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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17골 10도움' 지루, 아스널에서 실패했나?

 

2012/13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이적생 중에서 성공과 실패를 단정 짓기 힘든 애매한 타입을 한 명 꼽으라면 올리비에 지루(27, 아스널)다. 지난해 여름 이적료 1,200만 파운드(약 203억 원)를 기록하고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입성했으며 올 시즌 각종 대회를 포함한 46경기에서 17골 10도움 기록했다. 그러나 지루에 대한 축구팬들의 반응은 항상 안 좋았다. 무난한(?) 공격 포인트와 달리 기복이 심한 것이 저평가의 주요 원인이다.

 

지루의 장점 중 하나는 192cm의 높은 신장이다. 하지만 190cm 넘는 체격은 자신의 약점이기도 하다. 장신 공격수는 전형적으로 발이 느린 특징이 있다. 선수마다 개인차가 존재할 수 있겠으나 지루는 그 한계를 이겨내지 못했다. 빠른 템포의 공격을 펼치는 아스널에서는 그런 약점이 두드러진다. 민첩하지 못한 몸놀림에 의해 예측 불허의 공격 기회를 창출하지 못했다. 더욱이 아스널에서는 원톱을 맡고 있다. 원톱은 상대 수비수들의 집중 견제를 받기 쉽다. 스스로 골을 해결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더불어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지루의 원톱 플레이가 살아나려면 동료 선수들이 롱볼 빈도를 높여야 한다. 허나 아스널은 스토크 시티처럼 긴 패스 축구를 펼치는 팀이 아니다. 아르센 벵거 감독 체제에서 오랫동안 짧은 패스 위주의 공격을 지향했다. 아스널이 추구하는 방향과 지루의 스타일 사이에서 괴리감이 생긴다. 아스널이 지루의 개인 공격력에 의지하는 팀이었다면 투톱으로 전환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스널은 4-4-2를 소화하기에는 중앙 미드필더들의 활동 부담이 심해진다. 불과 몇 시즌 전까지 4-4-2를 활용했으나 이제는 4-2-3-1에 익숙해졌다. 또한 4-4-2는 프리미어리그와 유럽, 그리고 세계 축구에서 비중이 약해지는 추세다.

 

지루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치는 애초부터 높을 수밖에 없었다. 아스널이 지난 시즌까지 팀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던 로빈 판 페르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루와 계약한 것이다. 판 페르시는 2011/12시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과 PFA(잉글랜드 프로축구선수협회)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던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 지난 시즌 빅4 탈락 위기에 빠진 아스널 공격을 먹여 살렸던 절대적인 존재였다. 지루는 판 페르시가 아스널에서 쌓았던 아우라를 지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으며 그 과정은 생각보다 험난했다.

 

현재 아스널 공격을 책임지는 지루는 몽펠리에 시절이었던 2011/12시즌 프랑스 리그1 득점왕을 달성하며 잉글랜드 빅 클럽에 안착했으나 엄연히 판 페르시와는 다른 타입의 선수다. 판 페르시가 연계 플레이와 활발한 스위칭, 기회를 포착하는 집중력을 바탕으로 문전을 두드리며 골을 넣는 스타일이라면 지루는 전형적인 빅 맨이다. 여기에 지루는 프리미어리그에 적응해야 하는 숙제까지 떠안았다. 아스널 이적 후 첫 시즌에 지나친 부담을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루의 경기력은 위축되지 않았다. 느린 순발력을 한 발 더 뛰는 움직임으로 극복하며 골 기회를 잡아내는데 안간힘을 쏟았다. 슈팅을 남발하는 아쉬움이 있으나 끝까지 골을 넣겠다는 의지만큼은 칭찬할 부분이다.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바이에른 뮌헨 원정에서는 전반 3분 시오 월컷의 크로스를 왼발 슈팅으로 마무리 지으면서 자신이 빅 매치에 약하지 않은 선수임을 입증했다. 이러한 활약을 놓고 볼 때 경기력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격수에게 요구되는 '과감함'이 충만한 선수로서 프리미어리그 경험만 쌓이면 지금보다 더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공교롭게도 지루는 투르, 몽펠리에 시절에 첫 번째 시즌보다는 두 번째 시즌 성적이 좋았던 공통점이 있었다. 투르 시절이었던 2008/09시즌 리그 2에서는 23경기에서 9골 기록했으나 2009/10시즌에는 리그 2에서는 38경기 21골을 터뜨렸다. 몽펠리에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던 2010/11시즌과 2011/12시즌에는 각각 리그 1에서 37경기 12골, 36경기 21골을 올리며 두 번째 시즌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변수는 올해 여름 이적시장이다. 아스널이 8시즌 연속 무관의 악몽을 끝내기 위해 대형 공격수를 영입하면 지루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다. 2013/14시즌은 벵거 감독의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이다. 구단과 재계약을 맺으면 계약 기간이 연장될 수 있지만, 거듭된 우승 실패로 재계약에 대한 명분이 부족하다. 벵거 감독이 아스널에 오랫동안 남고 싶다면 다음 시즌 우승을 이루어야 하며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취약 포지션을 보강해야 한다. 그럴 때 지루가 일정한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루는 시즌 중반 벤치 멤버로 밀렸던 경험이 있다. 원톱으로 전환했던 월컷에게 자리를 빼앗긴 것. 월컷은 포지션을 바꾸었던 초반에 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으나 미숙한 연계 플레이로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오른쪽 윙어로 복귀했다. 결과적으로 지루가 실전에서 분발했던 계기가 되었지만 팀 내 입지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

 

그의 능력치만을 놓고 보면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은 실패하지 않았다. 다른 빅 클럽의 대형 공격수보다 이적료가 2,000만 파운드(약 339억 원)를 넘지 않으며, 27개의 공격 포인트를 기록한 것만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완벽하게 성공할 잠재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음 시즌이 고비다. 올 시즌보다 발전된 활약을 펼쳐야 빅 클럽에서 생존할 수 있다. 아스널 간판 공격수라면 티에리 앙리, 데니스 베르캄프, 판 페르시 같은 지난 10년 동안 팀 공격을 빛냈던 스타들(아스널팬들은 판 페르시를 싫어하겠지만)과 비견되는 클래스를 보여줘야 할 것이다.

 

p.s : 카카오페이지에 있는 <맛있는 축구 이야기> 제2호에 실었던 글입니다.(4월 12일 발행) 저의 블로그에는 공격 포인트를 수정하여 발행합니다.