달 획득 실패가 아쉬운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박수 받아야 하는 이유는 네덜란드의 선전 속에서도 세계 정상급 기량을 과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4년 전 올림픽보다 기록이 더 좋았던 것을 봐도 혼신의 힘을 다해 500m를 두 번이나 통과했다.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전통적으로 강세를 나타냈던 네덜란드와 대등한 접전을 펼칠 수 있는 대표적인 선수가 모태범임을 우리는 이번 대회를 통해 확인했다. 참고로 네덜란드는 지금까지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총 88개의 메달을 거머쥐었다. 금메달 29개, 은메달 31개, 동메달 28개를 획득했던 것. 한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규혁은 이를 악물면서 500m를 질주했던 장면이 인상 깊었다. 36세의 많은 나이 때문인지 레이스 막판들어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것을 근성으로 극복하려했다. 한국인 선수 사상 첫 올림픽 6회 연속 출전의 저력을 느꼈던 장면이었다. 그의 투혼이 벤쿠버 올림픽에서 모태범과 이승훈, 이상화가 금메달을 따냈던 원동력이 됐다. 후배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었다.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이 앞으로 남은 종목에서 선전할 수 있는 정신적인 토대가 될 것임에 틀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