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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미국 진출, 그의 도전이 빛나는 이유

 

훗날 임창용이 사람들에게 어떤 야구 선수로 회자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승승장구하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여줄지 아니면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이력이 있는 한국인 선수가 될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그의 미국 도전이 빛날 수 밖에 없는 사실 말입니다. 앞날의 경기력을 떠나서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미국으로 진출하며, 미국 마이너리그의 루키 리그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은 끝에 세계 프로야구 최고의 무대로 평가받는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등판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높은 목표를 위해 전진하는 그의 과감한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임창용의 무한도전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사진=임창용 (C) 시카고 컵스 홈페이지]

 

임창용은 8일 밀워키와의 홈 경기에서 7회초에 등판하면서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2/3이닝 동안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했으며 진 세구라를 병살타로 처리하면서 실점 위기를 넘겼습니다. 완벽한 피칭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무실점 경기를 펼친 것이 다행입니다. 앞으로 메이저리그 경기를 지속적으로 경험하면 언젠가 지금보다 더 좋은 구위로 상대 팀 타자를 제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유의 뱀직구로 말입니다.

 

사람들은 임창용 데뷔전에 대하여 경기력보다는 미국 도전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만 37세의 나이에 미국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야구 선수마다 개인차가 있겠으나 30대 후반은 은퇴를 앞두거나 전성기가 떨어지기 쉬운 시점입니다. 그럼에도 임창용은 끝까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는지 모릅니다.

 

임창용이 메이저리그에서 데뷔전을 치르기까지의 스토리는 지금까지 미국에 진출했던 야구 선수와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팀에 입단했던 한국인 선수 대부분은 국내 프로야구를 경험하지 않았던 젊은 유망주 였습니다. 대표적인 성공 케이스가 박찬호와 추신수였죠. 임창용 이전에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를 거쳐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았던 투수는 이상훈과 구대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했을 때의 나이는 각각 29세와 36세 였습니다. 임창용은 37세의 나이에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입성했습니다. 그의 도전이 미국 성공을 꿈꾸었던 한국인 선수들과 달랐습니다.

 

과거의 임창용은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화려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굳이 미국에 진출하지 않아도 한국 또는 일본에서 야구 스타로 각광 받으며 남은 현역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거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마이너리그 생활을 감수하고 마침내 꿈을 이루었죠. 미국 같은 새로운 곳에서 낯선 언어와 날씨, 문화, 야구 스타일 등에 적응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결국에는 빅 리그의 마운드를 밟았습니다.

 

사실, 임창용은 2002년 삼성 라이온즈 시절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습니다. 입찰액이 65만 달러(지금 환율로 치면 약 7억 원)에 그치면서 미국 진출이 불발됐습니다. 입찰액은 선수가 아닌 구단이 받는 금액으로서 삼성이 이적을 허락하기에는 명분이 부족했습니다. 어쩌면 11년 전 실패가 지금의 임창용을 있게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과거가 있었기에 언젠가 그 꿈을 이루겠다는 도전 의식이 강했을 겁니다.

 

임창용의 야구 인생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과감한 도전 없이는 큰 성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임창용이 보여줬죠. 여기서 말하는 과감한 도전은 무모한 도전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임창용은 일본과 미국에서 통할 수 있는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 일본에서 성공했고 최근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이제는 임창용이 메이저리그에서 오랫동안 맹활약 펼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뱀직구로 미국 야구계를 뜨겁게 달구는 활약상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